▲ 모현 호스피스 김은배 스텔라 수녀. ⓒ천지일보(뉴스천지)
호스피스, 죽음 앞둔 외로운 사람들 말동무

[천지일보=이지수 기자] 불꽃같은 삶을 살다가 24살이라는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해야 했던 영화배우 제임스 딘. 그가 이런 말을 남겼다. “영원히 살 것처럼 꿈을 꾸고 내일 죽을 것처럼 오늘을 살아라.”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고 처음이 있으면 나중이 있는 것처럼 사람이 태어나는 것이 시작이라면 그 끝은 무엇일까.

자고 일어나 다음날 아침을 맞이하는 일이 무감각하고 ‘내일도 하루가 시작될까’ 라는 의심을 하지 않는 이유는 내일도 모레도 또 그 다음날도 변함없이 계속해서 삶이 지속될 거라는 생각 때문.

심지어는 영원히 죽음이 비껴갈 것만 같은 기대마저 들 때가 있다. 하지만 삶의 끝자락인 죽음을 앞두고 있는 사람이라면 새로 맞이하는 아침이 기쁘고 벅찰 것이다.

외롭고 두려운 삶의 끝자락에서 친구가 되고 말동무가 되며 그들이 외롭지 않게 편안히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호스피스.

10년 동안 호스피스일을 해온 김은배 스텔라 수녀를 서울 용산구 후암동에 위치한 모현 호스피스에서 만났다. 이곳은 2003년 <죽이는 수녀들 이야기>라는 제목의 책을 출간한 곳이기도 하다.

오는 16일에는 이 책의 내용을 모티브로 한 연극이 서울 동숭동 세우아트센터에서 공연된다. 김 스텔라 수녀에게 먼저 책을 출간하게 된 계기에 대해 물었다.

“그동안 환자분들을 돌보면서 일어났던 일들과 그 속에 사연들이 그냥 묻히는 것 보다 많은 사람들과 나누면 좋을 것 같아서 책을 출간하게 됐어요.”

◆어미언덕이란 의미의 ‘모현’
모현 호스피스에는 마리아의 작은 자매회 수녀들이 활동하고 있다. “저희 수도회는 죽음에 직면한 이들을

▲ 부암동 아트 포 라이브에서 환자와 가족과 함께 한 김은배 스텔라 수녀(왼쪽에서 두번째). (모현 호스피스 제공)
예수님처럼 섬기며 마지막까지 함께 하기 위해 1887년 영국 여성 메리 포터가 설립한 수도회에요.” 김 스텔라 수녀가 수도회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현재 모현 호스피스는 1987년 서울 후암동에 설립됐고 임종을 맞는 환자와 그 가족들을 만나고 있어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현장인 갈바리(골고다) 언덕까지 어머니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 사랑하는 제자가 함께 했잖아요. ‘어미언덕’이라는 뜻의 모현(母峴) 은 그와 같은 마음으로 환자들을 돌보겠다는 의미에요.”

특이한 것은 ‘모현’ 이라는 명칭은 스님이 지어 주신 이름이란다. 김 스텔라 수녀는 환자를 ‘돌본다’는 표현이 아닌 환자와 함께 ‘논다’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 정기적으로 환자의 집을 방문해요. 환자와 대화도 나누고 노래불러달라고 하면 노래도 부르고 고스톱도 치면서 같이 놀다 와요. 환자는 함께 웃고 떠들고 노는 동안 아픈 것을 잊고 즐거워하죠. 또 제가 좀 말이 많거든요.”

말이 많은 수녀였지만 그것은 사람에게 활기를 불어넣어 주는 마법과 같은 힘이 있었다. 원래 유머가 있었냐는 질문에 그는 원래 그렇다고 능청스럽게 답한다.

긍정적인 생각, 건강한 정신의 소유자만이 그것을 타인에게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을 인터뷰 내내 그를 보며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수녀이지만 종교인으로 호스피스를 하지 않는다고 한다. “제가 수녀라고 해서 무조건 환자들을 만나서 기도하고 그러지 않아요. 물론 신자일 경우 예외는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호스피스일을 종교적으로 하지는 않아요.”

그가 하루 일과를 끝마치고 무엇을 하는지 궁금해졌다. “사람들은 직업을 갖고 살아가죠. 하지만 저는 이일이 직업이 아니라 곧 저의 삶이에요. 근무시간이 따로 없이 24시간 활동하죠. 환자와 함께 있다가 돌아왔어도 갑자기 응급한 전화를 받으면 환자에게 다시 가죠.”

◆어머니를 하늘나라로 보내며
김 스텔라 수녀는 사랑하는 엄마와 조카를 하늘나라로 보냈다. “지금도 엄마 생각하면 마음이 힘들어질 때가 많아요.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까지는 교과서적으로 일을 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엄마로 인해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낼 때의 심정을 경험하게 됐고 이제는 환자분 가족들의 마음이 어떨지 이해하게 됐거든요. 그러고 보면 엄마는 저에게 큰 선물을 하나 주시고 가신 거죠.”

▲ 사랑과 헌신을 실천하는 모현 호스피스의 김 스텔라 수녀(오른쪽에서 첫 번째). (모현 호스피스 제공)
서른도 안 된 조카가 세상을 떠날 때는 옥상에서 날이 새도록 펑펑 울었다고 한다. 그는 그동안 많은 사람들의 임종을 지켜봤다. 그러는 동안 그가 느낀 게 무엇인지 물었을 때 그의 답이 조금은 의외였다.

“사람이 죽는 순간에는 그 사람의 살아온 그대로의 모습으로 죽음을 맞이하는 것 같아요. 죽는 순간에도 그 사람의 인생이 베어 나오죠. 그래서 정말 더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해요.”

그는 환자와 가족사이의 중간 역할도 호스피스 역할 중 하나라고 한다. 이제 앞으로의 살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가족에게 알리거나 당사자인 환자에게 설명할 때 조심스럽게 차근차근 하지만 정확하고 명확히 말해줘서 그 다음을 준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는 이와 관련된 사연하나를 털어놨다. “80살의 노모를 모시고 사는 총각이었는데 50살이 조금 안됐어요. 위암 말기로 병원에서는 몇 개월 밖에는 못산다는 결과가 나왔죠. 환자의 가족들은 그 사실을 노모에게 알리면 충격을 받으실까봐 걱정을 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제가 가족 대신 아들이 지금 많이 아프다고 노모에게 차근차근 설명을 했죠. 그 말을 듣고 노모가 가장 먼저 아들의 배에 손을 얹고 ‘엄마 손은 약 손, 엄마 손은 약 손’ 하시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많이 아팠어요.”

◆“죽음은 끝이 아닌 시작이에요”
한편, 김 스텔라 수녀는 죽음 후에 그곳이 하느님나라든 아니든 새로운 세계로 가는 것이기 때문에 죽음이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고 표현했다.

마지막으로 김 스텔라 수녀는 그가 머리에 쓴 밝은 색의 베일처럼 환한 미소로 이같이 말했다. “죽음을 준비하는 것은 태아가 열 달 동안 엄마 뱃속에서 엄마와 함께 살면서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것과 같아요. 우리는 죽어서 가는 그곳이 어디인지 모르기에 마치 태어나는 것처럼 그렇게 준비해야 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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