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가. 아무런 이유도 목적도 없이 흘러가는 것일까를 묻는 것이다. 창조주의 섭리 가운데 흘러가는 역사가 그럴 리는 없을 것이다. 

분명 성서에는 모든 것은 기한이 있고 목적이 있다고 했다. 조선 중기 유학자이며 천문학자인 격암 남사고는 ‘서기동래(西氣東來)’라는 말을 미리 남겼다. 무슨 말인가. 서쪽에서 시작한 것이 동쪽으로 온다는 얘기며, 그 오는 때가 됐고 그 목적 또한 이루어지고 있지만 무엇이 오며 왜 오는지에 대해 궁금해 하는 이가 없으니 그야말로 역설이다.

길고 긴 세월을 보내며 창조주의 기막힌 사연을 머금은 섭리는 시작했던 제자리를 찾아오고 있는 것이다. 찾아오는 문명은 인류문명의 발상지요 시원인 땅 끝 동방 곧 해 뜨는 아침의 나라로 찾아 깃들고 있는 것이다.

‘키탄잘리(신에게 바치는 노래)’로 동양 최초 노벨문학상을 받은 인도의 시성(詩聖) 타고르는 이를 알리기 위해 일제 강점기에 희망을 잃은 우리 민족에게 ‘동방의 등불’이라는 희망의 노래를 선사해 미리 부르게 했으며, 장차 새 시대를 열어갈 오늘을 예고했던 것이다.

타고르는 이 짧은 시 속에 인류의 시원문명(동방문명)의 주체였던 우리나라가 다시 세상에 참된 문화를 전파하며 전 지구의 미래를 새롭게 펼칠 모습까지 고스란히 그려냈던 것이며, 우리나라의 과거 현재 미래를 짧은 시 속에 함축시켜 놓음과 동시에 인류의 새 시대를 주도할 것을 예시했던 것이다.

‘지즉위진간’ 즉, 내가 참으로 깨달아 알 때 비로소 보인다고 했듯이, ‘서기동래’의 참의미를 깨닫기 위해 숲을 보고 나무를 보라는 말처럼, 좀 더 크게 세상을 보고 세계사를 보며 깨달아 보자. 

서쪽 중동지역에는 이스라엘이라는 아주 작은 나라가 지중해 연안에 위치해 있다. 이 작은 나라 작은 민족 이스라엘은 오늘까지의 세계를 실질적으로 지배해 왔다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수메르민족인 아브라함 때 이어온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함께해온 선민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막연하게 지혜의 왕으로만 알고 있는 솔로몬 왕 때 십계명 중 “나 외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제1 계명을 어기고 이방신을 섬기므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그들을 떠나가고 오늘날 우리 민족의 현실같이 북이스라엘과 남 유다로 갈라지는 신세가 됐으며, 앗수르와 바벨론에 의해 차례로 멸망 받고 결국은 70년간 이방의 포로가 되는 신세로 전락하고 만다. 그렇다 할지라도 어쩌면 이때부터 시작된 디아스포라(지구촌에 흩어져 살아가는 유대인)는 그들의 우수한 두뇌와 재능으로 온 세계 중요한 기능과 요직을 점령하며 오늘까지 세계를 실질적으로 지배해 왔다. 

여기에는 중요한 비밀 아닌 비밀이 있으니 바로 이천 년 전 찾아온 하나님의 아들 예수의 출현이 있다. BC와 AD라는 세계의 기원이 됐으며, 이는 하늘의 기운을 받은 민족이라는 의미기도 하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하나님은 믿지만 하나님이 약속대로 보낸 예수는 믿지 않으니 이 또한 역설이다. 

성서에 기록됐듯이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않은 것이다. 결국 하나님의 아들 예수는 십자가상에서 인류구원이라는 사명 즉, 피를 흘려야 했고, 그 흘린 피로 다시 오실 것을 약속했으니 바로 성서의 신약(새언약)이다. 

이 새 약속이 지금 서기동래한 이 땅 가운데서 이루어졌으며, 이루어진 것을 다시 전하는 ‘동성서행(東成西行)’의 역사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 옛날 예수가 자기 땅에 올 때 온 세상 마귀가 달려들며 하늘의 역사를 훼방했듯이 지금 이 강산 이 땅 위에서도 다르지 않다. 송구영신 호시절이라 했지만, 호시절(好時節)이기에 호사다마(好事多魔)며 지금 이 시대가 잘 보여주고 증명해 주고 있는 것이다. 

아무튼 오늘날 이루어질 서기동래의 역사는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사로잡혔을 때 사로잡힌 자 중에서 선지자들을 택해 이스라엘의 회복을 알렸고, 그 회복은 이스라엘이 바벨론으로부터의 해방을 넘어 이천년 전 유대 땅의 종교지도자들에 의한 종교적 압박으로부터 예수를 통한 구원의 역사 즉, 종교적 해방이며 광복으로 나타났던 것이다. 

그렇듯이 이천 년이 지나 이 곳 동방에서 있어질 회복의 역사에 대해 70년이 아닌 반감된 일제 35년의 식민지 즉, 일제에 사로잡힌 자들의 역사를 통해 이 시대 회복의 역사와 새 시대를 알려왔던 것이다.

하지만 이스라엘 구약시대의 선지자를 통해 예수 초림을 약속했고, 그 약속대로 유대 땅에 이루어졌지만 그 시대가 알지 못해 억압했듯이, 오늘날 신약의 약속대로 약속의 땅 회복의 땅 동방에서 약속대로 이루어지고 있지만 이 시대 역시 무지해 그 때를 방불케 하며 하늘의 뜻 새 시대 출현을 방해하는데 혈안이 돼있다.

그렇다할지라도 분명한 것은 창조주의 섭리대로 이루어져 나타나는 새 시대를 사람의 생각과 방법으로 막을 수 없으니 곧 진리다. 송구영신한 이 시대를 분별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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