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칼럼] 동북아지역 공동이익을 향한 협업
[시사칼럼] 동북아지역 공동이익을 향한 협업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용상 동국대 법과대학 교수

 

최근 한반도운전자론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들면서 동북아지역공동체에 대한 단상이 떠오른다. 동북아지역은 역사적으로나 지정학적으로나 숙명적 관계를 유지하면서 함께 했고, 현재도 미래도 서로 공존의 틀을 근간으로 하면서 선의의 경쟁과 협조체제를 구축해 나가야 윈윈하게 된다. 최근 한중·한일관계는 물론이고 남북한, 북중·북일관계가 원만하지 못하며, 특히 한일관계는 전문가적 시각은 아니나 상호 신뢰를 상실한 회복불능단계가 아닌지 의심스럽다. 

미세먼지만 해도 특정국가가 독점적인 책임을 질 사안이 아니다. 에너지문제도 핵문제도 결국은 인접국 간의 공조체제를 유지해야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황사마스크를 낀 상태에서 오리막길을 걸으면 숨이 차서 걷기가 힘들다. 안보나 경제 불문코 유관국가와의 공조·협조체제가 없으면 황사마스크를 쓴 듯 갑갑할 것이다.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는 다양한 종류의 숨막히는 무형의 관념적 황사마스크를 끼고 산다. 국가 간은 물론이고, 국내에서도 각 직역 간 핵분열식 사회분열현상은 매우 위험하다. 국내적으로 크고 작은 공조·협업체제를 속히 복구해 국민통합을 이룬 후 인접국가와의 공조를 위한 대화와 협상의 자리를 마련해야 한다. 

국내적 통합을 위해서는 모든 것을 진영논리로 양분하는 악습을 버려야 한다. 사회 전 영역이 양분화돼 아예 서로 입을 닫아 버리는 기현상이 일상화돼 있으며, 큰 단체이건 작은 조직이건 정서적으로 함께 할 수 있는 플렛폼(?)이 없다. 상호불신과 반목으로 공동체적 가치가 무너지고, 혼자를 상징하는 혼술이니, 혼밥이니, 혼놀이니 혼행 등의 은어가 늘고 있다. 이렇게 사회의 근간이 무너지면 국가의 존속은 어떻게 될까?

그러므로 국내적 홀로문화나 관행을 공동체문화로 바꾸어 더불어 함께 사는 공동체의식을 함양하는 것이 동북아공동체 구상을 위한 선결과제이다. 여러 방안이 있겠으나 대가족제적 분위기 복원, 해외로 나간 기업의 회귀, 세대 간 갈등극복을 위한 문화와 환경 조성, 가정, 출산, 취업 등의 분야에서 더불어의식을 강조할 수 있는 분위기 조성, 국가원로의 역할증대, 청소년의 글로벌화지원 등 정책계발이 우선돼야 한다.

국내적 통합을 토대로 동북아공조체제유지를 위한 출발을 구체화 할 수 있다. 현재 기준으로 남한은 중국과 일본보다 북한에 더 우호적이며 한 목소리로 평화와 통일을 노래하고 있다. 그러나 국제적 공조, 특히 주변국과의 소통·공감 없이 결실을 얻을 수 있을까? 북한도 중요하고 중국·일본도 중요한 파트너이다. 특히 일본과의 관계개선은 지금이 적기라 생각하고 마음 문을 열자.

큰 틀에서 동북아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북한과의 공동보조도 중요하지만 큰 틀에서 일본과의 선별적 선린우호관계를 회복해야 한다. 중국이 북한과 우호적이긴 하나 우리와의 무역·문화·학술공조 또한 중요하다. 일본과는 역사논쟁은 별개로 한 경제 및 안보공동체로서의 관계강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외교는 감정이 아니다. 냉철한 이성으로 국익에 도움이 되는 실리외교가 중요하다. 더 이상 역사논쟁으로 양국이 등을 돌리는 형국이 돼서는 안 된다. 미래를 생각하며 협상에 협상을 더해야 한다. 남북관계를 강조하다가 주변 특정국과의 관계가 망가지지 않게 슬기로운 협업과 분업의 판을 만들어야 한다. 이 지구상에서 어떤 형태나 성격의 지역공동체도 결성돼 있지 않은 유일한 지역이 동북아지역이다. 비정치적 분야에 대한 협업과 분업시스템을 구축해 동북아의 평화와 번영으로 공존공영을 일구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