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맹기 서강대 언론대학원 명예교수

 

가치는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는다. BBC, NHK는 그들의 역사를 대변한다. 구성원들이 잘 훈련된 절제 수기(修己)로 취재를 하면, 노련한 에디터가 그 내용에 옷을 입힌다. 회사의 품위에 맞게 그 내용은 일관성·연속성을 유지하게 된다. 과거, 현재, 미래의 역사가 통일성 있게 엮인다. 그 결과 가치는 안정된 변화를 하는 순기능을 하게 되고, 사회통합이 더불어 이뤄진다.      

물론 가치를 내포한 문화는 창의적 아이디어가 있고, 행동 양식의 원형을 제공하고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기술을 충격적 변화 없이 수용할 수 있게 된다. 갈등이 통합된 사회는 이성과 합리성이 작동하고, 문화전승은 쉽게 이뤄진다.   

요즘 KBS의 품위가 말이 아니고, 온탕 냉탕, 천당 지옥을 오간다. 김제동을 불러 ‘김정은 찬양’ 방송, 가수 정준영을 불러 ‘1박 2일’ 프로그램을 내보낸다. 뿐 아니다. 김용옥 한신대 석좌교수를 불러 “이승만 대통령을 미국의 ‘괴뢰’라고 지칭하며, 국립묘지에서 파내야 한다”라는 주장까지 하게 한다. 장자(莊子)의 제물론(齊物論)에 “나는 꿈에 나비가 되어 이리저리 날아다니니 어디로 보나 나비였다”라는 표현이 있다. 지식인은 원래 몸은 땅에 두고, 하늘로 날아다닌다. 이를 비난할 생각은 없다. 

김 교수가 비판하는 이승만 전 대통령의 삶은 전혀 다르다. 그는 생각, 말과 행동을 같이 하려고 노력했다. 만민공동회사건(1898)에서 공화주의 연설회로 한성감옥에서 종신형을 받고 복역을 했다. 감옥에서 1904년 『독립정신』을 집필해, 독립과 자유를 누구보다 먼저 외쳤다.  

KBS는 헛소리하는 인사를 가끔 출현시키는 것이지, 전념할 필요가 없다. 그게 방송의 본업이 아니기 때문이다. 영국 대사관과 언론진흥재단 주체로 3월 12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디지털 시대 저널리즘의 미래’ 세미나를 열었다. 영국 BBC 총괄본부장 조너선 먼로(52)가 소셜 미디어 형(型) 인간을 말했다. 지금 20~30대는 ‘디지털 원주민’으로 평가받고 있다. 젊은 층의 미디어 소비는 모바일, SNS, 유튜브로 정보를 얻게 된다.  

먼노는 “자기 관점에 부합하는 뉴스만 골라 보게 됨으로써 시야를 좁게 만든다”라고 했다. 실제 그렇다. 유튜브 1인 미디어를 봐도 실제 취재를 할 수 없어, 80% 이상이 평론 위주로 프로그램을 끌고 간다. 이런 문화에서 정치인들이 자신들의 정파성만을 대변하면, 사회는 갈기갈기 찢어진다. 미디어가 많은데 사회의 영속적 변화를 하는 가치를 지켜줄 곳이 없다. 

KBS를 비롯해, 공영방송은 늘어났다. 이렇게 많은 공영방송을 갖는 나라도 흔치 않다. 조선일보 신동흔·구본우 기자는 2월 12일〈이슈 터지면 친여 스피커 총출동…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 목소리’〉라고 했다.  

진정 수신료를 받는 공영방송이 필요한 때이다. 방송법도 제1조에 ‘이 법은 방송의 자유와 독립을 보장하고 방송의 공적 책임을 높임으로써…’ 라고 했다. 한편 먼노는 “공영방송의 브랜드를 높이기 위해 ‘높은 수준의 저널리즘’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그 조건으로 ‘보도하는 내용이 정확하게, 공평할 때 어떤 권위가 이의를 제기해도 우리는 진실성에 근거해 반박을 할 수 있다’”라고 했다. 

지구촌 상황에서 공영 KBS는 많은 정보를 정확하게 보도하고, 그 정보를 전문성의 바탕으로 공론장에서 걸러 숙의(熟議) 민주주의를 가능케 한다. 하버마스는 초기 부르주아 문예적 공론장은 “주체성으로부터 나온 사적 경험이 특유하게 공적 논의의 자명한 이해로 이끈다. 이러한 사생활 영역이 충만하고 자유로운 ‘내밀성’이라는 근대적 의미에서의 프라이버시의 출현을 시켰다”라고 했다. 지금 KBS는 초기 공론장의 기능을 이탈해 사회의 가치와 품위를 훼손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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