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안현준 기자] 14일 서울지방경찰청에 출석한 승리(왼쪽)와 정준영. ⓒ천지일보 2019.3.14
[천지일보=안현준 기자] 14일 서울지방경찰청에 출석한 승리(왼쪽)와 정준영. ⓒ천지일보 2019.3.14

서울·시청역 일대서 남성·여성 만나보니

[천지일보=임혜지 기자] 서울 강남 클럽 ‘버닝썬’에 대한 경찰수사가 폭력사건에서, 마약수사로, 성매매 알선 문제를 넘어 ‘불법촬영 영상물(몰카)’의 공유 문제로 확산하며 그 논란이 일파만파 커지고 있는 가운데 덩달아 대중의 분노도 커지고 있다. 그러나 이를 보는 남성과 여성의 시각은 엇갈리는 모양이다. 23일 기자가 서울역과 시청역 일대에서 시민들을 만나 인터뷰를 해보니 대다수 여성은 ‘분노’를 토했지만, 일부 남성 시민들은 “이해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이날 경찰에 따르면 정씨는 성관계 동영상과 여성을 찍은 사진 등을 메신저의 개인 혹은 단체대화방에 공유했다.

현재까지 언론에 보도된 대화방 내용을 보면 불법으로 촬영된 것으로 보이는 성관계 동영상을 재미 삼아 돌려보는가 하면, 여성에게 수면제를 먹인 뒤 성관계를 했다고 밝히는 내용도 있다. 심지어 이들은 “우리는 살인만 안 했지 구속감”이라며 자신들의 행위가 ‘범죄’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는 모습을 보이기까지 했다.

서울 길음동에 살고 있는 김나래(가명, 23, 여)씨는 “정준영 단체대화방 내용을 보고 죄의식이 하나도 없는 게 느껴져 섬찟하기까지 했다”면서 “승리나 정준영 같은 사람들이 연예계에 또 있을까 두렵다”고 분노했다.

서울 경복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손채연(가명, 19)양은 “평소 좋아했던 아티스트로서 충격도 컸고 실망도 컸다”며 “사실 이러한 문제가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닌데 이번 사건을 계기로 우리 사회에서 묻어왔던 불법 촬영 문제에 대해 여성들이 들고일어났음 좋겠다”고 말했다.

정준영 동영상 파문 이후 최근 남자친구와 헤어진 여성도 있었다. 김미희(가명, 22, 여)씨는 최근 정준영 사건을 접하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본 남자친구 카카오톡 대화방에서 충격적인 내용을 봤다. 김씨가 본 약 5명의 인원이 속한 단체 대화방에서는 사귄 지 30일이 채 안 된 김씨와 남자친구와의 스킨쉽 진도를 묻는 도를 넘은 경악스러운 질문들이 돌고 있었다. 김씨는 “카톡창 내용을 보는 순간 온몸이 얼어붙었다”며 “남자친구에게 즉시 따졌는데 친구들끼리 그냥 장난으로 하는 얘기라며 이해해달라는 말에 화가나 헤어졌다”고 말했다.

반면 승리와 정준영 사태를 바라보는 남성들의 시각은 달랐다. 김동호(가명, 30, 남)씨는 “남자들끼리 있는 카톡방에선 꼭 음담패설이 아니더라도 여자 얘기가 안 나올 수가 없다”며 “분명 왜곡되고 억울한 부분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남성 김태휘(26, 남)씨는 “정준영이 공인으로서 잘못한 부분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안타깝다”라며 “연예인이기 때문에 이번 문제가 확대된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남성은 “솔직히 남자라면 성인물을 보고 싶을 것이라 생각한다”며 “카톡방 대화 내용은 같은 남성으로서 이해가 간다”고 했다. 또 그는 “승리 카톡방 내용과 관련해서 이문호 대표가 대화 내용이 죄가 된다면 대한민국 모든 남성이 죄인일 것이라 하지 않았나”라며 “그 말에 공감한다”고 두둔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불법촬영 범죄는 남성들의 적극적인 동조 혹은 묵인하에 이뤄진다. 더욱이 단체대화방 등을 통해 불법 촬영물을 찍고 공유하면서 남성들 사이에서 ‘남성성’을 인정받는 문화가 형성돼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이러한 문화 때문일까. 남성의 불법촬영물 유포 사건은 비일비재 해왔다. 실제 얼마 전 ‘일간 베스트 저장소(일베)’ 사이트에 자신의 여자친구 사진을 몰래 찍어 자랑하듯 올린 사건도 사회적으로 큰 파문을 일으켰다. 당시 사건에 연루된 13명 가운데 6명은 실제 자신의 여자친구 사진을 게시했던 것으로 경찰 조사에서 확인됐다. 이들 대부분은 범행 동기에 대해 "관심을 받기 위해서"라고 진술한 바 있다.

특히 더불어민주당 이재정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최근 5년간 카메라등이용촬영범죄 검거인원 현황’에 따르면 2013년 2832명이었던 불법촬영물 피의자는 5년간 꾸준히 증가해 2017년 5437명으로 집계됐다. 피의자 중 96~98%가 ‘남성’이고 피해자 대부분은 ‘여성’이었다.

서승희 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대표는 “대한민국 남성들 중 대다수가 불법촬영 등 여성 대상 범죄에 대해 민감도나 감수성이 낮은 게 현실”이라며 “방관자적 태도를 취하는 남성들이 많고 그러다 보면 죄의식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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