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한체대 스포츠 언론정보연구소장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 등 미국 주요 신문을 인터넷으로 볼 때, 자주 눈길이 가는 곳이 있다. ‘OBITUARIES’로 불리는 부고란이다. 미국언론의 부고 기사는 우리 언론과 많이 다르다. 고인의 삶을 제대로 소개한다는 점이다. 부고 기사만 읽어도 고인의 인생과 철학을 잘 알 수 있다. 고인이 언제, 어디에서 태어나 무슨 일을 했으며 어떻게 살았고 어떤 활동을 했으며 어떻게 죽었는지를 6하원칙에 근거해 소상히 알려준다. 고인을 위한 한편의 회고록이자, 후대를 위한 훌륭한 인생교과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성공한 사람 뿐 아니라 보통 사람이더라도 귀감이 될 수 있다면 이들의 생애를 부고 기사를 통해 잔잔하게 들려준다.

지난 주 초 미국의 원로 스포츠 기자 댄 젠킨스가 90세를 일기로 타계했다는 기사를 봤다. 1928년생인 그는 이미 수십년 전 고인이 된 필자의 아버지와 동년배인데, 전설적인 골프기자 출신이었다. 마스터스를 68번이나 현장에서 취재했고 US오픈 63회, PGA챔피언십 56회, 디오픈 45회를 포함해 골프 메이저대회를 모두 232차례를 직접 현장에서 본 골프기자의 전설이었다. 골프뿐 아니라 미식축구에도 조예가 깊었던 그는 스포츠일러스트레이티드와 골프다이제스트에서 활동하며 미국 스포츠저널리즘의 한 시대를 풍미했다. 뉴욕타임스와 골프다이제스트 등 여러 미국 언론 등은 그의 삶을 조명하는 장문의 부고 기사를 실었다.

미국 언론이 부고 기사에 관심을 두는 것은 인간의 삶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우리와 많이 다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독립된 개체로서의 인간 개인을 중시하는 서구사회는 언론이 한 인간의 삶을 조명함으로써 사회 속 개인의 존재감을 인식하는 일이 중요하고 값어치가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인 것으로 생각된다.

이에 반해 집단지향성이 아주 강한 우리 사회에서 개인보다는 사회 속의 집단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개인이 조명을 받는 부고 기사에는 썩 관심을 두지 않는다. 대부분 자투리 지면에 단순히 빈소 등을 안내하는 정도에 그치고 정치인, 경제인, 문화인 등 족적이 분명한 고인에 한해 ‘사람란’을 통해 비중에 따라 ‘1~4단’ 크기로 소개한다.

부고에 대한 국내 언론의 이런 관행은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지난 달 말 필자가 스포츠 기자 시절 취재원으로 알았던 김무현 전 프로농구연맹 위원장이 7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된 것은 간단한 부고 안내를 통해서였다. 1964년 도쿄올림픽 남자농구 국가대표로 출전했고, 1969년 방콕아시아농구선수권대회 첫 우승의 주역으로 활약했던 고인이 한국농구에 기여한 점을 고려해볼 때 주요 언론 스포츠 지면이나 스포츠 전문지 등에 부고 기사를 게재할만했다. 하지만 농구 전문잡지들도 고인의 부고 기사를 싣지 않았을 정도로 국내 대부분 언론 등은 외면을 했던 것이다.

세상을 떠난 언론인에도 부고 기사는 인색했다. 수년 전 필자가 몸담았던 언론사의 대선배로서 한국체육언론에 큰 업적을 남겼던 원로체육기자 조동표, 오도광 씨에 대한 부고는 국내 언론사에 부고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가 필자는 이를 뒤늦게 알고 천지일보 칼럼 등을 통해 소개를 한 바 있다. 오도광 씨의 유가족 등은 그의 타계 후 고인의 회고록을 출판하면서 필자가 쓴 천지일보 칼럼을 회고록에 싣기도 했다.

우리 사회가 사회적 공감과 연대감을 넓히기 위해선 여러 방면에서 활동한 사람들의 생애를 되돌아보고 감동과 교훈을 전해 줄 부고 기사가 언론 등에 많이 소개됐으면 싶다. 문화적 토양이 다르다고 무시할 게 아니라 서구사회의 좋은 점을 받아들여 우리 것으로 만드는 지혜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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