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우 안전사회시민연대 대표 

 

나경원 의원은 ‘반민특위로 국민이 무척 분열됐다’고 말하고 ‘전쟁’에 비유했다. 나 의원은 해서는 안 될 말을 했다. 지금까지 어떤 정치인도 나경원 의원처럼 말하는 이는 없었다. 친일파와 친일파 비호세력을 제외한 거의 모든 국민이 성공하길 바랐던 반민특위이다. 좌절된 역사를 한스럽게 생각하는 분위기였다. 어느 누구도 반민특위를 비하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나 의원은 선을 넘었다. 넘어도 한참 넘었다.

나 의원이 문제의 반민특위 발언을 한 뒤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모든 정당들이 일제히 비판하고 여기저기서 목소리가 터져 나오자 후속 반응이 나왔다. 나 의원은 ‘반민특위는 제대로 되어야 했다’고 말하면서도 국론을 분열시킨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비판의 예봉을 피하고자 하면서도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나 의원이 말하는 반민특위가 ‘국론분열’로 연결됐다는 말은 ‘국민이 무척 분열했다’는 발언 못지않게 심각하다.

박정희는 비판세력을 향해 ‘국론분열’이란 잣대를 들이 밀었다. 핵심은 자신의 노선과 결정에 토를 달지 말고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자신들을 비판하고 반기를 들면 국론이 분열된다는 것이다. 가만있으면 될 것인데 왜 평지풍파를 만들어 사회를 불안하게 하느냐는 말이다. 이승만의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논리도 같은 맥락이다.

제헌국회에서 반민특위가 설치된 것은 국민의 열망이 반영된 것이다. 프랑스처럼 해방이 되자마자 친일청산이 이뤄졌어야 했는데 미국의 군사정권이 가로막아 이루지 못했다. 미군정은 여러 정치조직들의 친일청산 법률 제정 요구를 거절했다. 또 자신들의 구도에 따라 설치해서 이용하던 남조선과도입법의원이 1947년 7월에 만든 ‘민족반역자·부일협력자·모리간상배에 관한 특별 조례’ 조차 거부해 친일청산 기회를 원천 봉쇄했다. 미국은 왜 친일청산을 거절했을까? 친일 세력이 보존되는 것이 자신에게 유리하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지금 국회에서는 친일파 문제로 많은 사람들이 선동하고 있는데, 이런 문제로 민심을 이산시킬 때가 아니다. 이렇게 하는 것으로 문제 처리가 안 되고 나라에 손해가 될 뿐이다. 인신공격을 일삼지 말고 민심이 복종할 만한 경우를 만들어 조용하고 신속히 판결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누가 한 말일까? 반민족행위처벌법(반민법)과 반민특위 설치가 국회에서 한참 논의되고 있을 때 나온 이승만 담화문의 일부이다.

정부가 수립된 뒤 38일 만에 반민족행위자 특별법이 만들어졌다. 국민적 열망이 반영된 것이다. 다른 법률을 통과시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반민법 제정에 찬성했던 이승만은 법률 제정 이틀 만에 ‘반민족행위자 처단에 대하여’라는 제목의 담화문을 발표하고 “법운용은 보복보다 개과천선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승만 권력의 기반 역할을 하고 있던 친일파를 보호하고자 한 것이다. 이승만은 이후에도 반민특위 관련 담화를 세 번이나 더 발표한다.

친일파들은 ‘반민족행위자처벌법’이 공포로 다가왔다. 친일파들은 국회 논의 과정에 뛰어들어 “국회에서 친일파를 엄단하라고 주장하는 자들은 빨갱이”라고 외쳤다. 서울 곳곳에 반민특위를 비하하는 삐라를 뿌렸다. 반민법이 공포된 다음 날 밀정으로 악명 높았던 친일파 이종형이 중심이 돼 ‘반민특위는 빨갱이’라고 공격하는 ‘반공 궐기 대회’를 개최했다. 이승만 공중전을 전개하고 친일파들은 현장 중심의 지상전을 전개했다.

이승만은 반민특위가 구성된 직후 국가보안법을 제정했다. 반민특위법 제정에 앞장선 개혁파 국회의원들을 빨갱이로 몰아 국회에서 몰아냈다. 10명의 의원이 감옥으로 갔고 가혹한 고문을 받았다. 그와 동시에 경찰로 하여금 반민특위를 습격하게 만들어 수사 서류를 훔쳐가게 만들고 특경대원의 무장을 해제했다. 20일 뒤에는 백범 김구가 암살된다. 그 결과 반민특위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운명을 맞게 된다. 이게 진실이다.

나 의원은 진실을 땅 속에 파묻고 역사를 왜곡한 책임을 져야 한다. 순국선열들의 영령 앞에 무릎 꿇고 사죄하는 게 도리다. 아울러 의원직을 내려놓는 게 역사에 순응하는 길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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