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사안별로 판단해야"…`고객보호의무 위반' 19개사만 승소
"은행 보호의무 어겼어도 기업에 50∼80% 책임"

(서울=연합뉴스) 환헤지 통화옵션상품인 키코(KIKO) 계약이 그 자체로 불공정한 것은 아니라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사실상 은행측의 손을 들어준 것이지만 계약 과정에서 은행이 기업보호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면 배상해야 한다는 취지라서 개별 공방은 계속될 전망이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1부(여훈구 부장판사)와 민사합의22부(박경호 부장판사), 민사합의31(황적화 부장판사), 민사합의32부(서창원 부장판사)는 29일 이른바 `키코 사건' 91건(118개 기업)에 대한 판결을 일제히 선고했다.

이들 재판부는 "환율이 일정 범위에 있으면 기업이 시장보다 높은 가격을 행사하게 보장받는 등 키코가 구조적으로 불공정하거나 환헤지에 부적합한 것으로는 볼 수 없다"는 통일된 판단을 내놨다.

그러면서 "계약금액이 외화유입규모를 과도하게 넘으면 특수한 위험이 발생하는 만큼 은행이 개별 기업의 여건에 적합하지 않은 상품이나 금액을 권해서는 안 되며 위험을 충분히 설명해야 한다"는 기준을 제시했다.

재판부는 개별 사건에서 은행이 고객보호 의무를 이행했는지를 살펴보고 배상여부를 판단했으나, 은행의 책임이 인정되는 경우에도 투자를 결정한 기업의 경영책임을 감안해 배상액을 손실의 20∼50%로 제한했다.

이에 따라 중소기업은행이 현항공산업㈜에 1억1천200여만원을 지급하도록 하는 등 부당이득금 반환소송을 낸 118개 기업 가운데 19개 기업에 은행이 620만∼13억9천600만원을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하고 나머지 99곳의 청구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같은 판결에 대해 키코 피해기업 공동대책위원회 공보실 김화랑 차장은 "상품 자체의 적합성은 제대로 판단하지 않은 것 같다. 항소하겠다"고 밝혔다.

키코는 환율이 일정 범위에서 움직이면 시장가격보다 높은 환율로 외화를 팔 수 있지만, 환율이 지정된 상한선을 넘으면 계약 금액의 2~3배를 시장가격보다 낮은 환율로 팔아야 하는 통화옵션 상품이다.

계약 후 환율 급등으로 피해를 본 기업은 불공정한 계약이라고 주장하며 2008년부터 무더기 소송을 냈으며 은행은 상황 변화를 이유로 계약을 부정해서는 안된다고 맞섰다.

앞서 2월 초 선고된 키코 첫 판결에서도 법원은 "옵션 계약으로 은행이 얻는 이익이 다른 금융거래에서 얻는 것에 비해 과다하지 않다"며 은행측의 손을 들어준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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