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라곤 논설실장/시인 

 

3월 임시국회가 원내교섭단체 대표연설을 끝내고 상임위 활동으로 들어갔다. 그렇지만 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의 ‘문재인 대통령 관련 발언’으로 인해 여당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는데 반해 한국당에서는 외국 언론에 나온 내용을 인용했을 뿐인데 “뭘 그러느냐”는 태도다. 정치인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한 발언은 면책특권이라는 보호막이 있지만 정부·여당의 입장에서는 귀에 거슬리는 말이다 보니 재발방지책으로 어떤 제스처를 써야하겠지만 여러 가지로 말들이 많다.

나경원 원내대표의 국회 본회의장에서 한말을 두고 여당에서는 “국가원수와 한반도 평화 염원하는 국민 모독”이라 비판하며 의원 전원이 서명해 윤리위원회에 제소하고, 또 한국당은 여당 지도부를 제소했지만 해프닝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지금은 과거 유신시대와 같이 독재정부가 아니라 민주주의 시대로 국회의원의 국회내 발언은 헌법 규정에 의해 보호돼야 하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나 원내대표에 대해 제명 으름장을 내놓을 수는 있겠지만 지금까지 국회에서 제명된 사례가 김영삼(YS) 전 대통령이 유일하니 쉽사리 처리될 사안은 아닌 것이다.

YS가 신민당 총재 시절이던 1979년 10월 초, 그가 <뉴욕타임스>와의 기자회견을 통해 미국이 ‘공개적이고 직접적인 압력을 통해 박정희 대통령을 제어해줄 것’을 요구하는 내용으로 발언했다. 그 사실이 국내에 알려지자 서슬이 시퍼렇던 박 정권의 여당 권력에서는 본때를 보인다며 그해 10월 3일 즉각 제명 절차에 돌입했고, 다음날 경호권을 발동해 10분만에 날치기 통과시킨 것이다. 또 하나 사례로는 여당 공격이 날카로웠던 남장(男裝) 여성 의원인 김옥선 의원의 사례다. 김 의원은 국회에서 박정희 정부를 비판했다가 민주공화당에 의해 제소됐고, 국회에서 제명이 확실시되자 김 의원 스스로 사직해 제명은 중도에서 무위로 끝나고 말았다.

한국당이 황교안 대표 체제로 바꾼 후 보수층 결집 기미를 보이자 대여 공격을 한층 강화하는 중이다. 아마도 최근에 정당지지율에서 30%대를 회복한 사실에 고무되어 대여공격만이 선명야당의 존재를 부각시키는 것이라고 지도부가 판단했을지 알 수 없다. 우리정치사에서 제1야당은 주로 여당을 공격하면서 ‘독재자타도’ ‘민주주의 회복’이라는 용어를 자주 써왔던바, 군부독재가 사라지고 민주주의가 신장된 요즘에 들어서도 야당의 구호는 변함이 없는 것이다.

그런 입장에서 나경원 원내대표가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행한 대정부 메시지는 계산된 것으로 보인다. 나 원내대표가 비록 면책특권이 있는 국회 본회의장에서의 발언이라 해도 많은 국민이 TV를 시청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북한 김정은의 수석대변인’이라 한 말은 법률상이나 현실 상황에서도 이치에 닿지 않는다. 물론 그의 발언이 외신에 난 보도를 인용했다고는 하나, 정치인이 상대에 대한 ‘공격만을 위한 공격’으로 보일 뿐이다.

나 원내 대표가 인용한 신문사는 미국의 경제매체인 불룸버그 통신사다. 국내외신문을 막론하고 언론에는 정론직필이라는 정도(正道)가 있고, 사시(社示) 또는 보도방침이 있으니 ‘남의 제사상에 콩 놔라 팥 놔라’ 왈가왈부할 수 없다. 그렇지만 그 내용이 실체적 진실인지, 분위기가 그렇다는 것인지는 독자들이 알고 판단할 문제다. 지난해 9월 26일자 블룸버그 통신의 기사에서는 ‘South Korea’s Moon Becomes Kim Jong Un’s Top Spokesman at UN(문재인 대통령이 유엔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수석 대변인이 됐다)’이라는 제목으로 실렸다.

이 기사를 송고한 기자의 이름(Youkyung Lee)을 보아 한국인으로 추정된다. 이유경 기자는 기사 내용에서 “김정은이 이번 주 뉴욕에서 열리는 유엔 총회에 참석하지 않았지만, 그에게는 자신을 위한 칭송의 노래를 불러주는 사실상의 대변인에 해당하는 사람이 있다. …문 대통령이 그 사람”이라고 주장한 있다. 그러면서 “올해 김 위원장과 세 차례 정상회담을 가진 문 대통령은 연설과 TV 출연 등을 통해 북한의 독재자를 자국 국민들의 경제 번영을 바라는 정상적인 세계 지도자로 묘사했다”고 전했던바, 이 내용들이 한국 대통령의 격을 낮춘 것이다.

국회 본회의에서, 특히 대표연설은 품격이 있어야 한다. 설령 정부여당의 실정을 공격하는 야당의 공격에서도 실정(失政)의 내용과 이로 인해 고통 받는 국민 입장을 낱낱이 밝히면서 대안을 내고 정당정책으로 변화시키겠다는 각오 등 품위 있는 말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어느 당대표이든 마치 싸움닭처럼 눈을 부릅뜨고 목을 내밀어 독설을 퍼붓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가뜩이나 어려운 국내외 상황에서 상처 난 부위에 소금뿌리는 행위는 공동선(公同善)이 아닌 것이다. 국민은 적어도 국회의 대표연설에서만은 민생국회의 희망을 보고 싶어 한다. 국민이 알고 싶고 듣고 싶어하는 정책 등은 자취를 감추고 교언영색(巧言令色)이나 ‘긁어 부스럼’ 격 같은 말로 본회의가 중단되고, 삿대질과 막말 장면을 보는 국민마음은 얼마나 암울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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