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찬일 (사)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 

 

대화와 협박, 웃음과 악담의 두 얼굴은 북한이 70여년 동안 써 온 말 그대로 ‘2중 전략’이다. 꼭 1년 전, 김정은이 판문점으로 달려올 때만 해도 우리 모두는 진정한 ‘한반도의 봄’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의 행차는 요란했고, 그 직전 평창으로 달려온 북한 예술단과 응원단 여성들의 미소는 무척이나 부드러웠다. 지난달 28일 베트남의 하노이에서 결렬된 제2차 북미정상회담의 드라마는 우리 모두에게 과연 북한은 비핵화를 하겠다는 건지 말겠다는 건지 의문의 먹구름만 드리워주었다. 이제 김정은 위원장은 그 ‘진심’을 보여줄 때가 되었다고 본다. 아니 벌써 최선희 외무성 부상을 통해 북한의 진심은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은 지난 15일 평양에서 가진 긴급 외신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미국의 요구에 어떤 형태로든 양보할 의사가 없다”면서 “미국과의 비핵화 협상을 중단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고 러시아 타스통신이 보도했다. 최 부상은 또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북한의 향후 행동 계획을 담은 공식 성명을 곧 발표할 것이라고 했다. 곧 드러날 김정은 위원장의 공식 입장은 그렇게 궁금한 것들이 아니라고 생각된다. 그의 생각은 이미 최선희 부상의 기자회견에서 어느 정도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최선희 부상의 말은 50년이 넘은 영변 고철 시설 이상은 내놓을 생각이 없다는 뜻이다. 북한은 중국이 핵실험에 성공한 1964년부터 핵개발에 착수했다. 영변 플루토늄, 우라늄 시설은 이미 북핵 생산의 주축이 아니며 대외 협상용 카드에 불과하다. 그것을 내주고 대북 제재의 사실상 전면 해제를 요구한다는 것은 핵을 보유하겠다는 것이다. 만약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하노이에서 김정은의 이 제안을 받아들였으면 세계의 전문가들은 이를 ‘북한 핵 보유 인정'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김정은이 진정으로 핵을 포기할 결단을 내렸다면 비밀 강선 등에 숨겨놓은 우라늄 농축시설과 핵탄두 등 핵심 문제에 대해 미국과 다시 대화를 시작했을 것이다. 그런데 다시 통하지도 않을 ‘협박’으로 돌아가고 있다. 처음부터 핵을 포기할 생각이 없었고 ‘비핵화 쇼'로 핵 보유를 굳히려는 이른바 ‘핵군축 전략’을 들고 나오고 있는 것이다. 김정은이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 우리 특사단과 미국 측 관계자들에게 “트럼프 대통령 임기 내에 완전한 비핵화를 하겠다” “뭐 하러 핵을 쥐고 고생하겠느냐” “내 자식들까지 핵 짊어지고 살게 하고 싶지 않다”고 했던 말들은 모두 마음에 없는 헛말이었음이 드러났다. 

묻고 싶다. 벌써 10여년 전인 지난 2009년부터 북한의 정보기관과 교류해온 미국 정보 당국 수장 전체가 이 사기극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단 말인가. 물론 미국의 정보 당국은 대통령에게 북한의 진심을 수차례 보고했고, 이제 트럼프도 어느 정도 내막을 알고 있었다. 우리 정부 역시 이미 오래전에 알았을 것이다. 다만 모른 척하며 모두 잘 될거야 라는 낭만주의 환상에 젖어있었던 것은 아닌지 반성할 때가 됐다고 본다. 속임수가 통하지 않으면 판을 깨겠다고 협박하고 나오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며 벌써 25년 동안 반복적으로 써온 북한의 고유수법이다.

북한은 핵실험을 더 할 필요가 없다. 이미 여섯 차례의 핵실험으로 충분하게 수소폭탄급의 폭발력을 얻었기 때문이다. 더 이상의 핵실험은 공들여 생산한 핵물질의 낭비가 된다. 다만 미국이 싫어하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는 계속 저울질하면서 미국의 인내를 시험할 것이다. 간혹 경우에 따라 실제 발사를 통해 판을 깨고 유리한 위치에서 협상을 다시 시작하려 할 수도 있다. 북의 이런 뻔한 전술에 더 이상 놀아나서는 안 된다. 북한은 선을 넘는 장난을 할 수 있어도 결코 마지막 선을 넘지는 못한다. 김정은이 잃을 것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김정은 위원장이 제아무리 배짱이 있어도 북한 전체를 잃을지도 모르는 ‘플랜 B’를 자초하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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