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 진주=최혜인 기자] 김경수 진주교육대학교 과학교육과 교수(진주교대 부설 한국지질유산연구소장). ⓒ천지일보 2019.3.16
[천지일보 진주=최혜인 기자] 김경수 진주교육대학교 과학교육과 교수(진주교대 부설 한국지질유산연구소장). ⓒ천지일보 2019.3.16

정촌, 육식공룡 발자국 4000여개 발견

진주혁신도시, 익룡 발자국 2500여개

‘세계 3대 공룡발자국’ 고성보다 풍부

문화재청 “화석 갈라짐, 보존 어려워”

훼손·유실되는 화석 “市에서 보존해야”

[천지일보 진주=최혜인 기자] “세계에서 공룡발자국 화석이 가장 많이 밀집한 곳은 중국에 있는 화석산지로 그 수가 2200개입니다. 그런데 진주 정촌에서 발견한 발자국이 4000개에 달합니다. 이 소중한 문화유산이 사라질 운명에 처해 있습니다. 모두가 한목소리로 지켜야 합니다.”

지난 5일 오후 김경수 진주교육대학교 과학교육과 교수가 정촌면 뿌리산업단지 공룡발자국 발굴현장을 다녀온 뒤 이같이 밝혔다.

지난해 10월 진주 정촌면 뿌리산업단지 조성공사 중 4000여개로 추산되는 육식공룡 발자국이 무더기로 발견됐다. 이는 지난 2010년 진주혁신도시 조성공사 과정에서 발견된 2500여개에 달하는 익룡발자국 화석에 이은 대규모 발견이다.

당시 현장에는 일명 ‘매의 눈’으로 불리는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한국지질유산연구소의 소장을 겸하고 있는 김경수 교수이다. 현장 작업이 많아서인지 추운 겨울날에도 검게 그을린 피부가 그의 고생을 증명하는 것 같았다. 김 교수는 진주일대에서 10여 년째 숱한 화석들을 발굴해 온 고생물학자로, 화석의 가치를 알리는 데 모든 힘을 쏟고 있다.

김경수 교수 공룡발자국 화석 현장 발굴 모습. (제공: 김경수 교수) ⓒ천지일보 2019.3.16
김경수 교수 공룡발자국 화석 현장 발굴 모습. (제공: 김경수 교수) ⓒ천지일보 2019.3.16

화석의 중요성을 묻는 기자에게 김 교수는 “화석은 과거의 역사이자 곧 우리의 역사라고 생각한다”며 “과거 역사를 보면 아버지, 할아버지, 나아가 선조들이 무엇을 했고 어떻게 살았는지 알 수 있듯이 1억년 전이라도 화석을 통해 우리의 자연과 우리 땅에 누가 살았고 무엇을 했는지를 알 수 있다. 과거와 대화 할 수 있는 통로와도 같다”고 설명했다.

이어 “예전엔 화석을 상거래가 가능한 재화(財貨)로 인식했는데, 지금은 가치를 돈으로 매길 수 없는 문화유산으로 보는 시각이 많이 생겼다”며 “현재 여러 나라에서 화석 거래가 금지돼 있고, 심지어 중국에선 외국에 반출한 사람이 사형선고를 받은 사례도 있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화석 중 공룡 화석은 주로 남해안 일대에서 집단적으로 발견된다. 특히 세계 3대 공룡발자국 화석지로 꼽히는 경남 고성군이 대부분 초식 공룡이었다면 최근 진주 정촌에서 발견된 화석은 대부분이 육식 공룡이다.

올해와 지난해만 해도 진주에서 ▲세계 최소 랩터 공룡발자국 ▲공룡발바닥 피부자국 화석 ▲세계 최초 백악기 뜀걸음형 포유류 발자국 화석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개구리 발자국 화석 등이 발견됐다. 또 그동안 익룡발자국, 대형 용각류 발자국 등 이름만 들어도 예사롭지 않은 다양한 공룡 화석이 발견됐다.

김 교수에 따르면 이는 수적으로 보나 다양성으로 보나 세계 최다 수준이다. 정촌면도 보존만 된다면 전 세계 30여 곳뿐인 대규모 화석산지인 ‘라거슈타테(대규모 화석 발견지)’로 인정될 가능성도 기대되는 대목이다.

소형 육식 공룡발바닥 피부 자국. (제공: 김경수 교수) ⓒ천지일보 2019.3.16
소형 육식 공룡발바닥 피부 자국. (제공: 김경수 교수) ⓒ천지일보 2019.3.16

하지만 이러한 세계적 규모의 문화유산이 안타깝게도 사라져버릴 운명에 놓여있다. 정촌면 뿌리산업단지 내 발굴지 지층이 밀려 화석이 갈라지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에서는 균열이 생긴 현장을 둘러보곤 화석보존이 어려울 것 같다는 부정적인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아직 이렇다 할 답변이 없어 현장보존 여부는 여전히 불투명한 상황이다. 일각에선 산업단지 개발 과정에서 훼손이 일어났다는 지적도 있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개발이 없었으면 화석 발견도 없었을 것”이라며 “‘무조건 개발 또는 보존하자’라기보다는 서로 조화가 돼야 한다. 개발도 중요하지만 발견된 소중한 유산들을 보존할 수 있는 프로세스가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문화재보호법 1조가 문화재를 보존하고 이를 통해 국민, 나아가 인류문화 발전에 기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며 “개인과 기업이 투자해 토지개발을 하다가도 문화재가 발견되면, 문화재청과 관계자들이 함께 절충해서 문화재를 보존할 수 있는 방향을 우선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진주의 공룡발자국 화석산지와 같이 가치가 높은 곳은 국가에서 문화재로 지정해 국비로 사들이는 것도 필요하다고 본다”며 “이를 통해 유실될 수 있는 문화재도 보존하고 관광자원화도 할 수 있다. 이는 고성 공룡박물관처럼 지역경제 활성화로도 이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공룡발자국 관광자원화에 대해 김 교수는 “고성 공룡박물관 방문객 수 조사를 하니 매년 28~34만명으로 발걸음이 꾸준하다. 화성시도 공룡알 화석지만으로 ‘코리요’ 캐릭터, 3D 상영관 등 관광화에 성공했다”며 “이는 공룡이라는 주제 덕분이다. 진주는 공룡 화석에 관해선 거의 모든 종류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관광자원화 가치가 충분하다”고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소형 육식 공룡 발자국화석 표본 사진. (제공: 김경수 교수) ⓒ천지일보 2019.3.16
소형 육식 공룡발자국 화석 표본 사진. (제공: 김경수 교수) ⓒ천지일보 2019.3.16

또 그는 “‘진주층’은 약 1억 1200만년 전 중생대 백악기 초기의 지질시대에 형성된 지층으로 대부분이 층층이 쌓인 퇴적암으로 구성돼있다”며 “그래서 산단 조성 등 대규모 공사를 하면 대부분 공룡발자국 화석이 나온다. 진주, 사천 지역이 그렇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그러면서 “지금까지 30년 넘도록 이 진주층에서 줄곧 화석이 나와도 진주시는 ‘화석은 안된다’고 외면했다. 유수리를 포함해 그동안 시에서 무관심으로 일관해 왔고, 없어지거나 훼손된 화석이 너무 많아 아쉽다”고 지적했다.

또 “진주시가 화석보존에 반대만 하기보다 지역을 더 풍요롭게 만드는 행정을 해야한다”며 “다시는 볼 수 없는 좋은 표본들이 나오는 지금, 소중한 문화가 없어지기 전에 시에서 먼저 나서서 관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일침을 가했다.

앞으로 어떻게 기억되길 원하는지에 대해 김 교수는 “학자라고 하면 실험실에 앉아서 연구하는 걸로 생각하기 쉬운데 대부분의 화석 문화재는 야외에서 발견된다. 논문도 중요하지만 현장을 얼마나 충실하게 뛰고 조사하는지에 따라 그 문화재 전반에 대해 제대로 알 수 있고 보존도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누군가 ‘화석 사냥꾼’이란 표현을 썼는데 어감이 좀 그렇다. 같이 연구하는 외국인 학자들은 독수리 눈을 뜻하는 ‘이글 아이’라고 부른다”며 “개인적으로는 야외 조사를 충실히 하는 ‘야외 고생물학자’로 불리고 싶다”고 포부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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