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보는 역사] 역사 속 군인 (6)
[사진으로 보는 역사] 역사 속 군인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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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위대(1890년대) (제공: 정성길 계명대 동산의료원 명예박물관장) ⓒ천지일보 2019.3.15
진위대(1890년대) (제공: 정성길 계명대 동산의료원 명예박물관장) ⓒ천지일보 2019.3.15

진위대(1890년대)

1895년(고종 32) 9월 지방의 질서 유지와 변경 수비를 목적으로 설치된 최초의 근대적 지방 군대인 진위대의 모습이다. 제3차 김홍집(金弘集) 내각이 성립되자 훈련대를 해산하고 9월에 육군편제강령을 반포, 이 강령에 의해 육군은 서울 수비를 위한 친위대와 지방의 진위대로 재편됐다.

사진 속 말을 타고 있는 군인들의 모자에 달린 깃털(수술)이 마치 군악대를 연상시킨다. 행사할 때 의장을 갖춘 모습이다. 대한제국 시절 중앙군인 시위대 휘하에 유지된 걸로 알려져 있다. 옆으로 보이는 담은 덕수궁 돌담길이다. 왕이 행차할 시 호위하는 임무를 맡았다. 호위 깃발은 함부로 들고 다니지 않으며, 모자에 끼운 깃털도 함부로 달지 않는다.

 

군부대신과 유람단 수행원(1895) (제공: 정성길 계명대 동산의료원 명예박물관장) ⓒ천지일보 2019.3.15
군부대신과 유람단 수행원(1895) (제공: 정성길 계명대 동산의료원 명예박물관장) ⓒ천지일보 2019.3.15

군부대신과 유람단 수행원(1895)

1895년 청일전쟁 당시 금주(金洲)에 방문한 관전사 일행의 모습이다. 명성황후 시해를 사전에 계획한 일본공사 미우라는 고종의 관심을 얻기 위해 대신들을 중국 금주로 보냈다.

군무대신을 포함한 유람단 일행은 중국 금주에 주둔하고 있는 일본군 제2군 사령부의 군사훈련을 견학했다. 당시 이들은 명성황후의 신임을 받고 추천된 관료들이다. 중앙에 칼을 들고 있는 사람은 조희연 지휘관이다.

조희연 지휘관은 명성황후가 시해되자 2개월 후 해임되고 조직도 해산됐다. 중앙지휘관 우측은 이승구 참령, 좌측에는 신태림 행정수석관이 앉아 있으며, 좌측에서 2번째는 이봉호 대신의 모습이다. 사진에서 당시 지휘관 복장과 군복, 모자, 신발 등이 어떠했는지를 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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