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암도기박물관이 운영하는 생활도예교실에 수강생들이 참여해 도기를 만들고 있다. (제공: 영암 도기박물관) ⓒ천지일보 2019.3.15
영암도기박물관이 운영하는 생활도예교실에 수강생들이 참여해 도기를 만들고 있다. (제공: 영암 도기박물관) ⓒ천지일보 2019.3.15

한·중·일 문화교류의 관문
월출산 주지봉 下 구림마을
붉은 황토로 질그릇 만들어
구림도기가마터 학술 가치↑
구림도기, 시유도기전환 계기

[천지일보 영암=김미정 기자] “일상생활에 사용하기엔 질그릇이 최고죠.” 
전남 영암군 소호면 장천리의 그릇 문화를 보면 삼국시대부터 영암의 그릇 문화가 이어져 온 것을 알 수 있다. 그릇은 불의 온도에 따라 토기, 도기, 자기로 구분되는데 이곳 영암에선 일상생활에 쓰였던 질그릇인 토기부터 자기까지 이어진 역사를 알 수 있다. 
기자는 지난 12일 영암 도기박물관을 찾았다.

◆ 영암 구림마을과 도기

전남 영암군 월출산 주자봉 아래 아늑하게 자리 잡은 구림마을. 구림마을은 일본에 천자문과 논어를 전한 왕인박사와 통일신라 시대의 선승 도선국사, 고려 개국공신 최지몽이 태어난 마을이기도 하다. 
이곳에는 한국최초의 유약 도기 생산지를 증명하는 구림도기가마터(사적 338호)가 있다. 
또 영산강 물줄기를 따라 선사시대 청동기·철기문화 유입은 물론 고대 중국과 일본의 교역로였던 상대포가 있어 한·중·일 문화교류의 관문이었다. 

발굴된 구림도기가마터는 도기박물관 근처에 있다. 지난 1986년, 1996년 이화여자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발굴 조사된 가마터는 8~9세기 통일신라 시대에 운영한 대규모 도기 제작장으로 증명됐다. 이곳에서 출토된 저화도, 고화도 환원소성의 생활 용기와 녹갈색, 황갈색, 흑갈색 시유도기들은 도기에서 자기로의 기술발전과정을 살필 수 있어 학술 가치가 매우 크다. 

가마는 통일신라에서 고려 시대로 이행되어 전환기에 운영됐으며 구조는 도기 요지로 반 지하식의 단실 등요(터널 모양의 가마, 登窯)이다. 언덕에 굴을 파서 가마터로 활용한 것이다. 이곳에서 발굴된 토기, 도기, 자기를 통해 구림도기가마터가 시유도기의 발원지인 것을 알 수 있다. 이세용 문화해설가는 “영암의 가마터가 발견될 즈음 다른 지역에서도 가마터가 발견됐으나 유약이 발린 도기가 나온 곳은 여기뿐”이라며 “영암도기가마터가 시유도기의 발원지임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영암 도기박물관 상설전시실에 전시된 옹관. (제공: 영암 도기박물관) ⓒ천지일보 2019.3.15
영암 도기박물관 상설전시실에 전시된 옹관. (제공: 영암 도기박물관) ⓒ천지일보 2019.3.15

◆ 도기 발전 계기가 된 지리적 요건

영암군의 옛 지도를 보면 예전에는 물이 상대포까지 들어와 배를 통해 일본이나 중국까지 교류한 것을 알 수 있다. 이세용 문화해설가는 “지도에 보면 숫자 기록이 있는데 당시 수심을 기록한 것”이라며 “항해할 때 수심을 고려한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도기박물관 1층에 전시된 옹관에서도 선조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다. 옹관은 무덤으로 사용된 것으로 크기가 일반 도기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다. 이 문화해설가는 “옹관을 보면 아래는 두께가 두껍고 위로 갈수록 얇은 것을 알 수 있다. 불 온도를 똑같이 하면 얇은 곳은 녹아버리고 두꺼운 곳은 구워지지 않을 것을 예측해 볼 때 그 시대 선조들은 오로지 감각으로만 불 조절을 했다는 것이다. 지금의 우주기술보다도 더 놀랍다고 봐진다”고 감탄했다. 이어 “옹관의 크기를 봐서 일반 그릇처럼 가마 안에 집어넣을 수 없다. 불길을 올릴 곳에서 옹관을 만들고 그 위에 가마를 덮어 굽고 구워지면 가마를 깨는 식으로 옹관을 만들었다”고 덧붙였다.

영산강 물줄기를 따라 영암이나 전남은 가마터가 많은 편이다. 이세용 문화해설가는 “무역을 하다 보니 기술을 빨리 도입할 수 있었을 것이고, 원료인 황토가 많다. 또 그릇은 구워야 완제품인데 영암과 전남에는 산새가 잘 조화돼 땔감을 구하기 수월했을 것이다. 즉 기술, 흙, 땔감 삼박자가 갖춰져 가마터가 많이 형성된 것”이라고 말했다. 

영암 도기박물관에 전시된 청자 사리암 또한 중요한 자료다. 영암 자연부락에 있던 절터 오층석탑에서 발견된 사리암에는 누가 언제 세웠는지 기록이 남아 있어 흥미진진하다. 이 문화해설가는 “1009년도인 것을 봐서 그 당시 영암에서 청자가 만들어졌다는 것을 증명한다”며 “강진은 960년의 청자 역사를 가지고 있어 영암이 강진보다 먼저 청자를 만든 것 아니냐고 추측해 볼 수 있는 자료”라고 했다. 

도기박물관의 1층 자료실을 통해 구림도기의 역사를 알아봤다면 2, 3층에서는 분기별로 진행하는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현재는 왕인박사축제를 앞두고 전시를 준비 중이다. 전국적으로 작품을 기증한 하정웅 선생의 전시물도 볼 수 있다. 일본에서 전파상과의 인연으로 돈을 벌어들인 하정웅 선생은 어릴 적 꿈이 화가였다고 한다. 그는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없는 대신 이우환 화가를 비롯한 여러 작가를 도왔다. 

한편 영양군은 천혜의 부존자원인 붉은 황토를 이용해 옛 구림도기의 전통을 잇고 현대인의 미감에 어울리는 영암 도기를 생산하고 있다. 직접 황토로 도기를 만들어 볼 수 있는 체험과 왕인문화축제 기간에는 전시된 도기를 할인 판매하기도 한다. 군에서 관리하지만 1급 박물관으로 승급된 도기박물관 자리는 한때 폐교였던 곳이다. 따뜻한 봄 구림마을의 도기 역사를 알아보고 세상에서 하나뿐인 그릇을 가족과 함께 만들어보길 추천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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