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병 정치평론가  

 

.1운동의 결실로 탄생한 ‘대한민국 임시정부’, 올해가 그 100주년이 된다. 100여년 전의 조선은 나라만 빼앗긴 것이 아니었다. 갈등과 반목, 분노와 저주 그리고 냉소와 절망이 온 나라를 뒤덮었다. 점점 친일 주구(走狗)들의 세상으로 급변해 가면서 백성들의 숨소리조차 자유롭지 못했다. 다수의 항일투사들이 이 땅을 등지고 만주와 연해주 등으로 거처를 옮길 수밖에 없었던 배경이다. 수천년을 지켜왔던 민족적 자긍심과 공동체에 대한 신뢰가 깨지면서 우리는 정신마저 피폐해졌다. 그럼에도 떨쳐 일어난 ‘의병운동’은 동토에 피어난 한 떨기 봄꽃 같았다.

이런 상황에서 폭발한 3.1운동은 민족적 경각심을 호소하고 일제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거대한 항쟁의 신호탄이었다. 따라서 ‘3.1운동’이라는 개념은 그 자체부터 모욕적이다. ‘운동’이라니. 그리고 ‘3.1’이라는 날짜만 남은 채 그 의미마저 생략돼 버렸다. ‘3.1민중독립항쟁’으로 표현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물론 그 이후 일제의 탄압은 더 극악해졌고 또 그만큼 우리의 항쟁사도 더 뜨거웠다. 이런 이유로 1945년 해방 이전까지 우리가 겪었던 탄압과 모욕, 고통과 피울음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그 이상이었다. 그러는 사이 다수의 인사들이 다시 친일 주구로 돌아섰던 통한의 역사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대한민국 100년, 오늘의 한국정치

그로부터 100년이 지난 지금의 대한민국은 그 이전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성장하고 발전했다. 말 그대로 전 세계가 놀라는 수준이다. ‘민족적 저력’이라는 말이 실감날 만큼 대한민국은 커졌다. 경제뿐만 아니라 정치, 문화 등 모든 면에서 우리의 국력이 몰라보게 신장됐다는 점은 누구도 부인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하지만 지난 100년의 역사는 자랑스러움 못지않게 아프고 아쉬웠던 대목도 적지 않다. 특히 ‘분단’의 현실은 가장 아픈 대목이다. 그리고 그 연장선에서 기존의 기득권세력을 재생산하는 데 앞장섰던 독재정권의 아픈 역사가 남긴 유산들은 지금껏 우리의 발목을 잡는 ‘족쇄’로 작동되고 있다. 일찌감치 청산했어야 할 치욕의 유산들을 제때 정리하지 못한 우리 현대사의 비극이라 하겠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지난 100년의 영광을 말하기도 부담스러울 만큼 더 큰 위기에 봉착해 있다. 그 직접적인 원인이야 따로 짚어 봐야겠지만 지금의 문재인 정부는 참으로 거대한 갈림길에 서 있는 형국이다. 촛불을 든 ‘피플 파워’로 역사적인 정권교체의 위업은 이뤄냈지만 국정현실은 안타깝다 못해 위태롭다. 특히 사실상 정권의 명운을 걸었던 북미관계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 듯하다. 물론 지난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의 상처를 ‘이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 정도로 이해하고 있지만 미래를 마냥 낙관할 수만은 없다는 위기감도 적지 않다. 게다가 경제현실은 이미 질식할 만큼 벼랑 끝으로 몰리고 있다. 며칠 전 한 지인의 개인사업장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가 보여준 현실은 한마디로 참담했다. 희망보다 절망, 절망보다 분노가 앞서는 현실 앞에 필자도 딱히 다른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과연 정부와 여당 측 인사들은 이런 현장의 처참함을 알고나 있을지가 더 궁금했다.

그래서 ‘정치’가 중요한 것이다. 지금의 이런 현실을 제대로 바꿀 수 있는 대안을 만드는 것이 곧 ‘정치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의 우리 정치는 대안이나 희망은커녕 사실상 ‘막장’으로 가는 기류가 역력하다. 난데없이 1970-80년대의 이데올로기 싸움이 다시 극성을 부리고 있다. 입만 열면 ‘좌파’니 ‘수구’니 하는 색깔론이 연일 의정 단상을 때리고 있다. 심지어 그들 주변에서도 그런 발언을 막거나 비판하기는커녕 오히려 잘했다고 박수치고 응원하는 목소리가 연일 쏟아지고 있다. 이는 정치적 담론을 넘어 ‘저주’에 가깝다. 의회정치의 모습이 아니라 사실상 ‘막장정치’에 다름 아니다.

언어의 품격도 수준 이하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김정은 수석 대변인’이라고 칭하는 것은 해도 너무했다. 외신을 인용했다는 방패 뒤에 숨으려 했지만 말한 그 사람의 수준에 딱 맞는 표현일 것이다. 그러니 입맛에 맞는 말을 골라 인용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애써 그 표현이 대통령을 모욕했다느니, 국민까지 모욕했다느니 하는 말은 하지 않겠다. ‘말’도 말을 알아듣는 사람에게 말을 해야 ‘말’이 되는 것이다. 그냥 지금 ‘우리 정치의 수준’이라고 자책하는 것이 오히려 타당하지 않을까 싶다.

우리 정치의 이런 비극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오히려 ‘희극’이 되는 이 참담한 정치현실이 더 절망적이다. 국회윤리위 제소 운운하며 맞장 뜨는 민주당의 태도는 오히려 더 불쾌하다. 국회윤리위에 제소하겠다고? 지나가는 소도 웃을 일이라는 것은 그들도 알고 있을 것이다. 민주당은 스스로에게 얼마나 엄격했단 말인가. 이젠 그런 쇼도 지겹다. 어쩌면 속으로는 자신들의 지지층이 더 결속하는 ‘반사효과’를 기대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반대로 자유한국당도 마찬가지이다. ‘막장 정치’로 가더라도 지지층을 더 결속시킬 수 있는 동력이 확보되며 내부 결속도 더 강화할 수 있다는 계산을 하고 있을 것이다. 이대로만 가면 자유한국당은 내년 총선에서 제1당 아니면 최소한 제2당이 될 수 있다는 확신을 하고 있을 것이다. ‘적대적 공생관계’가 만들어 낸 비극적 희극의 상징적 모습이다. 그 가운데서 고독하리만큼 한국정치의 미래와 ‘상식의 정치’를 고민하는 바른미래당 김관영 원내대표의 교섭단체 대표연설은 그 감동만큼이나 더 아프고 더 슬프게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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