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이진홍(1945~  )

꽃처럼 그는 갔다
들판에 서서 가슴이 뻐근하다
귓가를 스치는 바람이
그의 숨결임을 알겠다
행간에 묻은 물기가
그의 눈물 자국이었음을 짐작한다
지나간 청춘이 가물거리고
이제야 알겠다
그는 내 마음의 들판에
단단하게 박힌 돌
가슴이 뻐근한 이유를 알겠다.

 

[시평]

한 사람이 떠나고 나면, 그 여운은 그 사람과의 관계, 사람이 끼쳤던 영향 등에 의하여 크거나 혹은 작거나 한다. 그저 지나가듯 스쳐지나간 사람이라면, 그 사람에 대한 여운이 그리 크지를 못할 것이다. 그러나 가슴에 오랫동안 자리했던 그 사람이 떠나고 나면, 떠난 그 사람으로 인하여 오래 오래 가슴이 먹먹해질 것이다.
그래서 떠나간 그 사람을 생각하면, 가슴이 뻐근해지기도 하고, 문득 귓가를 스치는 바람결에게서도 그 사람의 숨결을 느끼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가 살아가며 만나는 삶속의 어느 행간, 그 사이에 묻어 있는 물기가, 문득 그 사람이 흘린 눈물자국이 아닌가 생각하기도 한다. 
그 사람, 마치 저 들판에 서서 나에게 화사한 꽃을 피워보이던 꽃나무와 같던, 그런 사람이었기에. 그 사람, 그리하여 내 마음의 들판에 단단히 박혀 있던 돌과 같은 사람이었기에. 그 사람 그 사람이 떠나고 난 뒤에 비로소 그 사람 알 것만 같다. 그 사람 얼마나 나에게 소중한 사람이었는지를. 그러나 떠나고 난 뒤에야 비로소 그 소중함을 깨닫는 것, 그러함이 우리들 우매한 사람들의 모습이 아니겠는가.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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