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우 안전사회시민연대 대표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 대표의 발언으로 온 세상이 시끄럽다. 나 대표는 국회 연설에서 “문대통령은 김정은의 수석대변인”이라는 표현을 인용했다. 외신을 빌어 문대통령을 공격한 것이다.

문대통령을 반대하는 사람들 가운데 일부는 할 말을 했다며 박수를 치고 있지만 국민 대다수는 얼굴을 찌푸리며 혀를 끌끌 차고 있다. 언어의 품격을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게 본질은 아니다. 나 대표는 연설문에서 분단국가의 상처를 헤집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자신과 자신이 속한 정당에 이익이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집권세력이 잘못하면 호되게 비판해야 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비판은 생명수 같은 역할을 하지만 이성과 합리에 기초하고 사실에 바탕을 둬야 한다. 나 대표의 발언엔 많은 무리가 있다. 연설문은 반대를 위한 반대, 비판을 위한 비판으로 점철돼 있다. 정적을 상대로 “너 죽고 나 살자”는 내용이다. 내가 잘 해서 상대방을 따라오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깎아내려 나의 존재감을 키우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색깔 공세로 일관하고 있다는 점이다.

“문대통령은 김정은의 수석 대변인”이라는 발언은 문대통령을 ‘빨갱이’로 낙인 찍는 행위이다. 문대통령이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에서 ‘빨갱이’라는 말이 정치적 반대자를 공격하는 언어이고 일제의 잔재라고 표현했을 때 자유한국당은 사실에도 부합하지 않지만 국민을 분열시키는 내용이라고 비판했다. 문대통령이 말한 ‘빨갱이 공세’의 전형적인 사례가 “문대통령은 김정은의 수석 대변인”이라는 나 대표의 발언이다.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일본 제국주의는 1925년 4월 조선치안유지법을 제정해 ‘불량선인’이라는 이름의 ‘빨갱이’ 사냥에 나선다. 일본 통치 질서에 순응하는 세력만 예외였을 뿐 민족해방과 독립을 추구하는 모든 세력, 심지어 조선어를 연구하는 사람들에게조차 치안유지법을 적용해 감옥에 집어넣고 모진 고문을 가했다. 많은 사람이 옥사했고 사형을 당한 사람도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조선치안유지법은 1945년 10월 폐지됐다. 이승만 정권은 3년만에 조선치안유지법을 부활시켰다. 이름만 국가보안법으로 바꿨다. 많은 사람들이 우려를 표명했다. 조선일보조차 사설을 통해 국가보안법 제정에 반대했을 정도다. 이승만은 국가보안법의 칼날을 정적 제거와 공포 정치를 수행하는 무기로 썼다. 박정희 쿠데타 세력은 한 술 더 떠 반공법까지 만들어 정적을 죽이고 애먼 사람 간첩 만들어 생명을 빼앗고 가정을 파괴했다. 박정희는 국가보안법과 반공법으로 민주주의를 질식시키고 종신 집권을 꿈꿨다.

‘빨갱이’로 대표되는 색깔론은 일제 잔재일 뿐만 아니라 이승만 독재, 박정희 독재, 전두환 독재의 잔재다. 일제 잔재 청산도 못했지만 독재 잔재 청산도 못하고 넘어간 대한민국이다. 극우 세력이 친북이다 종북이다 빨갱이다 해서 시도 때도 없이 색깔론을 들이미는 것은 국가보안법이 건재하기 때문이다. 국가보안법을 안보를 위한 법률이라고 하는데 완전히 틀린 말이다. 극우세력과 공안세력의 안보를 위한 법률이라고 표현해야 맞다.

나 대표는 “문대통령은 김정은의 수석 대변인”이라는 말을 통해 ‘문대통령은 빨갱이요. 이 사람은 대통령 자격이 없습니다. 이 사람 버리고 나를 지지해 주세요!’라고 말한 것과 다름없다. 자유한국당은 ‘뭐가 문제냐’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날이면 날마다 색깔론을 써먹다 보니 무엇이 색깔론인지 구분이 안 되는 상태가 된 듯하다. 전희경 대변인은 나 대표의 발언을 지적하는 것이야 말로 색깔론이라고 말한다. 궤변이 아닐 수 없다.

국회 의석을 37%나 점유하고 있는 정당이 색깔론에 빠져 있다는 건 심각한 문제다. 불과 9개월 전만 해도 자유한국당은 국민 앞에 무릎 꿇고 모든 걸 바꾸겠다고 했다. 요즘 하는 행동을 보면 이전보다 더 색깔론에 매달리고 있다. 색깔론에 매몰돼서는 희망이 없다.

자유한국당이 색깔론에 의지하면 할수록 정치권은 이전투구가 될 것이고 합리와 이성은 실종되고 정책은 맨 뒷자리로 밀려날 것이다. 남북 화해와 한반도 평화, 민족통일은 더디어 질 것이다. 길은 하나다. 국민들이 나서서 색깔론을 추방해야 한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