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 소설가 문화칼럼니스트

생살이 찢기는 아픔이라 했던가. 자식 키우는 아비로서 나는, 차마 그 부모들의 마음을 감히 이해할 수 있겠다 말할 수는 없겠다. 자식을 가슴에 묻는다는 그 말을, 이제 이해할 수 있다고도 감히 말하지 못하겠다.

또 얻어터졌다. 얻어터진 날, 대통령이 나서 확전 방지를 운운했고 유엔 안보리에 회부 하겠다고도 했다. 식구가 강도에 맞아 죽고 있는데, 큰 싸움 되지 않도록 조심하되 뒷방 늙은이한테 일러 다시는 강도짓을 못하도록 하겠다는 뜻이었겠지, 아마. 만약 다시 공격해 오면 그때는 가만두지 않겠다고 했다.

다시 공격해 오면? 도둑이 대문을 열고 들어왔다. 가장이라는 자가 다짐한다. 안방으로 들어오기만 해 봐라! 도둑이 안방으로 들어왔다. 가장이 다짐한다. 물건에 손만 대 봐라! 도둑이 물건을 챙겨 아무 일 없다는 듯 사라진다. 가장이 다짐한다. 다시 한 번만 더 와 봐라! 우리가 얻어터진 게 이번이 처음인가?

왜 그리들 어설픈지. 고장난 대포는 무엇이며 엉뚱한 곳에 쏘아댔다는 건 또 무슨 소리인가. 헬기는 높으신 분들이 폼으로 타고 다닐 때만 쓰는 물건인가. 병사들이 생사를 다투는 그곳에 마땅히 떴어야 할 헬기 아닌가.

전쟁 상황이 발생했는데도 1시간이 넘도록 사이렌 소리 한번 울리지 않았고 대피하라는 방송도 없었다. 면사무소 직원들이 대피하느라 못 했단다. 그들의 생명도 존귀하지만 그럴 때 써먹으려고 국민들이 세금 걷어 월급 주는 것이다.

놀란 주민들이 고깃배를 타고 피난길에 올랐다. 해경과 해병대는 서로 자신들의 책임이 아니라고 우겼다. 피난을 가서도 주민들이 갈 곳을 몰라 고통을 겪었다. 누구도 나서서 야무지게 대책을 세웠다는 소리가 없었다. 만약 서울 한복판에 포탄이 떨어졌다면?

정부도 군인도 공무원도 도무지 믿을 만한 구석이 없다. 아마추어가 따로 없다. G20인가 나발인가 한다고 동네방네 떠들고 다녔지만 제 국민들이 목숨을 잃고 동네가 쑥대밭이 되어서도 속수무책이다. 우리 국가는 우리 국민을 보호하는가?

소말리아의 거지 같은 해적들한테 우리 배가 붙들렸다. 정부는 테러범과는 협상하지 않는다며 강 건너 불구경했다. 선주 회사가 950만 불이라는, 그들로선 살림이 거덜 날 돈을 갖다 주고서야 배를 돌려받았다.

해적 따위와는 협상하지 않는다는 게 무슨 뜻인지 알고나 하시는 말씀인지. 프랑스 정부도 똑같은 소리를 한다. 하지만 그들은 이렇게 한다. 2008년 4월 프랑스 요트가 소말리아 해적들에게 피랍됐다. 프랑스 정부는 몸값을 지불했다. 요트 주인이 알아서 돈을 준 것이 아니다! 돈을 건넨 즉시 해적을 추적했다. 프랑스가 자랑해 마지않는 대테러 부대 GIGN을 투입, 해적 1명을 사살하고 6명을 체포했다. 해적들은 모두 프랑스 법정에 세워졌다.

미국은 작년 4월 자국 화물선이 소말리아 해적에게 피랍되자 주저 없이 구출작전을 펼쳤다. 해적들을 사살하고 그들의 소굴로 추정되는 지역을 공중 공습으로 짓뭉개 버렸다. 영국은 해적선을 아예 침몰시켜 버린다. 많은 나라들이 자국 국민에게 해코지하는 해적들을 그냥 내버려 두지 않는다.

우리 민족끼리? 6.25는, 아웅산 사건은, 칼기 폭발은, 금강산 구경 간 박왕자 씨는, 우리 민족인 줄 몰라서? 민족이라는, 개념도 명확하지 않은 어설픈 단어에 붙여지는 부질없는 낭만.

국제경기에서 ‘우리 민족끼리’, 태극기와 인공기를 가슴에 단 이상 죽기 살기로 싸워야 하는 게 현실이다. 우리들은 지금 그러나, 이번에는 졌으니 다음에는 이겨야지, 하고 다짐하는 스포츠 경기를 하고 있는 게 아니다. 한 번의 패배로 모든 것을 잃어버릴 수 있는, 상상만으로도 숨이 멎을 것 같은, 무섭고도 잔인한 생존 게임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두 눈 부릅뜨고 아픈 현실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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