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량 작가

프랑스는 연금의 나라라고 알려져 있어 은퇴만 하면 비교적 여유로운 여생을 보낼 수 있다는 환상이 먼저 떠오른다. 그러나 연금은 월수입에 따라 징수되는 세금에서 책정되므로 고임금=고연금, 저임금=저연금의 논리를 피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최저 임금의 사기업 직원이 35~40년의 근속일수를 채우고 받는 연금은 프랑스 최저 생활 수당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최저 임금 750~1000유로일 경우 연금은 평균 400~500유로로 책정된다).

더군다나 이 최저 연금 생활자 중에는 하우스 푸어에도 속하지 못하는 층도 부지기수이다. 프랑스의 거리 노숙자들 중 최저 연금 생활자의 비율 또한 무시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현재 사르코지 정부가 내세우고 있는 62살 퇴직 연령은 ‘법정상의 은퇴 연령’에 불과하다.

사르코지 정부가 이러한 개혁안을 내놓기 전에도 ‘법정상의 은퇴 연령’을 고수하지 않는 것은 관례적으로 존재해왔다. 정규직 노장층이 연금을 제대로 받기 위해 ‘법정상의 은퇴 연령’을 늘릴 수 있는 융통성이 발휘될 여지는 충분하기 때문이다.

제대로 연금을 받을 수 있다면 ‘법정상의 은퇴 연령’에 상관하지 않고 최대 67세까지 연장하는 경우, 혹은 70세 이상으로 연장하거나 연금이 빈약하여 부업을 찾는 경우는 드물지 않게 관찰된다.

법정상 연령을 고수하려는 직업계통은 철도계 등 소위 하드코어계이다. 때문에 기관사들이 프랑스에서 파업이 일어나면 가장 먼저 반응하여 전국 교통망이 자주 마비되는 것이다. 그들의 법정상의 은퇴 연령은 일반직의 은퇴 연령에 비례하여 책정된다. 사르코지 정부가 일반직의 법정상 은퇴연령을 62세를 목표로 한다면, 철도계는 55세에서 57세로 책정된다.

결론적으로 연금개혁에서 가장 손해를 보는 층은 누구인가? 하드코어 직업계 그리고 연 수입이 낮은 하층민이다. 프랑스 시민은 대부분 자신의 연금을 계산하면서 경력을 쌓고 근속일을 채운다. 직업활동을 늦게 시작할수록, 세금 부담이 적은 비정규직 활동이 많을수록 연금은 낮게 책정될 수밖에 없다.

이미 비정규직이나 인턴사원으로 20대를 보낸 층이 두터워져 왔고, 여기서 프랑스 젊은이들의 불안이 가속되어 왔다. 가까스로 30대에 정규직을 얻은 성인들이 제대로 연금을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은 그만큼 낮아진 것이다. 법정 은퇴 연령 62세를 넘어 최고 67세까지 연장한다 하더라도, 그네들의 연금 주머니는 가벼울 수밖에 없다. 프랑스 젊은이들, 특히 현재 고등학생들은 지금까지 연금의 나라로 불린 프랑스의 환상적인 연금생활을 누릴 수 있는 기회가 유력하게 좁아진 셈이다.

고등학생들이 일찌감치 거리에 나선 것은 연금개혁이라는 직접적인 요인이 아니라 닥쳐올 직업시장의 척박함을 호소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학생들이 등교도 하기 전에 학교를 포위하고 있는 CRS(과격시위진압대)의 위압적인 태도와 거리에 나선 고등학생들을 향해 플래시 볼을 날리고 곤봉과 최루탄으로 강경대처하는 모습을 관찰하자니 6.8혁명 이전의 프랑스로 전환하는 풍경이 펼쳐지고 있는 듯하다.

연금 개혁안이 법안 양원에서 통과되었다고 하더라도 학생들과 노동계의 저항은 계속될 것이라고 한다. 저항정신은 프랑스인들의 정체성이다. 프랑스 대혁명, 2차대전 시의 레지스탕스, 그리고 6.8학생혁명의 주인공 프랑스인들의 저항정신이 21세기 신자유주의를 신봉하는 사르코지 정부의 물살을 뚫고 과연 어떻게 생존할 것 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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