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우 전 더불어민주당 기장군지역위원장

ⓒ천지일보 2019.3.11

최근 안락사가 법적으로 허용되고 있는 스위스에서 한국인 두 명이 의사조력죽음을 통해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이들 외에도 스위스에는 백여명의 한국인이 안락사 회원으로 등록돼 있다고 한다.

참고로 스위스는 외국인 안락사가 허용되는 유일한 국가이다. 한국에서도 지난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제 아버지를 제발 죽여주세요”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오면서 ‘안락사’ 허용 여부에 대한 논쟁을 촉발하기도 했다.

​안락사 허용을 주장하는 목소리는 한마디로 ‘인간은 스스로 죽음을 맞이할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프랑스의 여류작가이자 극단적 자유주의자였던 프랑수아즈 사강이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고 외쳤던 것과 동일한 맥락이다. 하지만 이 문제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 생명의 존엄성 등을 논외로 하더라도 자의적 선택 문제로만 환원하기 어려운 문제가 얽혀 있다.

안락사에 찬성하거나 반대하는 논거들을 살펴보기 전에 우선 안락사의 방식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안락사에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의사의 도움으로 약물을 주입해 죽음을 앞당기는 적극적인 것과 연명의료를 중단하는 소극적인 안락사, 즉 존엄사로 나뉜다. 적극적 혹은 능동적 안락사는 치명적인 주사를 놓는 등의 방식으로 A가 B를 죽이는 방식이다. 소극적 혹은 수동적 안락사는 생명유지 장치를 설치하지 않거나 제거함으로써 A가 B의 죽음을 허용하는 경우이다.

현재 논란의 중심이 되고 있는 것은 바로 적극적 안락사의 허용 여부 문제이다. 네덜란드가 최초의 허용국이었고 이후 스위스, 벨기에 등 일부 국가에서 법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지난해 2월부터 소극적 안락사에 해당하는 연명의료결정법(존엄사법)이 시행돼 3만 5000여명이 연명치료를 유보하거나 중단했고 11만 4000여명이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했다. 하지만 적극적 안락사에 대해서는 거론되지 않는 가운데 이미 100명이 넘는 한국인이 해외기관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

안락사 문제가 단순하지 않은 것은 방식에 있어서 ‘행위함과 행위하지 않음’ ‘죽임과 죽음의 허용’의 도덕적 문제가 간단하지 않기 때문이다. 죽이는 것과 죽도록 내버려 두는 일 사이의 구별은 생명을 구하는 것과 관련된 행위자의 의무와 경계를 설정하기 때문에 도덕적으로 중요한 것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자주 적극적 안락사와 소극적 안락사 사이에, 일반 수단과 특수 수단 사이에, 직접 의도된 죽음과 단지 예상된 죽음 사이에 어떤 본질적인 도덕적 차이도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공공정책은 경계선의 설정을 필요로 하므로 우리는 이들의 구별에 주목해야 한다.

모든 안락사가 비도덕적이고 금지돼야 할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흔히 미끄러운 경사길(slippery slope) 논증에 기초하여 안락사를 부당한 것으로 간주한다. 미끄러운 경사길 논증은 정당화된 살인은 사실상 부당한 살인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런 주장을 지지하는 경험적 증거는 거의 없다.

네덜란드에서는 적극적인 안락사와 관련된 사회적 실험이 현재 진행 중이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이 때문에 네덜란드가 미끄러운 경사길로 추락하고 있다는 어떠한 증거도 발견할 수 없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