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송범석 기자] 한국의 법 현실을 명확하게 진단한 책이다. 외국이나 우리나라의 과거 사례를 통해 우리 법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설정하고 있는데, 전공자가 아닌 일반인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배려한 점이 눈에 띈다. 추상적이고 어려운 법학 개념을 피하고 실생활에서 자주 접할 수 있는 소재로 관심을 끌고 있다.

가령 판례법 국가인 미국과는 달리 성문법을 채택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검사와 판사가 창의적인 법 해석을 할 수 있는 여지가 적다는 점을 지적한 뒤, 그 예로 우리 형법의 낙태 금지법이나, 학생 인권과 충돌하는 두발 단속을 들고 있다.

저자는 법조 윤리에도 많은 관심을 보낸다. 기본을 지키지 못하면 사회의 문제가 되고 법조인들끼리도 피해를 준다는 진단이다. 저자는 80년대 후반, 공갈로 구속된 A씨와의 일화를 떠올린다. A씨를 변호한 저자는 판사를 찾아가 보석을 신청했으나 항소심에서 기가됐다. 판사는 동일전과가 있기 때문에 실형이 불가피하다고 했다.

그런데 웃지 못할 일이 벌어졌다. A씨가 금세 풀려나 착수금을 돌려달라고 행패를 부리는가 하면, 당시 담당 판사가 법원을 나와 변호사 개업을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저자는 전과 때문에 보석이 안 된다던 사람이 어떻게 풀려났는지 조사를 해봤단다. 사건의 내막은 이렇다. 보석을 기각한 판사가 변호사로 개업을 하면서 자신이 보석을 기각한 A씨 사건을 맡아 다시 보석을 신청하게 된 것이다.

참으로 코미디 같은 일이다. 저자는 이 상황을 ‘모럴 해저드’라고 비꼰다. 문제는 이런 일이 흔하다는 것이다. 저자는 법조윤리가 바로 서야 한다고 재차 강조한다.

아울러 저자는 전관예우, 검사 스폰서 문제 등 변질된 한국의 법치를 꼬집으며 법의 끊임없는 변화를 주문한다.

김기섭 지음 / 시간여행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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