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었지만

한영옥(1950~  )

특별한 이유 없이 서로에게 좋은 마음결 두고
사심 없는 눈길 나누면서 마주치던 사이였다
어느 날 차나 한 잔 나누자면서 걸어가던 때
그에게 머리를 푹 묻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그날따라 외로움이 과하게 부푼 탓이었다
그러나 빠르게 허공 쪽으로 고개를 틀었다
그 순간의 절제를 오래 쓰다듬어주곤 했었다
그냥 그만한 정도의 일이 있었을 뿐이었다
안 보아도 괜찮고 보면 많이 반갑고 그랬다
오랜 일터에서 돌아온 후 연락이 점차 끊겼는데
그가 육신을 벗고 허공에 들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에 대한 예의처럼 진한 눈물 두 줄이 내렸다
아무 사이도 아니었지만, 아무 사이도 아니어서
맑은 눈물 두 줄이 천천히 내렸다

 

[시평]

사람이 무슨 필연적인 이유가 있어야 만이 만나고, 또 무슨 의미를 두는 것만은 아니다. 이 지상에 함께 살아간다는 그 이유만으로도 그 사람과의 관계가 이루어지는 것 아니겠는가. 사람과 사람의 사이, 사람과 사람의 관계라는 것이 대략 그렇다. 동시대를 살아가면서도, 그 추구하는 삶의 일이 서로 비슷하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실은 그 사람들 사이는 어떤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리라. 
그래서 특별한 이유 없이 서로에게 좋은 마음결 두고, 사심 없는 눈길 나누면서 마주치면 가벼운 눈인사를 주고받던, 그런 사이가 되고는 한다. 그러나 때로는 외로움이 과해지면, 자신도 모르게 그에게 머리를 푹 묻고 싶었던 적이 없지 않아 있지만, 빠르게 허공 쪽으로 고개를 틀어버리는 나름의 절제를 지니는 그런 사이이며 관계일 뿐이다.
어느 날 문득 그 사람이 지상에서 육신을 벗어버리고 떠났다는 부음(訃音)을 전해 듣게 된다. 부음을 듣는 그 순간, 실은 아무 사이도 아닌데, 자신도 모르게 진한 눈물 두 줄이 흘러내린다.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린다는 이 사실이 어떠한 것인지는 알 수 없어도, 그에 대한 예의, 아니 한 지상에 비슷한 일을 하며 비슷한 시기에 살았다는 그 이유에 대한 예의인지도 모른다. 비록 아무 사이도 아니었지만, 아무 사이도 아니지만.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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