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베리드> 주인공 폴 콘로이를 열연한 라이언 레이놀즈
[천지일보=이지영 기자] 누구나 한 번쯤 위험한 상황에 갇히게 되는 상황을 생각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엘리베이터 문이 갑자기 고장나 열리지 않는다면 밀려오는 그 공포감을 상상해보라.

지진이나 광산이 붕괴된 뉴스를 접하거나 전쟁이 난 지역에 출장을 왔다거나 불이 난 곳에 갇히거나 한다면 그 공포는 어떠할까. 영화 <베리드>는 이러한 최악의 상황을 소재로 극단적인 실험을 시도했다.

‘묻다’라는 뜻의 베리드. 영화 제목과 포스터를 통해 예상은 했지만, 정말 끝까지 묻혀있을 거라곤 예상치 못했다. 영화 <베리드>는 기막힐 정도로 우리에게 익숙해진 영화 공식을 깨버린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 들리는 주인공의 거친 숨소리가 영화의 첫 장면이다. 주인공 폴 콘로이(라이언 레이놀즈 분)가 라이터를 켜면서 그의 얼굴이 처음 눈에 들어온다.

입과 손은 묶여있고 피와 땀이 범벅이 된 모습이다. 그가 벗어던진 점퍼주머니에서 전화기를 발견하고 통화를 한다는 설정이 없다면 왜 주인공이 관속에 들어가 있는지 알 길이 없다.

그는 이라크에서 근무하는 미국인 트럭 운전사로 정체모를 납치범에게 갑작스런 습격을 받고 관 속에 실려 어딘가에 묻혔다.

관객은 콘로이의 휴대폰 속의 배터리 양까지 체크해가며 관 속의 상황에 몰입하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관객의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 생각은 ‘내가 저 관 속에 있다면, 나는 누구에게 전화를 하지’라는 생각을 연발한다.

이쯤 되면 과거 회상장면이나 바깥세상을 보여줄 법도 한데 앵글은 꿈쩍도 않고 관 속만 비춘다. 그리고 어느 순간 관객은 더운 숨을 몰아쉬는 주인공과 함께 관 속에 묻혀있는 자신을 발견하다.

영화<베리드>가 호평을 받는 이유는 현실 세계의 이면과 부조리가 극명하게 전달된다는 점이다. 주인공이 살려달라는 절박한 구조를 하지만 상대방은 정치적인 상황과 사회조직을 변명으로 책임을 회피할 방법만을 찾기 때문이다.

영문도 모른 채 관 속에 갇힌 주인공이 구조요청을 시도하는 수많은 통화를 통해 <베리드>는 거대 사회의 숨겨진 이면과 이기주의, 관료주의에 대해 과감히 이야기 한다.

시종일관 콘로이의 상황을 지켜보던 관객은 영화가 끝날 즈음 ‘폴 콘로이’와 함께 분노하고, 절망하게 된다.

보이는 이미지 보다 상상 속의 이미지가 갈망을 극대화시킬 수 있다는 장점을 극단적으로 시도한 이 영화는 할리우드에서 약 1년 간 돌던 ‘블랙리스트 시나리오(촬영하는 게 불가능하지만 내용이나 구성 등이 좋은 시나리오)’였다.

로드리코 코르테스 감독은 시나리오를 읽고 ‘가장 작은 공간에서 가장 위대한 이야기를 보았다’며 비할리우드적인 방식으로 영화를 완성시켰다.

스칼렛 요한슨의 남편으로도 유명한 주인공 라이언 레이놀즈의 열연도 놓치지 말아야 한다. 그는 ‘리허설 없이 한 번에 간다’는 원칙을 스스로 세워 관 속에서의 감정 몰입을 극대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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