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 제325호 기사계첩, 기사사연도(耆社私宴圖) (출처: 문화재청) ⓒ천지일보 2019.3.6
국보 제325호 기사계첩, 기사사연도(耆社私宴圖) (출처: 문화재청) ⓒ천지일보 2019.3.6

‘궁중행사도’ 중 가장 완성도↑

채색, 묘사, 명암법 적절히 사용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백발에 수염이 희어진 관료들이 차양이 설치된 실내에 앉아있다. 서로를 마주보며 차례로 앉아 있는 이들 앞에는 술상이 차려져 있다. 모두 열명이다. 한 명의 신하가 원로들에게 술을 돌리는데, 오른쪽에 있는 한 관료가 심상치 않다. 술이 과했는지 비틀거려 다른 신하가 부축하고 있다.

마루 아래 섬돌에는 법주가 담긴 청화백자 항아리가 두 동이 놓여 있다. 마당에는 청, 황, 홍, 백, 흑색 무복을 입은 무동이 처용무를 선보이고 있다. 음악 소리가 흥겨웠는지 마을 사람들도 삼삼오오 모여 연회를 구경하고 있다. 이중 두 사람은 마당에 뛰어들어 덩실덩실 춤을 추고 있다.

술과 음악, 춤이 공존하는 화려한 연회 장면이 담긴 이 그림은 ‘기사계첩’이다. 이는 숙종의 입기로소를 축하하는 기로회의 뒤풀이의 장면으로 화려한 채색과 등장인물과 사건을 꼼꼼히 묘사한 궁중기록화다.

◆연회장면, 술과 음악·춤 공존

문화재청(청장 정재숙)은 18세기 초 대표 궁중회화로 꼽혀 온 보물 제929호 ‘기사계첩’을 국보(제325호)로 지정한다고 6일 밝혔다.

기사계첩은 1719년(숙종 45년) 숙종이 59세로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간 것을 기념한 행사에 참여한 관료들이 계(契)를 하고 궁중화원에게 의뢰해 만든 서화첩이다. 1719년 4월 17~18일에 행사가 열렸다. 하지만 참석자들의 초상화는 1720년에 최종 완성됐다. 참석자의 얼굴을 섬세하게 표현하는 데 시간이 걸린 것이다.

계첩은 기로신(耆老臣) 중 한 명인 문신 임방(任埅, 1640~1724년)이 쓴 서문과 경희궁 경현당(景賢堂) 연회 때 숙종이 지은 글, 대제학 김유(金楺, 1653~1719년)의 발문, 각 의식에 참여한 기로신들의 명단, 행사 장면을 그린 기록화, 기로신 11명의 명단과 이들의 반신(半身) 초상화, 기로신들이 쓴 축시 등으로 구성됐다.

계첩은 5가지 순서로 기록됐다. 경희궁 흥정당에서 기로소에 어첩을 봉안하러 가는 행렬을 담은 ‘어첩봉안도(御帖奉安圖)’를 시작으로 이튿날인 2월 12일 기로신들이 경희궁 숭정전에서 진하례를 올리는 장면인 ‘숭정전진하전도(御帖奉安圖)’가 나온다. 4월 18일 경현당에서 왕이 기로신들에게 베푼 연회 광경인 ‘경현당석연도(景賢堂錫宴圖)’, 기로신들이 경현당 석연에서 하사받은 은배(銀盃)를 들고 기로소로 돌아가는 행렬인 ‘봉배귀사도(奉盃歸社圖)’, 기로신들이 기로소에서 연회를 행하는 모습인 ‘기사사연도’가 있다.

국보 제325호 기사계첩, 기로신 초상화 (오른쪽: 이유, 왼쪽: 김창집) (출처:문화재청) ⓒ천지일보 2019.3.6
국보 제325호 기사계첩, 기로신 초상화 (오른쪽: 이유, 왼쪽: 김창집) (출처:문화재청) ⓒ천지일보 2019.3.6

◆“보존상태 좋고 완성도 커”

이 계첩은 조선 후기 ‘궁중행사도’ 중에서도 가장 완성도가 높은 수준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계첩에 수록된 그림은 화려한 채색과 섬세하고 절제된 묘사, 명암법을 적절하게 사용해 사실성이 돋보이는 얼굴 표현이 잘 담겨 있다.

첩의 마지막 장에 제작을 담당한 도화서 화원 김진여(金振汝), 장태흥(張泰興) 등 실무자들의 이름이 기록된 것도 다른 궁중회화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기사계첩만의 특징이었다.

기사계첩은 수준 높은 색채와 구도, 세부 표현에 있어 조선 시대 궁중회화의 획기적인 전환을 가져온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는 18세기 이후 궁중행사도 제작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문화재청은 “제작 당시의 원형을 거의 상실하지 않았을 정도로 보존상태가 좋고 그림의 완성도가 매우 높아 조선 시대 궁중회화의 대표작으로 손색이 없어 국보로 승격할 가치가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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