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라곤 논설실장/시인

 

중국소설 ‘삼국지’는 중국에서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가장 많이 읽혀진 소설일 것이다. 중국 위(魏)·촉(蜀)·오(吳) 3국의 정사를 다룬 삼국지(三國志)는 진수(陳壽, 233~297)가 쓴 작품이지만 나관중(1330?~1400)의 ‘연의삼국지’가 더 알려지고 있는데, 이 소설은 진수의 삼국지 역사를 바탕으로 전승돼 온 이야기들을 원나라와 명나라 교체기의 나관중이 재구성한 장편소설이다. 본래 제목은 ‘삼국지통속연의’로 일반적으로 ‘연의 삼국지’로 불리고 있고, 수호전, 서유기, 금병매와 더불어 중국 4대기서(四大奇書)의 하나로 꼽히는 유명한 소설이다.  

삼국지 소설이 워낙 유명해 웬만한 사람이면 알고 있을 터에 필자는 학창시절 방학 때마다 그 소설을 읽었다. 열 번 정도는 족히 읽었으니 그 당시에는 위·촉·오나라의 맹장들과 전쟁터까지 훤히 꿰뚫었으나 세월이 흐른 지금은 대충 스토리만 떠오른다. 이처럼 삼국지가 유명한바 얼마 전 해외자료에서 중국인들이 가장 많이 읽은 소설 순위를 보니 1위가 삼국지, 2위가 ‘랑야방(琅琊榜)’이었다. 유명한 삼국지를 새삼스럽게 들출 필요가 없겠으나 역대 구독 2위였다는 소설 ‘랑야방’은 필자에게는 생소했지만 성공작인 드라마를 통해 새롭게 알게 됐다. 

이 소설은 ‘랑야방, 권력의 기록’이라는 제목으로 중국 베이징TV와 상하이둥방TV에 동시 편성되면서 2015년 9월 19일부터 10월 15일까지 방영될 당시 드라마로서도 인기를 끌었다. 중국 50개 주요 도시 시청률에서 1위를 기록했던 작품이고, 방송 초기에 일일 온라인 조회수 약 3억 3000만건에 달했다고 하니 이 드라마의 인기가 어떠한지를 짐작할 수가 있다. 드라마 주인공인 매장소 역의 후거(胡歌)는 중국 최고의 스타다.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 팔로워가 무려 3600만명에 달하는 후거가 주인공을 맡아 열연을 펼쳤고, 또한 중국인들에게 인기를 독차지하고 있는 배우들이 출동해 연기했으니 이 드라마에 영향을 미친 바가 크다 하겠다.

그 이듬해에 국내 방송사인 ‘중화TV’에서 54부작으로 방영했을 때 필자는 ‘랑야방’ 드라마를 연일 시청하면서 중드에 푹 빠졌던 기억이 난다. 정말 재밌는 드라마였다. 우리나라에서도 중드 신드롬을 몰고 온 ‘랑야방’은 그 이후에도 중화TV에서 몇 차례 재방영됐고, 지난달 18일부터 2월 13일까지 또다시 방영됐다. 역사드라마가 재방영될 경우 편성시간표 때우기거니 생각하고 시청자들이 지나치기 마련인데 이 드라마가 벌써 네 번째 방영됐지만 봐도 봐도 재미가 있으니 그만큼 작품의 구성도와 배우들의 연기력이 빼어나다는 증거가 아닐까. 

‘랑야방’의 드라마 내용은 이렇다. 중국 양나라(梁은 위·진·남북조 시대에 존재했던 나라)의 최고 장군 임섭과 그의 아들 임수(林殊)가 위나라 침략에 맞서 싸우는 중에 간신배들의 모함과 황제의 의심으로 인해 임섭과 7만의 적염군(赤焰军) 군대가 전멸했다. 17살의 아들 임수만 기적적으로 살아남게 되고, 기사회생한 임수가 13년의 준비 끝에 매장소라는 이름으로 도성 금릉으로 돌아와 태자와 황자들이 벌이는 양나라의 차기 권력 쟁탈전 중심에 서서 지원한다.
당시 권력 쟁탈전을 벌이던 태자와 예왕에게는 물론 조정과 궁 밖에서도 ‘매장소를 얻는 자가 천하를 얻는다’는 말이

나돌았으니 매장소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암투를 벌이는 가운데에서도 매장소(임수)는 권력서열에 못 미치는 정왕을 도왔다. ‘랑야방(琅琊榜) 서열 1위’인 매장소의 예리한 판단과 노련한 처세술로 정왕을 권력의 중심에 내세웠고, 마침내 적염군과 임씨(林氏)가문의 명예를 되찾는다는 이야기가 줄거리인데, 드라마 속에서 펼쳐지는 치열한 정치전략 대결과 남자들의 끈끈한 우정을 엿볼 수 있는 정치드라마로서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지난 설 연휴동안 ‘랑야방, 권력의 기록’ 드라마를 보면서 정말 드라마의 구성과 출연배우들의 연기가 출중함을 다시 한번 알 수 있었다. 드라마의 메인 홍보 “그를 얻는 자, 천하를 얻을 것이다”라는 말이 나돌 만큼 실력을 갖춘 매장소는 한 마디로 킹메이커다. 그가 시한부 삶을 살면서도 정해진 기간 안에 반듯하고 대의를 쫓는 7황자 정왕이 왕위를 차지하도록 하기 위해 어려운 상황들을 하나하나 해결해가는 과정은 긴장되면서도 속 시원함을 느낄 수가 있었다.

이 드라마를 몇 번 봐도 지루하지 않고 의미 깊은 것은 출연배우의 열연도 뛰어났지만 결론적으로 권력 쟁탈전에서 능력·인격면에서 자질을 갖춘 훌륭한 인물이 황제에 올랐다는 권선징악에 있다. 대의를 모르고 권모술수에 능한 자가 권력에 오르면 나라가 황폐하고 백성이 고달파지기 마련인데 이것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다를 게 없다. 우리헌정사에 남겨진 권력의 얼룩진 모습들로 흉하기 짝이 없는 현실에서 비록 소설과 드라마이긴 해도 정도를 알고 백성을 사랑하는 군주가 황위에 올랐다는 점 등에서 두고두고 평가받을 만한 희대의 수준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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