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김지윤 기자]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죄와 벌>의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는 악한 자들을 죽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는 최상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다는 의미다. 과연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시킬 수 있을까. 답은 ‘아니다’라는 것이다. 프랑스 대소설가인 알베르트 까뮈 역시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시킬 수 있으나 그 목적을 정당화시키는 것 역시 수단”이라고 말했다.

한국에서 이역만리 떨어진 프랑스는 현재 조선의 ‘외규장각 도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지난 서울 G20 정상회의에서 모인 양국 간 수장들은 회담을 통해 ‘외규장각 도서 장기대여’에 합의했으나 도서를 소장하고 있는 프랑스 파리국립도서관(BNF) 사서들이 이를 반발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쉽게 생각하면 뺏었던 것을 다시 돌려주는 게 마땅한데 사서들은 결코 내줄 수 없단다. 그도 그럴 것이 이들은 “연구자들에게 연구 기회를 제공한 BNF의 자료를 빼앗아 가는 꼴”이라면서 “정부가 불법적인 선례를 만들어 앞으로 세계 각국에서 문화재 반환 요구가 쏟아질 것”이라며 장기대여에 적극 반대했다.

이번 장기 대여로 혹여나 아프리카 아시아 등 프랑스가 약탈한 다른 문재에 대한 반환 요청이 들어올까 걱정하고 있다. 이를 염두한 사르코지 대통령은 합의문에서 ‘이번 합의는 유일한 특성을 지니며 어떤 경우에도 선례가 되지 않는다’고 했으나 사서들은 이 문구가 오히려 다른 국가들에 문화재를 반환해야 하는 근거로 쓰일 것이라고 말한다.

장기 대여를 반대하는 사서들의 또 다른 이유는 외규장각 도서가 ‘불행한 약탈’이었으나 법적으로 프랑스 정부 재산이기 때문에 돌려주는 것이 어렵단다.

한마디로 그들이 주장하는 목적은 ‘연구 자료’와 ‘현재 프랑스의 자산’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터무니없는 주장은 과거에 일삼았던 약탈행위를 덮는 것과 다름없다. 어떠한 이유에서도 약탈은 합법적인 재산이 될 수 없다.

유네스코가 정의한 문화재 약탈, 헤이그협약(1954) 등을 살펴 볼 때 문화재뿐 아니라 ‘약탈’ 자체를 ‘불법’으로 규정하며 전 세계가 이를 동의하고 있다. 더 나아가 사법통일국제연구소 협약에는 도난이나 불법으로 반출된 모든 문화재는 절대적으로 반환을 원칙으로 하고 그에 따른 보상의 요건과 절차까지 정하고 있다.

국부와 연구의 목적으로 과거 행적을 정당화하는 프랑스의 자세가 과연 문화강국의 참모습인가. 프랑스가 문화강국이라면 역지사지해서 약탈문화재와 해당 국가를 이해하고 외규장각 도서를 포함한 약탈문화재에 관련된 사안을 곰곰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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