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제2차 북미정상회담 공식 일정 첫날인 27일 서울역에서 시민들이 TV 뉴스를 통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만나 대화하는 장면을 보고 있다. ⓒ천지일보 2019.2.27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제2차 북미정상회담 공식 일정 첫날인 27일 서울역에서 시민들이 TV 뉴스를 통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만나 대화하는 장면을 보고 있다. ⓒ천지일보 2019.2.27

北 리용호 “인민생활 지장 주는 항목만 말한 것” 주장

전문가 “유류·해외노동 등 사실상 모든 제재해제 요구”
“美, 압박카드 없어져…또 다른 핵시설 지적엔 北수용 안해”
“文 중재 필요해…다만 ‘비핵화 담은 중재안’ 갖고 만나야”

[천지일보=김성완·손성환 기자] 북미 2차 핵 담판이 공동성명 없이 끝난 가운데 회담 결렬의 원인으로 지목된 ‘대북제재 해제’를 두고 진실 공방이 가열되고 있다. 북한은 사실상 전면 제재해제를 요구한 것과 다름이 없다는 전문가 분석이 제기됐다.

1일 리용호 북한 외무상은 베트남 하노이 멜리아 호텔에서 긴급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회담에서 북한은 “유엔 제재 결의 11건 중 2016년부터 2017년까지 채택된 5건이며 그 중에서 민수경제와 인민생활에 지장을 주는 항목만 먼저 해제해 달라고 요구했다”고 밝혔다.

이러한 북한의 주장은 지난 2월 28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차 북미정상회담 결렬 후 기자회견을 통해 “제재해제 문제로 회담이 불발됐다”는 발언에 반박하는 성격을 가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은 완전한 제재해제를 원했지만 그렇게 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北, 영변 핵만 내밀고 전면 제재해제 요구”

이번 회담 결렬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 제재완화 부분은 북한 측 주장처럼 일부분이 아닌 사실상 대부분의 제재해제를 요구한 것이라고 전문가는 분석했다. 북한은 영변 핵 이외에도 핵물질 시설을 갖고 있었지만 영변 핵시설만 가지고 완전한 제재해제를 시도했다는 것이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북한의 비핵화 규모·범위·순서에 대한 전반적인 이견이 있었다”며 “북한은 영변만 가지고 제재의 실질적 부분을 전부 해제받기를 원했다”고 지적했다.

신 센터장은 “미국은 영변 핵시설 외에도 농축우라늄 시설까지 포함하기를 원했지만 북한은 이를 거부한 것”이라면서 “미국 입장에선 북한이 비핵화를 하려는 의지가 없다고 판단을 했고 스몰딜을 하느니 판을 깨고 제대로 된 비핵화 아니면 안 받겠다며 돌아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북한이 요구한 제재완화 5개를 해제하면 대량살상무기(WMD) 제재밖에 남지 않는다”며 “그렇게 되면 북한을 압박할 수 없게 되고 비핵화는 북한의 선의에 기대는 수밖에 없게 된다”고 꼬집었다.

김현욱 국립외교원 교수도 “북한은 영변 핵시설의 대가로 유엔 안보리 결의안 5개 중 민생 부분 풀어달라고 했다”며 “5개가 일부라고 북한은 주장했는데 실제로는 대부분의 제재에 해당한다. 섬유·수산물·해외노동자·유류 등 사실상 다 풀어주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미국 입장에서는 실질적인 비핵화가 돼야 (대북제재를) 풀어준다고 했으니 북한의 요구를 받을 수 없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미국이 북한에 대해 영변 말고 다른 우라늄 농축 시설 폐쇄하라니까 김정은 위원장이 이를 못 받아들인 것”이라면서 “양측 실무진이 의제에 대해 간극을 좁히기에 시간도 적었고, 트럼프 대통령은 여기에 사인을 했다면 미국 내 비난을 크게 받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성묵 한국국가전략연구원 통일전략센터장은 “리 외무상이 대북제재의 일부를 해제해달라고 했다고 하지만 얘기를 잘 들어보면 사실상 모두 풀어달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문 센터장은 “북미 양측이 비핵화에 대한 입장차가 뚜렷해 합의가 어려웠다”며 “북한은 비핵화 조치로 영변만 들고 나왔지만, 미국은 영변 이외 다른 우라늄 핵시설도 알고 있다는 것이고 그것까지 모두 폐기해야 한다는 입장이었기에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그는 “김정은 위원장이 트럼프를 호락호락하게 보고 적당히 하면 과거의 수법이 통할 것이라고 본 것 같다”며 “이번에 김 위원장이 많은 걸 깨달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북미 양측이 비핵화에 대한 개념과 인식, 추구하는 목표 자체가 달랐다고 문 센터장은 분석했다.

리용호 북한 외무상(오른쪽 앉은 사람)과 최선희 부상이 1일 베트남 하노이 멜리아 호텔에서 2차 북미 정상회담 결렬에 대한 북측 입장을 밝히고 있다. (출처: 뉴시스) 2019.3.1
리용호 북한 외무상(오른쪽 앉은 사람)과 최선희 부상이 1일 베트남 하노이 멜리아 호텔에서 2차 북미 정상회담 결렬에 대한 북측 입장을 밝히고 있다. (출처: 뉴시스) 2019.3.1

◆“文, ‘비핵화 담은 중재안’ 갖고 남북회담 해야”

북미회담은 당분간 재개되기가 어려울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문재인 대통령이 이달 예정된 한미정상회담 이후 남북정상회담을 갖고 중재에 나서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신범철 센터장은 북미회담이 “당분간 재개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며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기자회견 때는 수 주 내에 회담 재개를 바란다고 했지만, 미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선 당분간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도 김정은 위원장의 체면이 손상됐다고 여기고 후유증을 극복하는 데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현욱 교수는 “북미 관계는 소강 국면으로 접어들었다”며 “이달에 한미정상회담이 마쳐지면 이어서 문 대통령이 김 위원장을 직접 만나 중재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또한 “남북미 실무진이 함께 만나서 같이 가야 한다”며 “북미 실무협상만 하면 자신들 주장만 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문성묵 센터장도 “작년에도 북미 간 교착관계에 있을 때마다 문 대통령이 다리역할을 했다”며 “이번에도 그런 시도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문 센터장은 “핵문제 해결에 있어서 한국과 미국은 같은 생각을 가져야 트럼프도 신뢰할 것”이라며 “문 대통령이 북한 편에 서서 미국을 설득하려고 한다면 한미 공조도 깨지고 남북관계도 어려워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의 중재 역할에서 ‘북한의 비핵화 조치 요구를 명확히 담은 중재안’을 가지고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신범철 센터장은 “문 대통령이 중재자 역할을 해야 하지만 제대로 해야 한다”며 “우리는 북한에 대해서 제대로 된 비핵화 조치를 요구해본 적이 없다. 그동안 중재안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신 센터장은 “중재 역할을 제대로 하려면 북한에 대해서 예측 가능한 비핵화를 요구하는 내용을 담은 중재안을 만들어서 미국과 북한을 동시에 설득해야 한다”면서 “이러한 것이 없다면 미국도 설득할 수 없고 북한에 대한 (비핵화) 환상을 버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북미 2차 회담이 틀어지면서 김정은 위원장의 서울 답방도 늦춰질 것으로 보인다.

김현욱 교수는 “지금 상황에서 답방은 어렵다”면서 “다만 한미정상회담 이후 남북 정상이 만나야 한다. 문 대통령이 중재를 해서 북한과 미국의 입장을 조금씩 양보하도록 만들어서 합의에 이르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김 위원장과 지난해 5월 26일 오후 판문점 북측 통일각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북미 대화를 중재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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