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엔 아무도 살지 않았다

최영규(1956~  )

하늘마저 얼어붙은 정상에 풍경 따윈 없었다. 적막을 뒤집어쓴 허공만이 나를 반길 뿐이었다. 얼음의 숨결이 내 숨결을 막았다. 찰나의 환호성마저 바람이 잘라먹었다. 하지만 신(神)은 끝내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정상엔 아무도 살지 않았다. 

 

[시평]

알피니스트는 산을 오르고 또 오른다. 산을 오르는데 그 정상을 오르지 않으면, 결코 그 산을 올랐다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필히 정상을 올라야 만이 그 산을 오른 것이라고 생각을 한다.

이렇듯 오르고 또 올라서 이르는 곳, 정상. 이 정상에 서야만이 비로소 그 산을 정복했다고 말들을 한다.

정상이란 맨 마지막을 점찍을 수 있는 곳이다. 마지막의 점을 찍고, 그래서 어떤 무엇을 해냈다는 충만, 그 충만으로 인한 환희를 지닐 수 있는 곳이 바로 정상이다. 그러나 그 정상에는 실은 아무 것도 없다. 하늘마저 얼어붙은 정상에 풍경 따윈 없다. 적막을 뒤집어쓴 허공만이 공허하게 그 정복자를 맞이할 뿐이다.

그렇다. 무엇을 이루려는 열망으로 그 일에 도전하는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고, 또 가치가 있는 것이다. 무엇을 이루었을 때에는 오히려 허망하기까지 한 경우가 없지 않아 있다. 정상으로 오르기 위해 어려운 산길을 걷고 또 걸어 오르는 그 과정이 어쩌면 우리들의 진정한 삶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람들은 오늘도 또 산을 오르고 오른다. 다만 그곳에 산이 있고, 그 산에는 저마다의 정상이 있기에, 그 정상을 향해 오늘도 오르고 또 오를 뿐이다. 찰나의 환호성마저 바람이 잘라먹는, 신(神)도 끝내 그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 공허한 허공만이 맞이해주는 그 정상을 향해 산을 오르듯이, 우리네들, 모두 자신의 삶의 길, 가고 또 가고 있을 뿐이다.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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