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이혜림 기자] 한 사람이 지나면 꽉 찰만한 좁은 골목에 숨은 카페. ‘솔 커피&호프’라고 적힌 이곳은 ‘힙’한 젊은이들에게 인기인 양식당이다. ⓒ천지일보 2019.2.26
[천지일보=이혜림 기자] 한 사람이 지나면 꽉 찰만한 좁은 골목에 숨은 카페. ‘솔 커피&호프’라고 적힌 이곳은 ‘힙’한 젊은이들에게 인기인 양식당이다. ⓒ천지일보 2019.2.26

한때 잘나갔다가 쇠락한 동네

40~50대에겐 옛 기억 떠올리고

20~30대에겐 새 추억 만들어

 

후비진 골목 사이 곳곳에 숨어

보물찾기 하듯 찾아다녀야 하는

복고풍 카페·음식점 ‘인기 만점’

[천지일보=이혜림 기자] ‘힙(hip)하다’는 건 고유한 개성과 감각이 있으면서 최신 유행에 밝고 신선하다는 뜻이다. ‘힙’한 요즘사람들은 다양한 볼거리와 먹거리, 즐길 거리가 많은 ‘핫플레이스’에서 주로 활동한다. 이전에는 좀 놀 줄 안다는 사람들은 가로수길에서 강남, 이태원의 경리단길에서 만날 수 있었다. 그런 ‘힙’한 사람들이 최근 좁은 골목에 낡은 건물이 많은 을지로로 모이기 시작했다.

평일 낮 을지로의 풍경. 재지 공장과 인테리어 용품을 파는 상점이 즐비하다. ⓒ천지일보 2019.2.26
평일 낮 을지로의 풍경. 재지 공장과 인테리어 용품을 파는 상점이 즐비하다. ⓒ천지일보 2019.2.26

◆과거와 오늘날 공존해

을지로는 과거의 흔적과 오늘날의 변화가 공존하는 곳이다. 연령대에 따라 을지로가 다르게 인식되고 있다. 40~50대에겐 ‘청년 시절 한때 잘나갔던 동네였다가 지금은 쇠락한 곳으로 옛 기억을 떠올리며 저렴한 노가리를 안주 삼아 가볍게 술 한잔 하며 회포를 부는 곳’이다.

많은 공장이 있는 쇠락한 동네쯤으로만 인식됐던 을지로의 낮은 둔탁한 기계 소리로 가득 찼다. 기자가 찾은 12일 오후 3시의 을지로는 일상적인 모습이었다. 인쇄소에서는 인쇄물을 찍어 내고, 철물점에서는 쇠를 깎는 등 쉴 새 없이 기계가 돌아갔다. 변기, 욕조, 수도꼭지 등을 파는 전문점이 즐비했다. 문고리 전문점에는 세상의 모든 문고리를 모아놓은 것처럼 각양각색의 손잡이가 기자를 반겼다. 제품을 사기 위한 소비자들이 업체를 오가며 시장조사를 벌였으며, 짐을 가득 실은 오토바이가 곡예를 부리듯 빠르게 지나갔다.

그러나 유동인구가 예전 같진 않다.

[천지일보=이혜림 기자] ‘UV 특수 인쇄’라고 창문에 적혀 있지만 이곳은 을지로감성이 가득한 수제맥주집이다. 아무생각 없이 지나치면 맥주집인지 모르고 지나기 쉽다. ⓒ천지일보 2019.2.26
[천지일보=이혜림 기자] ‘UV 특수 인쇄’라고 창문에 적혀 있지만 이곳은 을지로감성이 가득한 수제맥주집이다. 아무생각 없이 지나치면 맥주집인지 모르고 지나기 쉽다. ⓒ천지일보 2019.2.26

“여긴 30여년째 변한 게 하나도 없어. 옛날에는 장사가 어마어마하게 잘됐지. 서서히 안 되기 시작하더니 인근의 공장이 텅텅 비었지.”

을지로에서 35년간 주차요원으로 일했다는 강대명(가명, 59, 남)씨가 이같이 말했다. 그는 “이 동네가 다 제지나 타일 회사였는데 언젠가부터 점점 먹자촌으로 바뀌었다. 집값이 비싼데다가 그만큼 장사가 안되니까 접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예전의 모습을 잃어가고 있는데 슬프진 않으냐는 기자의 질문에 강씨는 “다 그런 거지 뭐. 가고 오는 게 세상인데”라고 말끝을 흐렸다.

특히 낮과 밤의 색깔이 다른 게 을지로만의 특징이다. 20~30대에게 을지로는 ‘복고풍(레트로)’ 감성 느낄 수 있는 음식점과 카페 등이 즐비한 ‘신세계’다. 젊은이들은 밤이 될수록 각 빌딩에 보물처럼 숨겨진 ‘핫플레이스’로 몰렸다.

해가 지기 시작하자 조명가게의 조명이 더욱 밝게 빛을 내뿜어 주위를 물들였다. 어디서 등장했는지 모를 젊은이들이 거리로 조금씩 등장했다.

[천지일보=이혜림 기자] 인쇄소 등의 공장이 많은 곳에 있는 한 카페의 내부 모습이다. 복고풍의 조명과 벽지, 커튼이 인상적이다. 옛날 다방처럼 꾸며놓은 이 카페에서는 커피를 직접 내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천지일보 2019.2.26
[천지일보=이혜림 기자] 인쇄소 등의 공장이 많은 곳에 있는 한 카페의 내부 모습이다. 복고풍의 조명과 벽지, 커튼이 인상적이다. 옛날 다방처럼 꾸며놓은 이 카페에서는 커피를 직접 내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천지일보 2019.2.26

“빨리 와. 여기가 내가 말한 곳이야.”

20대 초중반의 여성 4명이 스마트폰으로 지도를 보면서 인쇄 골목을 이리저리 헤매더니 목적지에 도착했다. 그들이 찾은 건물 간판에는 ‘솔 커피&호프’라고 쓰여 있다. 젊은 여성들이 낡은 호프를 찾을 리는 없을 터. 이곳은 문 닫은 건물을 개축해 다시 연 양식당이다. 을지로의 유명 ‘핫플레이스’답게 5시밖에 안 됐지만 2층인 식당부터 건물 입구까지 대기 팀이 길게 줄 서 있었다.

점점 더 모여드는 사람들을 뒤로하고 후비진 골목으로 향했다. 이곳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옛날 다방처럼 꾸며놓은 카페가 있기 때문이다. 성인 여성이 한쪽 팔을 들면 벽이 닿을 만큼 좁은 골목을 지나면 벽지, 창문, 커피잔 등 모든 게 복고풍인 카페가 나온다.

카페 안으로 들어가니 자개로 인테리어가 눈에 띈다. 카페와 건너편에 있는 디저트 가게 모두 자개 장식으로 된 가구, 꽃무늬 벽지, 화려한 색상의 커튼 등으로 꾸며져 있었다. 오래된 것으로 보이는 스테인글라스 조명이 분위기를 한층 돋웠다. 커피를 주문하고 가파른 나무 계단을 통해 2층으로 갔다. 계단이 내는 ‘삐걱’소리가 과거로 시간여행을 시켜주는 듯 했다. 2층 문을 열자 문에 달린 추가 도르래를 통해 위로 올라가며 ‘딸랑, 딸랑’ 소리를 냈다. 그 모습이 신기해서 한참을 쳐다봤다.

[천지일보=이혜림 기자] ‘이곳은 옛 허준 선생님이 병자를 치료하시던 혜민서 자리입니다’고 적힌 간판이 인상적인 카페. ⓒ천지일보 2019.2.26
[천지일보=이혜림 기자] ‘이곳은 옛 허준 선생님이 병자를 치료하시던 혜민서 자리입니다’고 적힌 간판이 인상적인 카페. ⓒ천지일보 2019.2.26

옛날 허준 선생이 병자를 치료하던 혜민서 자리에 있는 이 카페의 시그니처 커피는 바로 필터커피다. 기계를 사용하지 않고 한잔씩 정성을 들여 필터로 원두를 내린다. 나오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풍부하고 깊은 풍미를 느낄 수 있다. 맞은편에는 카페와 공동으로 운영되는 디저트 가게가 있어 디저트를 사서 음료를 먹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다시 거리로 나와 을지로 골목 탐방을 했다. 인쇄소나 공장 건물에 숨겨진 카페를 찾으니 보물찾기를 하는 것 같았다. 이번엔 이 지역에서 30년 동안 장사를 한 우동집을 찾아 꽁꽁 언 몸을 녹였다. 따뜻하고 든든한 튀김우동을 시켰더니 금방 실한 새우튀김 두 마리가 오른 우동이 나왔다. 숟가락으로 뜨끈한 국물을 한입 떠먹으니 추위에 움츠렸던 어깨가 풀어졌다. 면은 쫀득쫀득한 식감이었고, 국물에 조린 것처럼 간이 딱 맞았다.

직원에게 물으니 직접 국물을 만든다고 했다. 그는 “저희 사장님이 ‘나 죽으면 못 먹을 국물’이라고 하더라. 그 사장님이 내 남편”이라고 말하며 웃었다.

[천지일보=이혜림 기자] 을지로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저렴한 가격으로 구성된 안주와 술로 하루의 피로를 날리는 빈대떡, 노가리 등을 파는 가게도 있다. ⓒ천지일보 2019.2.26
[천지일보=이혜림 기자] 을지로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저렴한 가격으로 구성된 안주와 술로 하루의 피로를 날리는 빈대떡, 노가리 등을 파는 가게도 있다. ⓒ천지일보 2019.2.26

◆을지문덕 장군의 성 따서 지은 ‘을지로’

서울시 중구 태평로1가 31번지 서울특별시청에서 을지로7가 1번지를 지나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 이르는 거리다. 현재 종로·청계천로·퇴계로와 함께 서울시의 대표적인 상업·업무지구인 을지로의 조선 시대 이름은 구리개로 불렸고, 일제강점기에는 황금정통(黃金町通)으로 불렸다. 1946년 10월 일본식 동명을 정리하면서 고구려 을지문덕(乙支文德) 장군의 성을 따서 현재의 이름이 됐다.

현재 140여개의 타일·도기 업체가 있으며, 을지로 3가역 1번 출구부터 3번 출구까지 약 250m구간에 80여개의 업체가 밀집돼 있다. 을지로는 6.25사변 당시 3개였으나 도시의 재건을 위해 집수리 관련 업체가 자리 잡게 되면서 재조업 단지로 확산됐다.

이 지역이 제조업 단지로 자리 잡은 건 1950년대부터다. 한국전쟁 이후 돈을 벌기 위해 상경한 이들은 서울에서 유동인구가 가장 많은 종로와 동대문 일대로 모였다. 일제 강점기부터 있던 방직공장을 중심으로 의류와 원단 관련 업체가 하나둘씩 자리 잡으며 1960년대 초반 평화시장 건물이 들어서면서 을지로는 본격적인 의류산업 단지가 됐다.

[천지일보=이혜림 기자] 을지로에서 30년 동안 장사를 한 우동집의 새우튀김 우동이다. 뜨끈한 국물과 쫀득한 면발, 고소한 튀김이 예술이다. ⓒ천지일보 2019.2.26
[천지일보=이혜림 기자] 을지로에서 30년 동안 장사를 한 우동집의 새우튀김 우동이다. 뜨끈한 국물과 쫀득한 면발, 고소한 튀김이 예술이다. ⓒ천지일보 2019.2.26

동대문에선 의류 관련 산업, 종로에선 귀금속 산업이 커지자 해당 업체에 각종 공구나, 원자재를 공급하는 시장이 을지로에 들어섰다. 정부는 서울에 인구가 몰리자 도시 개발 계획의 하나로 제조업 중심의 ‘세운상가’를 세웠다. 1970년대 이후부터 1980년대까지 한국 산업화에 불이 붙기 시작하면서 을지로 일대는 엄청난 성수기를 맞이했다.

1977년 외환위기 이후 침윤에 빠진 을지로의 시장경제는 점점 침체하기 시작했다. 어려운 경제로 문을 닫기 시작한 업체가 점점 늘었다. 21세기가 시작된 이후 한국의 격동기를 보낸 을지로의 흔적들은 재개발을 이유로 부서지기 시작했다. 지금의 한국을 만들었던 그 흔적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이제 완전히 사라질지도 모른다.

사라질지 모르는 흔적은 2~3년 전부터 모여든 젊은 예술가들에 의해 복구됐다. 예술가들은 을지로의 세월을 그대로 살리면서 현대적인 감각을 더 해 독특한 분위기를 이끌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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