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 작가/문화칼럼니스트

대한민국 많은 남성들이 TV 속 ‘자연인’들을 부러워한다. 세상과 떨어져 깊은 산속에 홀로 살고 있는 사람을, 방송에서 자연인이라 부른다. 남자들은 TV 속 자연인을 보며, 상팔자가 따로 없구나 하며 부러워하거나, 나도 언젠가 자연으로 돌아갈 것이라며 다짐을 해 보기도 한다. 아내들에게 그런 소리를 하면, 십중팔구 혼자 들어가 살든지 죽든지 알아서 하시오, 란 소리를 듣는다.

남성들이 자연인에 열광하는 것은 도망가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가장 노릇하랴 직장생활 하랴 고달프기만 한 세상살이에서 벗어나고 싶은 것이다. TV 속 자연인들 중에는 자연이 좋아 자발적으로 자연인이 된 이들도 있지만, 자연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던 사람도 있다. 이유가 어찌됐든, 수많은 대한민국 남성들에게 자연인은 그 자체로 로망이자 꿈이다.

여성이라고 왜 현실이 힘들지 않겠냐마는, 그렇다고 자연인이 되고 싶은 생각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여성들에게는 아무래도 편리한 도시의 삶이 나은 모양이다. 자연인 중에서도 아내와 가족들은 도시에서 살고 있는 경우도 있다. 남자 입장에서는 아내와 더불어 자연에서 살면 금상첨화겠지만, 그게 쉽지 않다. 물 좋고 정자도 좋은 일이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게 아니다.

얼마 전 ‘사랑은 비를 타고(Singin’ In The Rain)’로 유명한 미국의 영화감독 스탠리 도넌이 세상을 떠났다. 만 94세이니 천수를 누린 셈이다. 하늘이 내려준 명대로 살다 간 것도 복이지만, 무엇보다 그는 즐겁고 행복하게 살았다고 한다. 살아도 그렇게 살았으니 진정 복 많은 사람임에 틀림없다.

그가 그렇게 복 받은 삶을 살았던 것은 삶을 대하는 그의 태도 덕분이었다. 어릴 적부터 영화에 푹 빠져 영화만 보면 좋아 죽었고, 일찌감치 브로드웨이로 가서 댄서로 끼를 마음껏 발산했다. 영화 오디션에 뽑혀 배우가 되었고 나중에는 영화감독으로 이름을 날렸다.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살았고 또 성공도 했다. 그는 집 거실 쿠션에 ‘먹고, 마시고, 다시 결혼하라(Eat, drink and remarry)’라는 글을 새겨 놓았다고 한다.

현실이 고달픈 것은, 하고 싶은 것을 못하고 살기 때문이다. 먹고 살기 위해, 혹은 부모님의 희망을 저버릴 수 없어서, 남의 시선 때문에 제 하고 싶은 것들을 포기하고,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제 하고 싶은 것 하면서 살면, 첩첩산중 자연인이 되지 않고도 얼마든지 행복하게 살 수 있다.

스탠리 도넌은 다섯 번 결혼하고 다섯 번 이혼했다. 보통 사람들로선 한 번 결혼하는 것도 힘든 일인데, 범상치 않은 인간임에 틀림없다. 결혼 생활이 힘들다는 걸 깨달은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이 결혼을 주저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가 안다면 절로 한숨이 나올 것이다.

정호승 시인이 ‘그대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라 했고, 우리 모두 외로움을 운명처럼 안고 살지만, 그렇다고 형편 때문에 결혼할 엄두도 못 내고 외롭게 살아가야만 하는 세상이 돼서는 곤란하다. 시인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했지만, 우리들은 외로움 때문에 우는 일이 좀 없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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