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용 칼럼니스트

교육부가 학교폭력 제도개선 방안을 발표했다. 첫 번째, 학교마다 설치된 학폭위를 교육지원청으로 이관하고, 이관 전에 피해 학생·학부모가 동의할 경우 학교장 차원에서 자체 종결하는 방안이다. 두 번째, 학교폭력 9단계 중 가장 가벼운 1단계(서면사과), 2단계(접근금지), 3단계(교내봉사)까지 경미한 학교폭력은 학생부에 기재하지 않는다. 단, 가벼운 사건이라도 2번 이상 반복되면 이전 조치까지 포함해 기록하도록 했다. 이번 개선안은 공론화 과정을 거쳐 결정된 사안이기 때문에 공론화 위원들의 결정을 존중하지만 결정 배경에 의구심이 남는다.

교육부의 이번 발표는 학교폭력과 관련한 행정심판 건수가 2013년 247건에서 2017년 643건으로 증가한 사유와 무관하지 않다. 수사권과 사법권이 없는 학폭위에서 논의되고 결정된 사항에 대해 가해자 학생의 부모가 쉽게 수긍하지 않는다. 오히려 가해자와 피해자의 소송을 부추기는 측면이 있어 교육적 해결을 최대한 이끌어 내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학교폭력으로 인해 대인기피증이 생기고 평생을 트라우마를 지니고 살아가는 피해자들을 먼저 배려해야 하는데 이번 개정안은 피해자보다 가해자 위주, 행정심판을 줄이려는 방향으로 개정한 것이 아닌지 의문스럽다.

학교폭력이 발생하면 가해학생이 “죽을죄를 졌습니다”며 반성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반성을 하지 않는 학생에게 경각심을 주고 피해학생을 보호하기 위해 학생부에 기록이라도 남기려 하면 ‘주홍글씨’를 남기는 걸 두려워하는 가해 학부모가 불복하고 소송을 건다.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학폭위 처분이 미뤄지고 결론이 유보되면 가해자와 피해자가 같은 학교에서 늘 대면하며 학교생활을 이어가야 한다. 피해자는 제대로 된 사과도 받지 못하고 기세등등한 가해자의 위세에 눌려 학교 가기를 기피하고 피해학생 부모까지 화병이 난다. 새로 발표된 개선방안이 엄격하게 잘 지켜져 아이들이 스스로 반성하고 용서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면 다행이지만 학교폭력 해결이 그리 녹록치 않다는 게 문제다.

필자도 학교 근무 당시 장교 출신이라는 이유로 학교폭력 업무를 담당했던 시간이 많았다. 교사들이 가장 기피하는 업무다 보니 자원자가 없어 억지로 떠맡아야 했고 그 기간이 ‘내 인생을 갉아먹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힘들었다. 학교폭력 담당자는 사안이 발생할 경우 수업이 없는 빈 시간, 점심시간, 쉬는 시간을 이용해 사건관련자들을 면담하고 진술서를 받고 조사 결과를 기록해야 한다. 방과 후에는 학부모도 불러 조사결과를 통보하고 학부모 의견을 들어 학폭위에 상정할 자료를 완성해야 한다. 가해자가 최대한 자기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거짓말을 해가며 진술해도 경찰이 아닌 이상 진술하는 대로 기록할 수밖에 없다.

학폭 담당 교사의 수업의 질은 현저히 떨어지고 업무 강도는 타 교사들에 비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다. 정신적 스트레스 또한 엄청나 정교사들이 기피해 기간제교사 선발 시 학폭 담당 가능 시 우대해 선발하는 경우도 있다. 학폭 담당 교사의 수업 시수를 상담교사나 진로교사 수준으로 대폭 낮추고, 비담임이 업무를 담당하도록 제도가 정비돼야 한다.

더 근본적인 해결방법은 인근 파출소에 학폭 담당 경관을 의무적으로 배치하고 학폭 발생 시 전담 경관이 수사를 하고 법적으로 가해자, 피해자를 구분해서 처벌하고 보호조치를 해야 한다. 2012년부터 학교전담경찰관(SPO)이 배치됐지만 1명의 SPO가 10여개 학교를 맡고 학교폭력이나 청소년 심리 등에 대한 전문지식이 부족해 학교폭력 사건이 발생해도 큰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1학교에 전문성을 가진 1SPO를 배치해 학폭을 해결하는 제도를 미리 준비해 나가야 한다. 그러지 않을 경우 점점 흉포화해지는 학교폭력을 줄이기는커녕 손을 쓰기 힘들 정도로 극한상황으로 치달아 미국처럼 총기를 휴대한 경찰이 상주하는 상황이 올지 모른다.

학폭을 규정대로 처리해 교육청에 보고하면 인사상 불이익을 주며 학교 자체에서 종결하도록 압력을 가하는 교육청의 행태부터 개선해야 한다. 학폭을 은폐하는 관리자는 징계하고 괴롭힘, 왕따, 폭력 발견 시 누구나 신고 의무를 갖도록 하고 신고 안 한 교사와 학생도 처벌하는 법을 만들어야 학폭을 줄일 수 있다. 학교폭력의 경미하다의 정도는 피해자가 당하는 정도를 의미해야지 남이 판단할 일이 아니다. 왕따로 인한 심리적 충격은 폭력보다 상처가 더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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