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윤 소설가

동탁의 서영 군대에 패해 겨우 목숨을 건진 조조가 패잔병들을 수습해보니 만여명의 군사들이 겨우 5백여명에 불과했다. 그는 하는 수 없이 하내로 돌아갔다. 그러나 동탁을 공격한 그의 기백은 모든 제후들 중에 으뜸이었다. 모든 제후들이 낙양에서 제각기 영문을 정하고 진을 치고 있을 때 손견은 불타는 궁궐을 수습하고 건장전 터에 군막을 치고 군사들을 시켜 청소를 했다.

그리고 동탁이 능에서 파헤치고 달아난 역대 제왕들의 시체를 태묘 터에 묻은 후에 임시로 삼간 사당을 지어 열성조의 위패를 모시고 여러 제후와 함께 통곡해 위령제를 지냈다. 대의명분을 밝히자는 것이었다.

제사를 파한 뒤에 모든 제후들은 흩어지고 손견은 건장전 군막으로 돌아갔다.

그 날 밤 하늘이 맑아 별빛도 초롱초롱했지만 달빛도 밝았다. 달빛과 별빛이 한데 어우러져 교묘한 광채를 뿜었다.

초토 명월 달 밝은 밤에 봉우 금궐은 천리 폐허요. 은한(銀漢)이 가로지른 높고 넓은 하늘엔 달빛이 안개 내리듯 부어 내렸다. 손견은 감개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넓고 넓은 호호한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어 바라보았다. 문득 북편 하늘에서 자미원 작은 별들이 둘러싼 속에 휜 기운이 그름 끼듯 가려서 북극성이 찬란한 광망을 뿜지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손견은 한동안 천문을 바라보고 있다가 자기도 모르게 탄식하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임금의 주성이 밝지 못하니 난신적자가 나라를 어지럽게 하고 만백성은 도탄에 빠져서 경성은 일공(一空)이 되어 버렸구나.”

손견은 말을 마치자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그 때 병사 한 명이 손견 앞으로 다가와 보고를 했다.

“장군께 아룁니다. 건장전 남쪽 우물 속에서 오색 무지개가 뻗쳐 나옵니다.”

손견은 군사들을 불러 홰에 불을 붙여서 우물 안을 살펴보게 했다. 군사들이 우물에 들어갔다가 깜짝 놀라서 큰소리로 외쳤다.

“우물 속에 죽은 사람의 시체가 떠 있습니다.”

손견도 놀라서 속히 시체를 건져 내도록 했다. 시체를 건져내고 보니 남자가 아니라 묘령 여자의 시체였다. 우물에 떠오른 것을 보니 물에 빠진 시일이 상당히 오래된 것 같았다. 얼굴과 몸은 금방 빠진 듯 생생해 아직 미란(糜爛)되지 않았다. 홰를 들어 자세히 보니 옷 맨드리는 궁녀가 분명한데 목에는 비단주머니를 걸고 있었다. 주머니를 끌러보니 그 속에는 주홍빛 작은 갑이 있고 갑 전면에는 조그만 황금 자물쇠로 잠가 놓았다. 황금 자물쇠를 열고 보니 희한했다. 갑 속에는 옥새 한 벌이 들어 있었다. 장방형으로 된 옥쇄는 높이가 4촌 가량 되는데 머리는 다섯 개 용의 형상이 아름답게 새겼고 비단실로 술을 늘인 옆에는 한 귀퉁이가 떨어졌는데 황금으로 봉을 박아 메워 놓았다. 도장에는 여덟 개 글자를 전자(篆字)로 써서 새겼는데 ‘수명우천(受命于天) 기수영창(旣壽永昌)’이었다.

손견의 입이 소리 없이 딱 벌어졌다. 무슨 보배인지는 알 수 없으나 기막힌 보배라는 생각이 들었다. 옆에는 마침 정보가 있었다.

“이것이 무슨 보물인지 알겠는가?”

정보는 옥새를 만져보고 전자를 살피더니 무릎을 탁 쳤다.

“이것은 전국옥쇄입니다. 이 옥은 옛적에 변화라는 인물이 형산에서 얻은 것으로 저 유명한 화씨벽이라는 것입니다. 이 화씨벽을 얻었을 때 봉황이 이 돌에 깃들었다는 설이 있습니다. 변화가 이 옥돌을 초나라 문왕한테 바치니 옥을 잘 아는 초왕은 돌을 깨뜨리고 그 속에서 아름다운 옥을 꺼내었습니다. 진나라 시황 26년에 도장장이 옥공을 불러서 임금의 도장인 옥새를 만들었고 당대 문장 이사를 시켜서 ‘수명우천 기수영창’ 여덟 글자를 짓게 하고 전자로 새긴 뒤에 진시황은 이것을 천자의 도장으로 사용했습니다. 진시황 이십팔년에 시황이 천하를 순수해 동정호에 당도하자 풍랑이 크게 일어 엎어지려 하니 진시황이 이 옥새를 물에 던져 풍랑을 진정시킨 후에 자기 생명을 구했다고 합니다. 만승천자의 도장으로 동정호의 용왕을 위압한 것이라 하겠지요.”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