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경제논단] 공영방송은 사회 갈등 증폭시키는 일만 한다
[미디어·경제논단] 공영방송은 사회 갈등 증폭시키는 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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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맹기 서강대 언론대학원 명예교수

 

‘민주적 기본질서’를 지탱하는 축이 언론자유이다. 언론이 자유가 제약이 되면, ‘운동권 권위주의’가 작동하게 된다. 권위는 사회 각 분야에서 필요하다. 차이가 제도적으로 보장이 되면 다양성이 존재한다. 방송의 공정성은 그 다양성을 확보하는 용광로 역할을 한다.  

실제 사회는 권위가 아닌, ‘권위주의’가 팽배하고 있다. 심하면 파시즘으로 간다. 권력자가 권위를 시도 때도 없이 사용한다. 국가 폭력이 난무한다. 권위주의 사회는 곧 체제의 동맥경화증을 일으킨다. 이 때 언론은 감시기능을 통해 경직화된 사회를 풀어 국가 폭력을 막고, 피가 제대로 돌 수 있게 한다. 

작년 사회의 수출총액은 중국·미국·독일·일본 다음 세계 5번째이다. 그만큼 역동적 사회에 살고 있다. 그 사회에 걸맞은 통계가 나온다. 최근 가계부채가 2600조원이나 된다. 국민 각자가 피땀을 흘려 모은 돈이 어디에 간 것일까? 

사회 시스템이 경화증에 걸려 갈등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간다. 물론 사회 통합의 기능은  법조, 언론 등이 맡는다. 언론의 자유가 ‘운동권 권위주의’에 매몰된 것이다.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윤석민 교수팀은 조선일보사 미디어연구소의 후원으로 ‘박근혜 문재인 정부 시기 지상파 시사 프로그램 평가 연구’를 했다. 윤 교수는 최근 시사 프로그램 12개를 분석해 데이트 분석을 한 결과,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공영방송의 정치 편향성이 심화됐다”라는 결론을 얻었다. 또한 데이터는 “전 정부보다 정치인 인터뷰가 4배가 증가했다”라고 했다. 

공영방송은 정치 광풍사회를 만든 것이고, 논쟁적 사안에 대해 ‘공정한 방식으로 보도하지 않았다’라고 했다. 공영방송은 정권의 나팔수 역할만 했다. 공영방송은 철저한 사실과 진실 위주로 한 것이 아니라, 정파성을 일삼았다. 이 문화가 심하면, 사회 내 차이가 인정이 되지 않고, 다양성에 제약을 받게 된다. 때 아닌 1987년 권위주의 문화가 환생했다. 

개인이 모바일, 유튜브, SNS 등을 통해 뉴스를 소비한다. 다원주의 사회에 벌써 도래한 것이다. 국제경쟁력은 다양성의 사회가 인정이 된다. 그렇다면 바람직한 공영방송은 시대정신에 맞게 각 사적 개인 아이디어의 용광로를 만들어줘야 한다.     

그러나 공영방송은 사적 정파성을 강조하거나, 나팔수 역할만 일삼으니, 사회통합은 물 건너가고, 갈등 비용만 증가시키고 있다. 공론장에서 절차적 정당성의 숙의 민주주의는 먼 나라 이야기가 됐다.  

국회가 앞장서 방송법 개정을 통해 공영방송의 지배구조를 바꾸겠다고 했다. 당시 야당 박홍근 의원 등 162명의 공동발의로 방송법 개정안을 발표했다(2016. 7. 21). 

새 방송법은 7:6의 이사 구성원을 통해 정치적 편파성을 막을 속셈이었다. 여야는 2019년 2월에 이 문제를 다시 논하기로 했다. 이에 따르면 국민의 대표성을 높이기 위해 ‘사장추천위원회’를 둔다고 했다. 필자는 청와대, 국회의 공정성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러나 법과 제도를 통한 정치공학이 어제 오늘일이 아니다. 청와대와 국회의 무절제한 탐욕은 계속되고 있다.   

방송 프로그램은 구성원이 만든다. 그 구성원들이 먼저 언론의 자유, 민주적 기본질서, 즉 헌법 정신의 구현에 관심을 가질 때가 됐다. 차이와 댜양성이 공론장에서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해야 한다. 현재 이슈는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 권위의 문제이다. 플라톤은 국가의 원영원리를 개인의 삶에서 찾았다. 지금 공영방송은 개인의 권위를 팽개친 채, 사회 갈등을 증폭시키는 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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