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헌법은 1948년 제정돼 지금까지 총 9차례 개정됐다. 이는 우리나라가 세계사에서 그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짧은 기간에 민주화를 이루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특히 1987년에는 1인 독재체제에 대한 타파와 민주화의 열망이 담긴 현행 헌법이 빛을 보게 됐고, 우리나라 최초의 민주 헌법이라는 찬사까지 받았다.

그럼에도 지난 24년간 해마다 각계에서 ‘개헌 논의’가 터져 나오고 있다. 현행 헌법이 역대 헌법 중 민주주의적 기본질서를 가장 잘 담고 있다는 평가를 받지만, 시대적 요청을 완전히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이는 정치 경제 사회의 패러다임이 급격히 변하면서 개별 법률의 개정이나 제도의 보완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영역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이에 <천지일보>는 국정의 합리적인 운영 및 국민 주권을 실현할 수 있는 헌법 개정의 방향을 짚어보기로 한다. 궁극적으로는 독자들이 개헌 논의의 현주소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데 목적을 둔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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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름발이 오리, 어떻게 요리해야 냄새가 안 날까

개헌 논의 단골손님 ‘5년 단임제’ vs ‘4년 중임제’

[천지일보=송범석 김일녀 기자] 현재, 헌법 개정의 범위와 관련 ‘대통령 4년 중임제 도입’ ‘부통령제 부활’ ‘이원집정부제(二元執政府制) 시행’ ‘양원제(兩院制) 채택’ ‘중앙집권형 지방자치제도 개혁’ ‘영토조항 개정’ ‘기본권 관련 조항 개정’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이 중에서도 정치권은 ‘원포인트 개헌’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여야・계파별로 첨예한 대립각을 형성하고 있다.

◇ 주목 받는 대통령 4년 중임제
현행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대통령 5년 단임제’는 대통령이 단독으로 5년간만 공직에 머무를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뜻한다. 이는 과거에 겪었던 일인 장기집권을 막고 정권교체를 자주 함으로써 민주화 실현에 기여하고자 도입된 조항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5년 단임제가 민주화보다는 1987년 헌법 개정 당시에 존재했던 ‘三金氏’의 권력관계에서 파생된 산물이라는 비판을 내놓기도 한다.

지난 23년간 운영됐던 5년 단임제는 몇 가지 장점이 있다. 이를 통해 역대 대통령들은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해 왔다. 즉, 대통령의 재선이 금지돼 있기 때문에 국정 운영에 대해 직접 대통령의 책임을 물을 수 없고 따라서 대통령의 소신 있는 정책 결정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아울러 재선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대통령이 선거를 의식하지 않아도 된다.

단점도 있다. 길어야 2~3년 권한을 행사하고 나면 집권 후반기 레임덕 현상 때문에 ‘식물 대통령’이 되기도 한다. 아울러 지나친 권력집중 때문에 대통령과 관련된 권력형 부정부패가 많다는 점과 임기가 한 번뿐이어서 장기적인 정책을 펴지 못하는 것도 지적을 받는다.

이에 비해 4년 중임제는 국민이 정국을 잘못 운영한 대통령을 재선에서 떨어뜨림으로써 직접적인 심판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책임 있는 정치가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또한 현행 4년인 국회의원・단체장과 대통령의 임기가 달라 선거가 너무 자주 치러진다는 문제도 해결 할 수 있다. 특히 대통령제를 택한 나라들이 보편적으로 4년 중임제를 선택하고 있는 경향도 도입론에 힘을 보태고 있다.

하지만 4년 중임제 역시 부작용을 안고 있다. 무엇보다도 과거 군사정권이 중임제를 악용하면서 장기집권과 독재체제를 구축했기 때문에 중임제에 대한 국민정서가 불안하다. 아울러 재선을 염두에 둔 대통령이 여당의 눈치를 보기 때문에 지금처럼 초연한 정책을 펼칠 수 없는 점이 지적을 받는다.

특히 처음 4년간은 재선을 위해 인기성 정책을 남발하다가 정작 재선이 된 후에는 레임덕 현상이 발생해 이도저도 아닌 대통령이 나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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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헌론 불 지피는 정치권, 서로 ‘딴소리’만
현재 정치권은 4년 중임제 도입을 놓고 초점이 맞지 않는 논의를 계속하고 있다.

일단 차기 대권 주자 지지율에서 꾸준히 1위를 확보하고 있는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는 4년 중임제에 찬성하는 입장이다. 박근혜 전 대표를 추격하고 있는 민주당 손학규 대표도 4년 중임제에 긍정적인 입장이며, 오세훈 서울시장과 유시민 국민참여당 참여정책연구원장 역시 4년 중임제에 찬성표를 던졌다.

반면 이재오 특임장관,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는 대통령 임기 논의보다는 대통령의 막강한 권한 자체를 분산해 권력구도의 판을 흔드는 ‘이원집정부제’에 무게추를 기울인다.

즉, 대권 주자들은 주로 대통령의 임기를 연장하기 위해, 대권 주자는 아니지만 향후 국정을 주도해 나갈 정당 핵심 지도층은 대통령의 힘을 축소하는 대신 국회의 권한을 확대함으로써 자신의 입지를 확보하기 위해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이 장관 등이 개헌 논의를 테이블 위로 올리려고 해도 정치권에서 좋은 반응이 나오지 않고 있다.

◇ 贊 “독재 가능성 없다” vs 反 “제도보다 운용상 문제”
이처럼 논의의 초점이 맞지 않는 정치권과는 달리 학계에서는 4년 중임제에 대한 찬반이 비교적 선명하다.

이헌환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현재 우리나라의 여러 가지 정치적 상황을 고려할 때 분권형 대통령제 형식보다 4년 중임제를 하면서 대통령의 권한을 제약하는 방법이 훨씬 더 적절하다”면서 4년 중임제를 반겼다.

이 교수는 “군사정권 시절의 제왕적 대통령제보다도 대통령의 권한을 약화하는 다른 제도적 장치를 보유하는 것이 필요하다”면서 “예컨대 정부의 법률안 제출권이나 장관 겸직 등을 삭제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대통령의 국회에 대한 지배 가능성을 약화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전학선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지금 우리나라는 과거 독재정권과 같은 분위기가 아니기 때문에 4년 중임제를 해도 충분히 대통령의 권력에 대한 견제가 가능하다”며 4년 중임제 도입에 찬성했다.

이금옥 순천대 법학과 교수는 “5년 단임제는 주권적인 국민의 선택권을 원천적으로 봉쇄한 면이 있다”며 “헌법 이론적으로 보면 4년 중임제가 민주적 정당성 부분에서 더 우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특히 “5년 단임제의 문제점은 임기가 끝난 다음에 국민들로 하여금 신임을 물을 수 있는 여지를 두지 않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도 이 교수는 “헌법을 개정할 만한 국민적 합의가 도출되지 않은 시점에서 이러한 논의는 시기상조”라며 “현행 헌법을 유지하고 지키려는 노력들이 더 중요하다”고 신중한 입장을 취했다.

5년 단임제를 지지하는 입장도 많다.

송기춘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레임덕 현상이 발생하는 것은 운용상 문제지 제도상 문제가 아니다. 4년 중임제가 5년 단임제보다 낫다고 할 수 없기 때문에 대안 차원에서는 반대”라고 전제한 뒤 “4년 중임제에서도 두 번째 임기에서 단임제와 같은 레임덕 현상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4년 중임제가 단임제의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송 교수는 “결국 제도의 장점은 살리고 단점은 보완하는 방법을 통해 민주성을 담보할 수 있도록 운영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단임제가 무책임 정치로 흘러갈 수도 있지만 재선을 염두에 두지 않고 철저히 국익을 우선으로 정책을 수립하고 추진하는 책임적 정치도 가능하다고 본다”면서 4년 중임제 채택에 회의적인 반응을 내비쳤다.

임지봉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1987년, 5년 단임제 규정으로 바뀌고 대통령직을 한 번밖에 하지 못하게 됨으로써 평화적인 정권교체가 일어났다”며 “이는 군사정권에서 문민정부로 권력이 이양되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임 교수는 “5년 단임제의 장점은 아직까지 유효하다고 본다”면서 “4년 중임제를 통해 8년 동안 집권하게 되면 대통령의 권력집중이나 권력비리가 발생할 가능성이 더 크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평화적인 정권교체가 좀 더 깊이 뿌리를 내리고 4년 연임제가 장기집권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지금보다 줄어들게 된 이후에 국민이 원한다면 개헌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신명순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도 “지난 1987년 이후 5년 단임제를 이어오면서 제도 자체의 문제가 나타나거나 한국정치가 잘못돼 발전을 못한 것이 있느냐”면서 현 제도를 바꿀 필요가 없다고 밝혔다.

신 교수는 또 “독재정권이 중임제를 악용해 장기집권을 할 수 있었다”면서 “5년 단임제를 했을 때 대통령이 행사할 수 있는 권한과 4년 중임제를 했을 때의 대통령 권한 중 4년 중임제로 인한 권한이 훨씬 더 막강하다”고 지적했다.

※ 용어 설명
레임덕 [lame duck]
미국 남북전쟁 때부터 사용된 말로서, 재선에 실패한 현직 대통령이 남은 임기 동안 마치 뒤뚱거리며 걷는 오리처럼 정책집행(政策執行)에 일관성이 없다는 데서 생겨난 용어다.

원포인트(one-point) 개헌
다른 헌법 조항은 건드리지 않고 대통령의 임기사항에 관한 조항만 개정하는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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