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선서하고 있는 이승만 대통령. 엄숙함과 비장함 그리고 감격이 그의 표정에 가득하다(1948. 7. 24). (사)건국대통령이승만박사기념사업회 제공)

정치ㆍ종교적 차원 넘어 ‘건국 역사’ 되짚는 작업 필요
“이승만 전 대통령 긍정적 업적 재평가돼야”
종교인 아닌 ‘건국의 父’로 합의 이끌어야

[천지일보=최유라 기자] 보수 개신교단체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가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1875~1965) 전 대통령 동상을 건립하겠다고 나서 논란이 되고 있다.

▲ 1905년 8월 4일자 ‘뉴욕타임즈’가 고종의 밀사인 이승만과 윤병구 목사가 시오도 루즈벨트 대통령을 만나 독립청원서를 제출하게 될 것이라고 보도하고 있다. 두 사람은 대통령을 잠깐 만났으나 공식외교절차를 받아 제출하라는 요구 때문에 직접 전달하지는 못했다. (사)건국대통령이승만박사기념사업회 제공)
독립운동가이자 정치가였던 이승만 전 대통령. 1~3대 대통령 자리를 놓지 않은 그의 역사를 되짚어보면 그는 초기 대통령 선거에 북한과 함께 선거하자는 김구 선생과 달리 남한에 정부를 수립하고 남한에서만 선거를 하게함으로써 남북 분단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말이 많다.

또 초대 대통령 이후 재임할 시기에 헌법을 대통령 직선제(直選制)로 개정하면서 제2대 대통령으로 재당선 됐고, 재임할 시기에는 1표가 부족해 사사오입(四捨五入)의 해석논리를 적용해 제3대 대통령이 됐다. 결국 제4대 대통령까지 연임하려했으나 4.19 혁명으로 사임한 것이 이승만의 짧은 발자취다.

한기총은 한기총 나라사랑 운동본부 산하에 있는 ‘이승만 건국대통령 동상 건립 소위원회’를 지난 15일에 출범시키고 동상 건립을 위해 국민모금운동을 펼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번 논란이 더 확대된 이유는 사단법인이나 국가차원이 아닌 개신교 연합기관인 한기총이 직접 이승만 대통령 동상 건립 사업에 나섰다는 점이다. 이는 이승만이 살아생전 신실한 크리스천이었다는 데 영향이 큰 것으로 보인다.

또한 한기총이 이승만 동상 건립 추진에 있어 “정치적인 논란을 떠나 한 나라의 건국 역사를 바로 잡아야 한다”는 취지를 밝힘에 따라 한 번 이슈를 타고 논란으로만 그칠 사안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신앙인 이승만의 숨겨진 역사

이승만 전 대통령은 정동 제일감리교회 장로다. 그가 신앙을 키우게 된 배경에는 1895년 배재학당에 입학하면서부터다. 그는 신앙이 제법 신실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청년 이승만은 고종황제를 음해하려는 음모에 가담했다는 억울한 죄명을 뒤집어쓰고 한성감옥에 갇혔을 때에도 오히려 40여 명의 죄수들에게 복음을 전해 하나님을 믿게 할 정도였다.

▲ 1905년 8월 4일자 ‘뉴욕타임즈’가 고종의 밀사인 이승만과 윤병구 목사가 시오도 루즈벨트 대통령을 만나 독립청원서를 제출하게 될 것이라고 보도하고 있다. 두 사람은 대통령을 잠깐 만났으나 공식외교절차를 받아 제출하라는 요구 때문에 직접 전달하지는 못했다. (사)건국대통령이승만박사기념사업회 제공)
1905년 8월 4일자 ‘뉴욕타임즈’에 실린 글을 보면 “고종의 밀사인 이승만과 윤병구 목사가 시오도 루즈벨트 대통령을 만나 독립청원서를 제출하게 될 것”이라고 보도돼 있어 기독교인으로 독립운동가의 기질을 알리기도 했다.

또 이승만은 일제의 탄압을 피해 1912~1945년 동안 미국으로 망명한 뒤에도 기독교 사상을 잃지 않고 독립을 위해 힘썼다. 이후 이승만은 1938년에 4만여 달러를 들여 호놀룰루에 초교파적으로 운영하는 ‘한인기독교회’를 준공한 이후 독립운동기지로 사용했다.

이렇게 독립을 위해 모진 애를 썼던 이승만은 1948년 5월 31일 제헌국회 개원식에서 임시의장으로 나서면서 “하나님께 감사드린다”는 말과 함께 이윤영 목사에게 식순에도 없는 기도를 부탁하기도 했다.

이승만은 1948년 8월 15일 정부 수립 선포식에서 대통령의 직무를 다하겠노라 다짐하는 가운데서도 ‘하나님’과 동포들 앞에서 맹세를 외쳤다. 정치활동에서도 이승만은 기독교인 정치인들을 많이 배려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문제는 그가 독재정치가라는 평을 받게 된 이유인데, 이는 하나님을 믿는 기독교 신자가 무신론자인 공산주의자들이 대한민국을 위협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기독교인들 사이에서 지배적이다.

◆불교계 “한국이 기독교 국가?”

이승만은 고인이 된 후에도 좋은 평을 받기 힘들었다. 이승만이 생전에 사용했던 별장을 복구하면서 불교계는 눈살을 찌푸리는 문구를 발견한 것이다.

2007년 8월 7일 강원도 고성군에 위치한 ‘이승만 대통령의 별장’이 복구돼 공개됐다. 별장 안에는 당시 이승만이 사용했던 방과 유품들이 고스란히 남겨있어 박물관을 연상케 했다.

문제는 이승만의 기독교적 사상이 담겨있는 대목이 눈에 띄어 불교계가 종교편향이라며 격렬한 비난을 쏟은 것이다. 별장에는 이승만 대통령을 기리는 차원에서 기독교 색채가 강한 문구를 기재해 놓았다.

‘기독교 국가 건설의 사명을 완수하고…’라는 대목을 발견한 불교계는 “공공기관에 이렇게 기록해 놓으면 대한민국을 기독교 국가로 오해할 것”이라며 이를 시정하고자 해당기관에 항의문을 올렸다.

이러한 문제는 현재 크리스천인인 이명박 대통령을 향해 불교계가 곱지 않는 시선으로 개신교를 바라보는 것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 1958년 3월 공군 K-16기지교회 5주년 기념예배에 참석한 이승만 대통령 내외(가운데). (사)건국대통령이승만박사기념사업회 제공)

◆건국 대통령 세워야 국격 선다

그렇다면 건국 대통령의 동상에 대해 어떠한 시각으로 바라봐야 할 것인가. 정부가 나서서는 자못 종교편향으로 무게가 실릴 애매한 위치에 있다.

이에 또다시 종교편향으로 번복될 것을 우려한 (사)건국대통령이승만박사기념사업회 김일주 사무총장은 “이승만 대통령 동상을 세우는 것은 어떤 특정한 종교나 종파가 아니라 모든 국민이 볼 수 있도록 세우는 것을 말한다”고 말했다.

또한 “광화문광장에 세우는 것은 1948년 8월 15일 이승만 대통령이 건국을 선포한 역사적인 장소이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김 사무총장은 “미국의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도 기념관이 있고, 중화인민공화국 정부를 세운 마우쩌둥의 사진은 천안문에 걸려있다. 하물며 대한민국을 건국한 초대 대통령을 세우지 않는 것은 국격으로도 문제가 된다”며 동상과 함께 기념관도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선포하는 이승만 대통령. 8월 15일은 광복절과 함께 건국절의 의미를 가지게 됐다. (사)건국대통령이승만박사기념사업회 제공)

일반적으로 동상을 세우는 목적은 위인의 업적을 기리고 계승·발전시키기 위함이다. 최근 들어 이승만의 긍정적 업적이 재평가되면서 관련 상징물과 동상 추진 여론이 곳곳에서 일고 있다.

지난 9월 인하대는 설립자를 존중하는 의미로 1983년에 철거된 이승만 동상을 재건하겠다고 밝혔다. 또 같은 달 미국 프린스턴대학 한국동문회도 미국 뉴저지주 프린스턴대 캠퍼스에 ‘이승만 대통령 상징물’을 세우는 사업을 추진 중이라고 밝힌 바 있다.

다만 이번에 세우겠다는 동상을 한기총이 추진하겠다고 하니 그 불똥이 기독교인에게 튀고 있는 것이다. 자칫 이승만 동상이 건국 대통령이 아닌 기독교인들만의 우상으로 치부될 것이라는 우려다.

한기총은 이런 사회적 시각을 인식하고, 국민들이 종교인이 아닌 건국의 아버지로서 이승만 동상 건립의 필요성을 인식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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