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우 안전사회시민연대 대표 

 

서울의료원에서 간호사로 일하던 서지윤씨가 목숨을 끊은 지 50일이 다 되어 간다. 진상규명은 멈춰 있다. 서지윤 간호사는 어머니에게 남긴 유서에서 자신의 주검이 발견된 뒤에 “우리 병원에 가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조문도 우리 병원 사람들은 안 받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괴롭힘을 얼마나 많이 당했는지 드러내 주는 외마디 외침 아닐까 싶다. 

서 간호사는 5년 동안 병동 간호사로 일했는데 지난해 12월 행정 업무로 발령이 났고 발령 난 뒤 한 달도 안 되어 자살을 했다. 왜 자신이 익숙하게 하던 간호 업무에서 생소한 행정 업무로 옮기게 되었는지, 삶을 마감하는 벼랑 끝으로 내몰린 이유가 무엇인지, 왜 서울의료원은 서 간호사 자살 사건 진상규명에 미온적으로 대응했는지, 왜 서울의료원 관리를 맡고 있는 서울시는 한 달 반이 넘도록 유족과 시민 사회가 요구하는 진상조사단을 구성하지 않는지 궁금하다.  

고인과 유족의 억울한 마음을 풀려면 그리고 다시는 똑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려면 철저한 진상규명과 가해자 및 책임자 처벌, 관련 법령 제정 및 개정이 이루어져야 한다. 전 사회적인 차원에서 정신을 태워 재로 만들만큼 괴롭힌다는 ‘태움 문화’를 근절할 수 있는 종합 대책이 나와야 한다. 

근본적인 원인으로 극단적인 간호인력 부족이 꼽히고 있다. 다섯 명이 해야 할 업무를 두 명이 한다는 것이다. 여건이 이렇기 때문에 신규 간호 인력이 충분한 교육을 받지 못한 채 현장에 투입된다. 간호인력 부족이 직접적인 원인인 건 맞지만 사실은 노동인권을 보장하지 않는 한국사회 자체가 문제다. 노동권을 존중하는 사회라면 사람을 적게 뽑아 중노동을 시키지는 않을 것이다. 

인간존엄성을 보장하지 않는 풍토가 만연한 한국사회가 근본 문제일 것이다. 인간존엄성이 가장 중요한 가치기준이 된다면 열악한 노동조건을 만들지도 않을 것이고 방치하지도 않을 것이다. 같은 노동자를 상급 간호사와 동료, 의사가 괴롭히지도 않을 것을 것이다. 존엄성을 가진 같은 인간으로 본다면 쌍욕을 하거나 언어폭력을 가하지도 않을 것이다. 왕따를 시키거나 모욕감을 주지도 않을 것이다. 

사건 직후 서울의료원은 자체 조사를 하고 “특이사항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했다. “심각한 따돌림이나 괴롭힘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면서 서울시에 조사를 의뢰한다고 했다. 서울시는 감사위원회에서 4인 조사관이 조사한다고 했지만 별 다른 일이 없다고 했다. 병원을 원망하며 사람이 죽었는데 특이한 사항이 없다거나 별일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진실을 가리는 행위에 다름 아니다. 서울의료원과 서울시는 조사를 어떻게 한 것인가. 

서울시의 미온적인 대응을 참다못한 시민사회는 지난달 22일 ‘서울의료원 직장 내 괴롭힘에 의한 고 서지윤 간호사 사망 사건 시민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유족과 시민사회가 참여하는 공정한 조사단 구성을 서울시에 요구했다. 우여곡절 끝에 서울시는 조사단 구성에 동의했다. 

대책위는 노노 갈등 문제 발생과 진상규명 차질을 염려해 서울의료원 내부의 복수 노조들의 참여는 배제하는 것으로 제안했고 서울시는 이 제안을 수용했다. 그럼에도 약속을 뒤집고 노동조합들이 참여해야 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아 진상조사단 구성이 지연되고 있다. 서울시가 자신의 의도가 담긴 주장을 고집하는 바람에 진실규명 작업이 멈춰 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진상규명 작업은 어려워진다. 지금이라도 노동조합 참여 요구를 철회하고 진상조사단 구성에 나서야 한다. 

박원순 시장은 늘 생명과 안전을 말한다. 서울시도 곳곳에 자신이 생명안전을 우선하는 지자체라고 홍보하고 있다. 서울시가 운영하는 공공병원 소속 간호사가 목숨을 끊었고 집단괴롭힘 의혹이 일고 있는데 진상규명에는 미온적으로 나오고 있다. 왜 말과 행동이 다른가. 

박원순 시장과 서울시는 진실규명 작업에 적극 나서고 서울의료원에서 간호사 자살 사건이 발생한 점에 대해 지금이라도 진정어린 사과를 하고 재발방지를 약속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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