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록

최기창(1928~  )
 

처음으로
일학년 담임하던 날

아직 봄은 멀었는데
교실엔 벌써
봄이 와 있었다.

갓 눈을 뜨고 재잘대는
연두빛 수다가
나를 봄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난생처음
참다운 신록을 보았다.

 

[시평]

벌써 2월이 다 지나고 있다. 아직 날씨는 쌀쌀해도, 때때로 눈이 내리기도 해도, 머잖아 봄이, 봄날의 그 따사로운 기운이 찾아 올 것을 우리는 안다. 며칠 더 지나면, 겨우내 얼었던 땅도 조금씩, 저 깊은 안쪽에서부터 서서히 풀리기 시작하고, 조금씩, 아주 조금씩 나뭇가지마다 봄물 길어 올리는 소리가 들릴 것이다.

이런 새봄이 오면, 이제 막 학령기를 맞은 아이들이 저마다 가슴에 손수건을 하나씩 매달고 학교에를 간다. 처음으로 가는 학교. 이 아이들이 처음 들어와 있는 일학년 교실은 아직 봄은 멀었는데, 교실엔 벌써 봄이 와 있다. 갓 눈을 뜨고 재잘대는, 아이들의 이야기 소리, 아! 그 소리는 다름 아닌 연두빛 수다 아니겠는가. 이러한 아이들의 연두빛 수다에 선생님은 벌써 봄빛으로 물들어 가고 있다.

신록과 같이 푸릇푸릇한 이 아이들. 얼마나 소중한 존재들인가. 그 처음의 문을 열어주는 선생님 또한 얼마나 소중한 분인가. 이 아이들을 바라보며, 재잘재잘 이야기를 하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난생처음 참다운 신록을 보았다는 선생님의 그 마음. 재잘거리는 아이들로 인하여, 비록 지금 그 연세 여든이 넘었어도 연초록 신록의 그 마음 지니고 살아가고 있으리.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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