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 담양=이미애 기자] 전통방식 그대로 만들어진 고재구 담양 전통 쌀엿 완제품에 고소한 콩가루가 뿌려져 먹음직하게 보인다. ⓒ천지일보 2019.2.19
[천지일보 담양=이미애 기자] 전통방식 그대로 만들어진 고재구 담양 전통 쌀엿 완제품에 고소한 콩가루가 뿌려져 먹음직하게 보인다. ⓒ천지일보 2019.2.19

대숲 친환경 햅쌀, 맛 깔끔해
농민 직배 겉보리 ‘엿기름’ 用

국민 간식거리로도 인기 누려
과거 시험 급제 기원해 먹기도

[천지일보 담양=이미애 기자] 담양군 ‘창평쌀엿’은 예로부터 조상들의 지혜가 담긴 제조법으로 현재까지 그 전통의 ‘맥’을 지켜오고 있다.

‘창평쌀엿’은 농경시대 먹거리가 부족했던 조상들이 곡물을 재료로 만들어 먹던 음식 중 하나로 담양군 특산품이기도 하다.

기자는 전라남도 담양군에 있는 한 쌀엿 판매 농가를 찾았다. 직접 쌀엿을 만들어파는 이 농가에는 쉴새없이 주문이 이어졌다. 그 만큼 인기가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완성된 쌀엿은 고소한 콩가루를 뿌린 후 서로 엉겨 붙지 않도록 포장돼 소비자에게 배달된다.

인스턴트식품이 범람하는 요즘 창평쌀엿은 웰빙 간식거리로 전국에 팔려나가 담양군을 알리는데 한몫하고 있다. 창평쌀엿은 생강과 깨가 들어가 입안에 넣었을 때 고소한 맛과 향이 일품이다. 먹을 때 바삭거리고 치아에 붙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문헌에 따르면, 창평쌀엿은 조선 시대 양녕 대군이 전남 담양군 창평면에 낙향해 살고 있을 때 수행한 궁녀들에 의해 비법이 전수됐다. 특히 지역에 부임한 현감들이 궁중 대감들에게 선물할 때 사용한 엿으로 알려져 있다. 전통 혼례식을 치를 때 ‘입 덥치기라’ 해서 시가 댁에서 널리 나눠 먹던 토속적 자연식품이다.

담양 창평쌀엿은 임금님 다과상에도 오른 진상품이다. 사대부가 자녀들이 과거를 보러 갈 때 급제를 기원하는 뜻에서 즐겨 먹었다고 전해진다. 담양 창평 전통 쌀엿에 들어가는 재료(쌀, 엿기름, 생강, 참깨)는 모두 국산을 사용한다. 완제품은 밀봉해 냉장고에 보관해 두면 1년 동안 달콤한 쌀엿의 맛을 즐길 수 있다.

◆창평쌀엿 어떻게 만들어질까

창평쌀엿의 주재료는 생태 도시 담양군에서 생산하는 친환경, 무농약 햅쌀이다. 수증기로 밥을 찌는 방식인 고두밥을 지어 사용한다. 고두밥에 따뜻한 물과 엿기름가루를 합쳐 9시간에서 10시간을 두면 식혜가 된다.

발효된 식혜는 물과 찌꺼기를 분리한 후 가마솥에서 충분히 끓여준다. 이때 중간 불에서 4시간 정도 저으면서 끓여야 갱엿이 된다. 갱엿이 되기 전은 조청이다. 쌀엿은 사람이 인위적으로 가공해 빨리 만들 수 없다. 기계를 사용해 대량 생산할 수도 없다. 식혜가 되는 과정만 하더라도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그야말로 인내가 필요하다.

기계나 도구는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온전히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진다. 갱엿을 늘리면 마찰로 인해 흰색으로 변한다. 이 과정에서 다시 수증기를 쬐며 늘려주는 과정을 거치면 엿에 공기층이 생기면서 바삭하고 달콤한 쌀 엿이 탄생한다. 창평쌀엿은 대나무처럼 속이 텅 비어있다. 제조과정에서 공기층이 형성되기 때문이다. 일반 엿과 달리 달라붙지 않은 이유도 공기층 때문이다.

[천지일보 담양=이미애 기자] 담양군 고재구 전통쌀엿 고강석 대표가 쌀엿을 자르고 있다. ⓒ천지일보 2019.2.19
[천지일보 담양=이미애 기자] 담양군 고재구 전통쌀엿 고강석 대표가 쌀엿을 자르고 있다. ⓒ천지일보 2019.2.19

◆3대째 이어온 고재구 전통쌀엿

담양군 창평면에서 쌀엿을 만드는 10여 농가 중 고재구 전통쌀엿(대표 고강석)과 조청은 재료의 선택에서부터 만드는 과정까지 철저하게 전통방식을 고수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고강석(65) 대표는 아직도 작고하신 아버지(고재구)의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면서 3대째 전통 쌀 엿과 조청 등 도라지청를 만들어 인터넷을 통해 판매하고 있다.

쌀엿과 조청은 단맛이 특징이다. 일반적인 단맛이 아닌, 엿기름의 당화과정을 거친 천연 그대로의 맛을 유지하고 있다. 고 대표는 “아버지 세대에서는 영리 목적이 아닌, 마을에 애·경사가 있을 때나 민족 고유의 명절이 되면 집마다 쌀 엿을 만들어 나눠 먹었다”며 “이렇게 상품화로 판매될 줄은 몰랐다”고 지나온 세월 변화에 대해 회상했다.

그는 “모든 과정이 전통방법을 지켜야 해 일반 가공식품처럼 대량 생산할 수 없다”며 “돈벌이를 위해 이 일을 한다면 그만해야 한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이어 “다만 가을 추수가 끝나고 겨울 농가에 특별한 소득원이 없는 상황에서 쌀 엿 판매수익이 농가소득의 효자 노릇을 하고 있으니 조상들이 물려준 ‘전통방식’을 훼손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온도에 민감한 쌀 엿은 사계절 중 추운 겨울인 12월부터 2월까지 3개월여 작업으로 끝난다. 고강석 대표에 따르면 강원도는 곡식이 흔하지 않아 옥수수를 사용해 황금 엿을 만들어 먹는 등 지역에 따라 주재료가 달랐다.

예로부터 곡창지대인 호남지역은 농토가 많아 쌀을 이용해 엿을 만들어 먹었다.

고 대표는 “식량이 부족했던 박정희 전(前) 대통령 시대에는 곡물을 사용해 ‘술’ ‘엿’ 등 만들어 먹는 것을 국가 차원에서 금지했다”며 “이후 수확이 풍성한 ‘통일벼’를 심어 쌀 생산이 많아지면서 단속이 멈춰지고 각 가정에서 쌀을 사용한 식품을 자유롭게 만들어 먹을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불량 먹거리에 대한 불신이 팽배한 상황에서 담양군 창평면 농가에서 제조·판매하는 쌀엿은 정성이 버무려진 고유의 맛과 향, 전통을 자랑한다.

[천지일보 담양=이미애 기자] 고재구 담양 전통 쌀엿 농가 전경,  ⓒ천지일보 2019.2.19
[천지일보 담양=이미애 기자] 고재구 담양 전통 쌀엿 농가 전경, ⓒ천지일보 2019.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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