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이시영 시인(왼쪽)과 고은 시인(오른쪽) ⓒ천지일보
이시영 시인(왼쪽)과 고은 시인(오른쪽) ⓒ천지일보DB

[천지일보=홍수영 기자] 고은(86) 시인이 자신의 성추행 의혹을 제기한 최영미(58) 시인과 언론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패소했다. 다만 법원은 박진성 시인만 10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4부(이상윤 부장판사)는 15일 고은 시인이 최영미 시인과 박진성 시인, 언론사 등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이같이 밝혔다. 이날 판결은 고 시인의 성추행 의혹에 대한 법원의 첫 판단이었다.

법원은 “최 시인의 진술이 구체적이고 일관돼 있고 특별히 허위로 의심할 만한 사정이 보이지는 않는다”면서 “이에 따라 최 시인 제보를 바탕으로 한 언론사의 보도 역시 허위임을 입증하기 부족하다”고 판시했다.

그러면서도 박 시인에 대해서는 “박 시인의 제보 내용이 공익성이 인정된다 하더라도, 박 시인이 지목한 성추행 피해 여성이 특정되지 않아 제보 내용을 진실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날 재판장에 출석한 최 시인은 선고 이후 기자회견을 열고 “제가 이겼다. 이 땅에 정의가 살아 있다는 것을 보여준 재판부에 감사드린다”며 “다시는 성추행 가해자가 피해자를 뻔뻔스럽게 고소하는 사회 분위기를 만들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고은 시인의 성추행 의혹은 최 시인이 시 ‘괴물'에서 그를 암시하는 원로 문인의 과거 성추행 행적을 고발한 사실이 지난해 2월 알려지면서 불거졌다. ‘괴물’ 시는 지난해 9월 인문 교양 계간지 ‘황해문화’에 실렸다.

시는 한 원로 문인의 성추행 행적을 언급한 것으로 고 시인의 성추행 고발 내용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파문이 커졌다.

이후 최씨는 방송에 출연해 원로 시인의 성추행이 상습적이었다고도 했다.

고씨는 한국작가회의 상임고문직 등에서 사퇴했으며 지난달 최씨와 자신의 성추행을 목격했다고 주장한 시인 박진성씨, 언론사 등을 상대로 10억 7000만원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고씨 측 법률대리인은 “원고는 성추행한 사실이 없고 최 시인 등의 폭로는 가짜”라며 “당시 자리에 있던 사람의 진술을 증거로 제출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재판에선 진실성 부분에 대한 입증이 문제가 될 것”이라며 “성추행 의혹을 제기한 측에서 구체적으로 자료를 제출하고 증명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반면 최씨 측 법률대리인은 “피고가 제보한 건 남에게 들은 게 아니라 본인이 직접 듣고 본 것이라 고씨에 대한 폭로 내용은 명백한 사실”이라며 “다른 곳에서도 이런 일이 있었다는 증언이 많다”고 반박했다. 이어 “괴물이라는 시를 쓴 것도 2016년 이전으로 실제 있었던 일임을 입증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첫 변론 직후 최씨는 “제가 직접 보고 목격한 것이라 입증할 필요성을 못 느꼈는데 입증하기 위해 또 다른 노력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면서 “고은씨의 행위는 실제 있었던 일이라는 것을 재판과정에서 입증하겠다.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또 “문단 내 성폭력을 말하면서 고은을 말하지 않는 건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것”이라며 “제 진술이 사실임을 입증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최씨는 “양심 있는 작가들을 비롯해 이제는 문단이 나서야 할 때”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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