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보다 행복하기] 행복한 거리
[어제보다 행복하기] 행복한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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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은훤 행복플러스연구소 소장 

 

어렸을 때 친구하고 다투거나 사이가 안 좋아져서 부모님께 말씀을 드리면 거리를 좀 두어보라고 말씀하셨던 것이 생각난다. 그런데 살다보니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적당한 거리가 있다. 적당한 거리, 행복한 거리 말이다.

물론 세월이 가면서 적당한 거리의 개념이 달라진 것도 있다. 예전에는 화장실과 사돈집은 멀어야 한다고 했지만 현대의 화장실은 심지어 안방까지 들어오게 됐다. 필자의 언니는 요즈음 사돈이 자신이 사는 동네에 와서 정착하겠다며 부동산계약까지 했다고 좋아한다. 나이 들어 서로 의지도 되고 아이들도 한 번에 시댁과 친정을 올 수 있으니 좋지 않겠냐고….

이렇게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경우, 적당한 거리는 계속 요구돼왔다. 그런데 주변을 둘러보면 거리가 멀어서 생기는 문제보다 너무 가까워서 생기는 문제가 훨씬 큰 것 같다. 마치 예전에 동굴에서 살던 디오게네스를 찾아 갔던 알렉산더 대왕이 앞을 가로막고 원하는 것을 다 해줄 테니 말해보라고 했던 것처럼 말이다. 디오게네스는 그저 햇볕을 가리지 말아달라고 이야기를 한다. 요즘 마치 아이들의 앞에 버티고 서서 뭐든 다 해줄 테니 공부만 하라는 부모님들, 그리고 자기만 보라고 하는 배우자들이 너무 많다.
‘나무는 큰 나무 덕을 볼 수 없지만 사람은 큰 사람 덕을 본다’라는 속담이 있다. 덕을 본다는 것은 여기서 이야기하고자하는 적당한 거리와는 관계가 적어 보인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나무도

적당한 거리를 확보하지 못하면 다른 나무에 의해서 자라지 못한다는 뜻이다. 농사용어 중에 ‘아주심기’라는 것이 있다. 묘목이나 모종을 더 이상 옮겨 심지 않아도 되도록 완전하게 심는다는 뜻이다. 묘목이나 모종은 씨앗의 싹을 틔우는 것이니 심는 사람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 대부분 불규칙하고 지나치게 빽빽하다. 그것들을 수확할 때까지도 서로 해가 되지 않도록 거리를 두어서 새로 심는 것이 바로 ‘아주심기’인 셈이다. 

사람도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 물리적인 거리라면 30㎝보다 더 가까이 서는 것은 연인 등의 특별한 관계가 아니라면 상대가 불편할 수 있다고 한다. 자기계발 책 등에서 보통 이야기하는 거리이다. 사실 그 이상 가깝게 오면 동물적인 본능에 의해 공격이라고 느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보통 사람들에게 이 물리적인 거리는 특별한 문제가 없을 것이다. 문제는 마음의 거리인데 적당한 거리를 가늠해 지키는 것이 쉽지 않다. 필자의 아주 개인적인 원칙이 있다. 2:1원칙인데 상대가 한 번 연락할 때에 나는 두 번 정도 연락하는 것이다. 사람은 연락을 먼저 받은 일보다 자신이 먼저 연락한 것을 더 많이 기억하기 때문이다. 두 번 정도를 사이를 두어 연락을 했는데도 연락이 오지 않는다면 상대가 부담스러울 수도 있겠구나하고 생각한다. 물론 예외는 있다. 몇 달에 한 번씩 연락하는 경우, 물리적인 거리 때문에 전화만 하는 경우는 상대가 기분나빠하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는다면 주로 내가 먼저 연락을 하는 편이다. 

사실 먼 사람보다 가까운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경우가 훨씬 많기 때문에 당연히 가까운 사람들에게 신경을 더 많이 써야 한다. 가까운 사람과 감정이 안 좋을 경우 다가가서 물어보기보다 뒤로 한 걸음 물러서주거나 옆으로 비켜서주는 것이 서로에게 행복한 거리를 확보해주는 방법일 것이다. 아이가 먼 미래를 볼 수 있도록, 그리고 배우자가 자신의 위치를 잘 돌아볼 수 있도록 거리를 확보해 줄 수 있어야 한다. 이 적당한 거리가 서로를 소중하게 느끼게 해줄 뿐 아니라 행복하게 느끼도록 해준다. 

그래서 서로가 적당한 거리를 잘 유지했을 때 서로의 관계도 ‘아주심기’를 한 식물처럼 튼튼하게 잘 성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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