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우에 대한 숙고

정한용(1958~  )
 

몇 년 전부터 노안인가 싶더니, 이젠 안경이 잘 안 맞는다. 양쪽이 서로 어긋난다. 왼쪽으로 보는 세상은 흐리지만 부드럽고 따뜻한데, 오른쪽으로 보는 세상은 환하지만 모가 나고 차갑다. 둘 사이의 불화와 냉전에 속앓이가 심했는데, 알고 보니 오랜 쌓인 원한이 있었다. 수구와 진보의 싸움은 식상한 것이 되었고, 훈구와 사림의 대립도 짓물렀다. 정상 과학을 두고 벌인 칼 포퍼와 토마스 쿤의 논쟁에 대해서는 논문으로 까발린 적도 있다. 새는 두 날개로 난다고 리영희 선생께서 일갈했지만, 나는 차라리 두 세상을 따로국밥처럼 몸속에 나눠놓고 살겠다. 왼쪽 눈이 쓰린 날은 막걸리에 해물파전을 먹고, 오른쪽 눈이 부신 날은 소주에 삼겹살을 먹겠다.
 

[시평]

사람이 사는 사회는 언제고 서로 편을 가르고, 또 이 갈라진 편들이 갈등과 분쟁을 일으키게 마련인 모양이다. 아주 오래 전, 그 옛날 우리 사회는 선비들이 훈구(勳舊)라고 하여 정치적으로 공을 세운 세력들이 관권중심(官權中心)의 지배체제를 확립하고자, 사족중심(士族中心)의 지배체제를 형성하고자 하는 사림(士林)들과 갈등을 일으켜 심지어는 서로 죽이는 사태까지 이르렀었다. 그런가 하면, 서양의 근대라는 문물이 물밀 듯이 들어오던 19세기 우리나라는 우리 전래로 내려오는 우리의 옛 것을 지켜야 한다는 수구(守舊)와 새롭게 들어오고 있는 새로운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개화(開化)가 서로 나뉘어 싸움을 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진보냐 보수냐가 한쪽은 촛불을, 한쪽은 태극기를 들고 서로 갈등을 빚고 있다. 어느 한 쪽을 어설프게 말했다가는 본전도 못 찾는 것이 요즘의 냉랭한 세태이기도 하다. 참으로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새는 두 날개로 난다고, 오래 전 리영희 선생이 일갈을 한 것인가. 

오늘 우리의 삶 어디엔가는 어쩌면 이 양자를 모두 수용할 수 있는 보다 폭 넓은 중도가 또한 필요한지도 모른다. 그래서 시인은 선언을 한다. ‘나는 차라리 두 세상을 따로국밥처럼 몸속에 나눠놓고 살겠다. 세상을 흐리지만 부드럽고 따뜻하게 볼 수 있는 왼쪽 눈이 쓰린 날은 막걸리에 해물파전을 먹고, 세상을 환하지만 모가 나고 차갑게 볼 수 있는 오른쪽 눈이 부신 날에는 소주에 삼겹살을 먹겠다.’고. 왼쪽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도, 오른쪽 눈으로 볼 수 있는 세상도 결국은 우리가 살아가고 또 사랑해야 하는 그 세상이니까 말이다.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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