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 안중근 동상. ⓒ천지일보 2019.2.14
남산 안중근 의사 동상. ⓒ천지일보 2019.2.14

사형선고 후 집필… 시대 앞선 평화사상 재조명
학계, 동양평화론 현실화 방안 논의 필요 제기
“한·중·일 공동역사교과서 통해 연합 지향해야”
“침략전쟁, 인류 ‘평화·인권’ 파멸로 이끄는 것”

[천지일보=박준성·김빛이나 기자] 2월 14일 연인들이 설렌 마음으로 만나 선물을 주고받는 밸런타인데이라 생각하는 이들이 많지만,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큰 슬픔이 드리운 날이다. 109년 전 2월 14일, 우리 국민이 꼭 기억해야 될 이날은 바로 도마 안중근(1879∼1910) 의사가 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날이다.

1909년 10월 26일 안 의사는 중국 하얼빈역에서 러시아와 회담을 위해 건너온 이토 히로부미를 총살하고, 그 현장에서 러시아 경찰에 의해 체포됐다. 그는 일본으로 넘겨져 중국 뤼순(여순)감옥에 수감돼 일제의 모진 고문과 수모를 당했다. 이듬해 2월 14일 재판에서 사형이 선고돼 3월 26일 형장의 이슬로 생을 마쳤다.

안중근 의사의 생애는 향년 31세의 나이로 매우 짧았다. 그러나 우리 민족의 독립운동사에서 안 의사의 발자취를 결코 빼놓을 수가 없다.

안 의사는 1909년 3월 2일 러시아에서 11명의 동지와 함께 ‘단지회’라는 비밀결사대를 조직한다. 그해 10월 26일 이토가 러시아의 대장대신 코코프체프와 하얼빈에서 회견한다는 정보를 듣고 만반의 준비를 한다. 거사 계획대로 안 의사는 총탄 3발을 적의 심장에 관통시켜 대한제국의 독립의지를 만천하에 알렸다.

안 의사는 적장 이토 히로부미의 심장에 총을 겨눈 이유를 분명히 했다. “우리 민족을 침략했기 때문이 아니다. 동양의 평화를 깨트리고 해치는 자이기 때문이다.” 대한의 독립주권을 침탈한 원흉이자 동양평화의 교란자이기 때문에 거사를 감행했다고 안 의사는 당당히 밝혔다. 사형을 선고받은 후 옥중에서 집필한 그의 ‘동양평화론(東洋平和論)’과 휘호한 많은 유묵(遺墨)에도 그 정신이 깃들어 있다. 안 의사의 당당한 태도와 발언에 일본 재판장과 검찰관들도 탄복했다고 전해진다.

한중일 3국이 동북아시아의 평화 세계를 열고 나아가 세계평화 메시지를 담은 동양평화론의 핵심은 다음과 같다. 뤼순의 개방과 공동관리, 3국 평화회의 구성, 3국 공동은행의 설립과 공용화폐 발행, 3국 공동군단 설립과 2개 국어 교육을 통한 평화군 양성, 공동 경제발전, 로마교황으로부터 3국 독립을 보장받는 방법 등이 골자다.

한중일 나라가 공동의 노력으로 평화롭게 번영해야 한다는 큰 그림을 그린 3국 평화체제 구상론은 오늘날 비슷한 국가연합체제를 형성한 유럽연합(EU)보다 100년을 앞선 것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동양평화론은 안 의사가 뤼순감옥에서 사형집행을 앞두고 남긴 두 가지 기록 중 하나다. 안 의사는 원래 5부를 계획했다. 하지만 예정보다 일찍 사형이 집행되며 서론과 전감 2부만 집필을 마친 채 미완으로 남았다.

◆한중일 유학생, ‘동양평화론’ 논의

시대를 앞선 안 의사의 평화사상이 담긴 ‘동양평화론’은 오늘날까지도 많은 학자들에 의해 연구되고 있다. 지금 동아시아 정세가 갈등과 반목을 거듭하면서 요동치고 있어 이를 실현시키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논의도 진행돼 왔다.

이재형 ㈔동아시아평화문제연구소 소장은 한국·중국·일본 유학생들이 연구소에 모여 ‘안중근 의사의 동양평화론의 현대적 함의’라는 주제로 지난 2013년 세미나를 열었던 것을 회상하며 당시 논의됐던 내용을 소개했다.

이 소장에 따르면, 당시 세미나에 참석한 카와무라 미사키(일본, 한국외국어대학교 석사과정)씨는 “한일 관계와 동양이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는 다각적인 차원에서의 교류가 가장 중요하다”며 “이러한 때 안중근의 ‘동양평화론’에 대해서 배우고 실천하는 것은 상당히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현재 한중일 외교 관계는 결코 좋다고 할 수는 없지만, 안중근이 ‘동양평화론’에서 주장했었던 것처럼 앞으로 시민들의 교류를 넘어, 동양삼국의 공동체를 이뤄야 할 역사적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역사적, 사회적, 문화적, 군사적, 경제적인 공동체 구성을 위한 동양삼국의 논의를 이제부터라도 시작한다면 안중근 꿈의 현실도 멀지 않을 것”이라며 “무엇보다도 오늘처럼 젊은이들이 아시아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고 교류하는 자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도마 안중근 의사 손도장 (제공:안중근의사기념관)
도마 안중근 의사 손도장 (제공:안중근의사기념관)

◆“한중일, 역사 인식 공유해야”

세미나에서는 안 의사의 동양평화론을 현실화함에 있어 한중일 삼국이 역사인식을 함께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오연(한국외대 국제지역학대학원 한국학과)씨는 “평화를 위한 모든 논의는 종국에 체제 통합을 목표로 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지만, 연합을 지향할 때 평화에 보다 가까워질 수 있다는 인식이 공유돼야 한다”며 그 방안으로 한중일 공동 역사교과서를 제시했다.

그는 “동아시아 삼국이 직면한 여러 문제들은 언어나 문자 그 자체에서보다는 자국 중심의 역사관에서 비롯된 충돌과 오해의 탓이 크다”며 “안중근을 보는 시각도 중국과 한국은 안중근이 ‘의사’라고 생각하고 일본에서는 ‘테러리스트’로 간주되는 것은 역사의 진실을 외면하고 서로 각국의 입장에서만 문제를 바라보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자국의 입장을 무조건 포기하라는 것이 아니지만 같은 사안에 대한 타국의 입장과 이해를 접할 기회가 기본적으로 주어진 것과 그렇지 않은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며 “세계사의 흐름이나 주변국가의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경우, 균형감을 갖고 자국의 역사를 이해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영웅의 기준 ‘정의·평화’ 행동 여부”

또한 안중근에 대해서도 자국사를 넘어서 동아시아의 관점에서 인식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일제의 시각으로만 볼 때 이토 히로부미를 위대한 영웅 또는 평화주의자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나라를 위해서 공을 세우고 죽은 위대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면서 “그러나 영웅의 기준은 정의와 평화를 위해서 행동하는가 그렇지 않는가에 달려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의 원인과 과정, 결과를 살펴보면 일본의 침략성을 경계하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며 “침략전쟁은 인류의 평화와 인권을 파멸로 이끄는 것이다. 그러므로 일제의 아시아 침략에 앞장선 이토 히로부미는 동아시아의 평화, 인권의 역사를 볼 때 진정한 영웅도 평화주의자라고도 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끝으로 그는 “소중한 감성을 지성으로 바꿔 문화와 역사의 지적체계로 조성해 갈 수 있다면, 진정한 의미에서 문화교류를 이룰 수 있다”면서 “당장의 이익뿐 아니라 역사인식을 공유할 때 비로소 서로에 대한 진정한 이해의 길이 열리고 동양의 평화와 공존이 실현될 수 있을 것”이라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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