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이혜림 기자] 범진석 사진작가가 대한민국사진대전에서 ‘대상’을 받은 작품‘환희’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천지일보 2019.2.13
[천지일보=이혜림 기자] 범진석 사진작가가 대한민국사진대전에서 ‘대상’을 받은 작품‘환희’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천지일보 2019.2.13

 

카메라 인생 40년·작가 활동 20년… 올해 70세

13~15㎏ 나가는 카메라 장비 들고 이리저리

작품 ‘환희’로 대한민국사진대전서 ‘대상’ 받아

“출사 나가면 사업과 걱정·근심 모두 떨쳐버려

[천지일보=이혜림 기자] 백발이 된 머리카락의 한 노년 신사가 청년들도 들고 다니기 힘든 DSLR 카메라를 들고 이리저리 뛰어다닌다. 13~15㎏ 나가는 카메라 장비가 무겁지 않은지 노년 신사는 산과 바다, 들로 옮겨 다니며 풍경사진을 찍는다. 그는 바로 범진석 사진작가다.

“그림은 물감으로 앉아서 그리는 거지만 사진은 빛으로 그리고 발로 뛰어야 멋지게 찍을 수 있어요. 부지런히 현장을 쫓아다니며 노력하면 좋은 작품을 얻을 수 있죠. 이건 비단 사진뿐 아니라 모든 일이 마찬가지 같아요. 적당히 하지 않고 발로 열심히 뛰면 그만큼 좋은 결과가 나와요.”

올해 70세의 범진석 작가가 무거운 장비를 들고 출사하러 다닌 이유를 이같이 설명했다. 카메라를 든 지 40년, 아마추어 사진작가 활동한 지 20년이 됐지만 그는 아직도 사진 촬영을 할 때 즐겁다. 범 작가는 “사진이 좋은 이유는 열심히 하면 할수록 즐겁고, 결과를 얻기 때문이다. 사진이 남으면 후손에게 유산이 된다”며 “훌륭한 작품이 아니더라도 후손이 사진을 보면서 ‘아, 우리 조상이 이런 일을 했구나’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범진석 사진작가의 작품 ‘마이산’. (제공: 범진석)
범진석 사진작가의 작품 ‘마이산’. (제공: 범진석)

 

그는 아주 우연한 계기로 사진을 시작하게 됐다. ㈜동양통상 대표이사로 있는 범 작가는 마흔을 앞둔 1996년 회사 경영을 위해 경영대학원을 다녔다. 그 시절 행사가 있을 때마다 그는 같은 과 학생들의 사진을 찍어 인화해 선물하고 그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며 보람을 느꼈다. 그는 “아저씨가 같이 공부하러 와서 사진 찍어주니 기념이 됐다”며 “그러던 중 나처럼 회사 대표로써 실력을 쌓기 위해 같이 강의를 듣던 한 회사 사장님에게 사진동아리를 소개받아 들어가면서 본격적인 사진작가 활동을 시작하게 됐다” 전했다.

필름 카메라를 사용하던 당시에는 사진 촬영 후 필름을 고르고 인화하는 데까지 여러 과정을 거쳐야 했다. 카메라의 셔터를 누를 때부터 사진이 나오기까지 모든 순간이 범 작가에겐 신나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범 작가는 “필름이 한정돼 있다 보니 셔터를 누를 때 진중하게 누르게 된다. 그때 작은 기쁨이 느껴진다”며 “현상을 보내면 3일이 걸리는데 이후 인화를 해서 기대했던 사진이 나오면 너무 기쁘더라”고 회상했다.

[천지일보=이혜림 기자] ‘범진석 갤러리 전경. ⓒ천지일보 2019.2.13
[천지일보=이혜림 기자] ‘범진석 갤러리 전경. ⓒ천지일보 2019.2.13

 

“풍경 사진을 찍기 위해 산을 많이 타야 하는데 사실 전 사진을 찍으러 다니면 안 되는 몸이에요. 강직성 척추염을 20년 넘게 앓고 있으면서 작품 활동을 하는 거죠. 그대로 있으면 근육이 강직돼버리기 때문에 병을 극복하려고 ‘오늘 가면 다시는 사진을 찍을 수 없다’는 생각으로 카메라를 메고 나갑니다.”

그의 병이 완쾌된 것은 아니다. 범 작가는 아픈 몸으로 사진을 찍는 이유를 “출사를 나가면 무거운 카메라 가방을 메고 돌아다니기 때문에 30분 정도 통증이 엄청나다. 가방을 지고 가면 등에서 땀이 주르륵 흐른다”며 “땀이 나면 근육이 이완되면서 통증이 없어진다. 잠깐의 통증을 참으면 더 많이 움직일 수 있으니 극복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카메라 메고 출사를 나가면 사업과 근심, 걱정을 모두 떨쳐버려요. 오로지 ‘어떻게 하면 사진을 더 좋게 사진을 찍을 수 있을까’만을 고민하죠. 누가 사진은 빼기를 잘해야 한다고 그러더라고요. 피사체의 아주 작은 아름다움을 찾아 보여 주면 보는 사람의 사물을 보는 시각이 달라지잖아요. 그때 행복을 느껴요(웃음).”

그의 작품은 대부분 인물이 아닌 풍경을 피사체로 한다. 사람은 표정에 따라 달라지는데 풍경은 빛에 영향을 받아 다른 작품이 나온다는 이유에서다. 범 작가는 “풍경은 빛의 영향을 90% 이상 받는다. 아무리 예쁜 꽃이라도 빛이 맞지 않으면 아름다움을 그대로 담을 수 없다”며 “빛이 너무 강하거나 약하면 색을 죽인다. 그래서 해가 뜨고 난 후 2~3시간이나 해가 질 때 사진을 찍는다. 그 시간에 빛이 부드러워서 아름다운 색이 표현된다”고 강조했다.

범진석 사진작가가 사진을 찍기 위해 산에 올라 촬영 전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제공: 범진석)
범진석 사진작가가 사진을 찍기 위해 산에 올라 촬영 전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제공: 범진석)

 

그가 이처럼 색감에 민감한 것은 직업의 영향이다. 그는 1982년부터 자동차 보수용 페인트를 납품하는 기업가로 일해왔다. 자동차에 꼭 맞는 색을 구현하기 위해 페인트를 섞어 제조한다. 범 작가는 “배합에 따라 미세하게 색이 달라지기 때문에 직업상 색에 민감하다. 자동차 보수를 위한 페인트를 만들려면 보수할 차의 색과 93~97% 정도는 맞춰야 소비자가 괜찮다고 본다”며 “어느 빛에서 비춰보느냐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계속 비교하는 과정을 거친다. 이 때문에 제 작품의 채도가 섬세하게 나오는 것”이라고 전했다.

그의 열정은 호남미술대전 종합대상(2015), 5.18전국사진대전 특선(2016), 광주시사진대전 우수상(2015) 및 특선(2016·2017), 대한민국 사진대전 입선(2016) 및 특선(2016·2017), 전국사진회원전 10걸상 등 다수의 대회에서 수상으로 인정받았다.

지난해에는 ‘제36회 대한민국사진대전’에 ‘환희(歡喜)’라는 작품으로 대상을 손에 거머줬다. ‘환희’는 베트남의 오래된 사원에서 선 노인과 불상을 함께 배치한 작품이다. 그는 “할아버지 표정 때문에 찍게 됐다. 할아버지 표정을 보니까 너무 밝더라”며 “불교에서 아미타 부처님이 우리 인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게 사는 걸 바란다. 불경을 듣고 신심을 얻어 마음이 편안해지는 삶이 그러하다. 할아버지 표정이 아미타 부처님을 떠올려 함께 배치했다”고 밝혔다.

이후 그는 지난해 12월 ‘범진석 갤러리’를 열어 활동 영역을 확장했다. 그는 직접 갤러리를 개관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우연한 계기로 사무실을 얻게 돼 사진을 찍는 사람으로서 갤러리를 만들어 많은 분에게 사진을 보여드리고 개관하게 됐다는 게 범작가의 설명이다. 그는 “대한민국사진대전 시상식에서 ‘대상을 탔으니 사진작가 선후배들한테 도움이 되는 일을 하겠다’고 말한 적 있다”며 “경제적으로 어려운 예술가에게 적은 비용으로 갤러리를 대여하는 방법으로 예술가들의 공간을 만들려고 한다”고 계획을 전했다.

이어 “그동안 했던 노력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줘 지치고 고단한 삶을 사는 사람에게 희망이 됐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올해 그는 첫 번째 개인전을 준비 중이다. 또 책을 발간해 더 많은 이에게 작품을 보여주고자 한다.

“작품 활동에는 기한이 없어요. 그러나 내가 못 걸어 다니면 끝이죠. 최소한으로 가지고 다녀도 7~8㎏인 카메라를 들고 다니지 못하면 사진 촬영을 못 하죠. 카메라를 지고 돌아다니는데 지장이 생겨 출사하러 다니지 못할 때가 제 작가 인생의 정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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