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이 6일 새벽 아랍에미레이트연합 방문을 마치고 바티칸으로 돌아오는 전용기안에서 사제와 주교들의 수녀 성폭행이 카톨릭 내의 ‘문제’라고 공개 발언했다. 교황은 “사제는물론 주교들 중에도 그런 짓(성폭행)을 한 이들이 있다”면서 “그런 일이 지금도 저질러지고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사진은 5일 아랍에미레이트에서 열린 미사에 참석한 교황. ⓒ천지일보 2019.2.13
프란치스코 교황이 6일 새벽 아랍에미레이트연합 방문을 마치고 바티칸으로 돌아오는 전용기안에서 사제와 주교들의 수녀 성폭행이 카톨릭 내의 ‘문제’라고 공개 발언했다. 교황은 “사제는물론 주교들 중에도 그런 짓(성폭행)을 한 이들이 있다”면서 “그런 일이 지금도 저질러지고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사진은 5일 아랍에미레이트에서 열린 미사에 참석한 교황. (출처: AP=뉴시스)

성역처럼 여겨졌던 종교계의 방어막이 무너졌다. 거룩하게만 여겨졌던 성직자들의 썩어 문드러진 부패상을 보다 못한 종교단체 구성원들이 들고 일어났다. 그간 성직자들을 보호하며 그들의 위신을 세워줬던 일등 공신이기도 하다. 이젠 반전이다. 각 종교단체의 지도자들의 권력화된 행태는 도마에 올랐고, 재정문제는 법의 심판을 받았다. 음지에서 행해지던 성문제까지 미투 운동으로 터져나왔다. 천지일보는 지난해 사회 매체가 핫이슈로 다룬 주요 종교이슈를 되짚어보고 부패한 기득권 종교계가 살기 위해 올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찾아봤다.

獨 가톨릭 사제, 약 70년간 최소 3677명 성추행

펜실베니아 보고서 “아동 성추행… 너무 가학적”

美 가톨릭 예수회, 성학대 사제들 명단공개 파문

[천지일보=김성완 기자] #사례1. 그린스버그 교구의 한 사제는 17세의 여성을 임신시키고 서명을 위조해 결혼 증명서를 작성한 후에 몇 달이 지나서 이혼했다. 사제는 교구의 허락 아래 사역을 계속할 수 있었다.

#사례2. 해리스버그의 한 성직자는 같은 가족의 다섯 자매를 성적으로 학대하고 소변, 음모 및 생리혈 일부를 채취했다.

#사례3. 또 다른 한 성직자가 남자 아이에게 구강성교를 한 후 체액을 씻겨내기 위해 아이의 입을 성수로 헹구게 했다. (펜실베니아 대배심 보고서)

바티칸 교황청이 끝없이 추락하고 있다. 2002년 보스턴에서 사제 235명이 1940년부터 60년간 1000명 이상의 어린이를 성적으로 학대한 사실이 미국 전역에서 폭로된 이래 독일과 칠레, 호주 등 세계 주요 지역에서 잇따라 가톨릭 사제들의 아동 성학대 의혹이 속속 불거지면서 로마 교황청이 곤욕을 치르고 있다. 도무지 그 끝이 어디인지 가늠할 수 없는 모양새다. 이와 함께 최근에는 전 세계 각지에서 가톨릭교회의 교육 및 봉사 등에서 중추를 이루는 수녀들을 상대로 한 성직자들의 성폭력 사건이 수면위로 등장하면서 로마 교황청이 최대 난관에 봉착한 상황이다.

◆ 사제 성폭행, 미 전역에서 나타나

지난해 8월 펜실베니아 주내 6개 가톨릭 교구에서 과거 성직자에 의한 상습적이고 광범위한 아동 성 학대가 있었다는 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주 검찰총장은 2016년 소집한 대배심에서 2년간의 관련 조사를 실시했으며 가해 성직자가 301명, 피해 아동이 1000명이 넘는다고 밝혔다. 대배심은 1940년부터 70년에 걸친 기간을 조사 대상으로 삼았고 가톨릭 교회 내 지도부가 조직적으로 이를 은폐했다고 폭로했다. 실제 보고서에 나온 내용들은 읽기 힘들 정도로 아이들에게 가학적이었다.

미국 언론 CNN은 이 같은 내용의 대배심원 보고서를 공개했다. 당시 CNN 보도를 통해 가톨릭계에서 일어난 성추문 사건이 드러나면서 전 세계가 큰 충격에 휩싸였다.

90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분량의 대배심 보고서에 따르면 펜실베니아주 가톨릭 교구에서 해당 사제들은 1940년 이후 수십 년간 약 1000명의 아동을 성폭행했고 교구 측은 그것을 은폐해왔다. 보고서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숫자가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했다.

보고서는 “교회가 몇몇 개혁 조치를 했지만 교회의 지도자급 사제들 대부분이 책임과 처벌을 피해갔다”며 “사제라는 사람들이 어린 소년과 소녀들을 성폭행했으며 하느님의 사람으로서 이들을 책임 맡은 고위층은 아무 일도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모든 비리를 은폐했다”고 비판했다. 특히 교회 고위층이 대부분 보호 받았으며 승진한 경우도 많았다고 지적했다.

그해 12월에는 미국 가톨릭 예수회가 미 서부와 남부, 중부 20개 주를 관할하는 두 개 관구에서 아동 성학대 혐의가 있는 사제 153명의 명단과 1950년대부터 최근까지 메릴랜드 및 8개 주의 예수회 소속 고등학교와 대학교 등에서 재직하면서 학생들을 성적으로 학대한 사제 89명의 명단을 공개해 파문을 일으켰다.

AFP통신 보도에 따르면 당시 미국 중서부 지역 예수회 수장인 브라이언 폴슨은 공개서한을 통해 “중서부 예수회를 대표해 피해와 고통을 겪은 희생자와 생존자들, 그들의 가족들에게 사과한다”고 밝혔다. 또 “이들 다수가 수십 년을 침묵 속에서 고통 받았다”면서 아픔을 함께 나눴다.

예수회는 가톨릭교회 최대 규모의 남자 수도회로 전 세계적으로 1만 6000명이 소속돼 있다. 이들은 미국과 캐나다에서만 30개 대학과 81개 학교를 운영한다. 예수회는 1534년 이냐시오 데 로욜라에 의해 설립됐다. 전통으로부터 과감히 탈피하는 개혁적인 면모로 유명하며 해외 선교, 특히 교육에 힘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가톨릭 역사상 최초로 예수회 소속인 프란치스코 교황을 탄생시켜 더욱 주목받고 있다.

바로 이어 미국 일리노이 주 검찰이 주내에서만 690명의 가톨릭 성직자가 아동 성추행 및 성폭행 범죄를 저지른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혀 논란이 일기도 했다.

리사 매디건 일리노이 주 검찰총장이 공개한 사건 예비보고서는 “일리노이 주 대교구는 혐오스러운 행위로 학대 받은 피해자의 상처를 치유하고 화해로 이끌어 가야 한다는 가톨릭 교리의 기본 정신과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욕구를 망각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덧붙여 “가톨릭교회는 피해자들을 지원할 도덕적 의무는 물론 이를 실행할 능력을 가지고 있다”며 “그 시작은 문제가 된 사제들을 즉각적으로 교구에서 몰아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일리노이 주 6개 대교구는 가해자가 사망하거나 교구를 떠난 경우, 문제의 사제가 교회 지도층에 속해 있는 경우에는 수사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시카고트리뷴지는 주 대교구가 몇몇 의혹에 대해 조사하는 과정에서 “사건 자체 보다는 사제의 교단 내 위치에 대해서만 알아봤다”고 일갈했다.

2017 교황청 연감은 2015년 말 기준으로 전 세계 가톨릭 신자는 12억 8500만명으로 전체 세계 인구의 17.7%며, 그중 49%가 아메리카 대륙에 살고 있다고 밝혔다. 아메리카 대륙에선 두 명 중 한명 꼴로 가톨릭 신자라는 말이다.

가톨릭의 한 관계자는 “스스로의 범죄를 드러낼 수 있는 많은 기회가 있었음에도 그렇게 하지 못했던 건 이 때문”이라며 “이 거대한 단체는 자신들의 썩은 살을 도려내지 않고 가리는 데 급급했고, 사건을 다뤄야 하는 사람들도 가톨릭 신자들이었기 때문에 못 본 척 넘어갔다”고 의견을 표명했다.

◆ 전 세계 곳곳에서 드러난 사제 아동 성폭행

지난해 9월 독일에서는 가톨릭 사제들이 1946년부터 2014년까지 약 70년 동안 최소 3677명의 아동을 성추행했다. 피해자 대부분은 소년으로 절반 이상이 13세 미만의 어린이였다. 연루된 성직자만 최소 1670명인 것으로 밝혀졌다. 독일 디 차이트와 슈피겔 온라인판은 독일주교회가 지난 4년 간 기센대·하이델베르크대·만하임대에 의뢰해 조사한 결과 1946년부터 2014년까지 가톨릭 사제에 의해 저질러진 성학대가 3677건에 이른다고 보도했다. 이 같은 피해 규모는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성학대 보고서를 뛰어넘는 것이다.

앞서 7월 칠레에서는 1960년 이후 아동 178명을 포함한 총 266명에게 성적 학대를 하거나 은폐한 혐의로 사제와 신도 등 158명이 당국의 수사 선상에 올랐다.

5월에는 교황청이 칠레 가톨릭교회가 사제들의 아동 성학대 사건을 은폐 또는 축소했다는 결론을 내림에 따라, 칠레 주교단 30여명은 이 사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지난 5월 사직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 이번엔 수녀 성폭행… 교황청 망신

세계 각지에서 성직자들의 잇단 아동 성추행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는 바티칸 교황청이 이번에는 수녀 성폭행 문제로 또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지난해 9월 인도 가톨릭계에서는 주교의 수녀 성폭행 의혹이 터져 나왔다. 힌두스탄타임스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인도 남부 케랄라 주에 사는 43세 수녀는 프랑코 물라칼이라는 주교에게 2년간 13차례 성폭행을 당했다. 이 수녀는 물라칼 주교를 ‘포식자(predator)’라고 부르며 적어도 수녀 20명이 물라칼 주교의 성폭력 때문에 교회를 떠나야 했다고 밝혔다.

올해 1월에는 교황청 관료조직인 쿠리아에서 근무하는 고위 사제가 10년 전 고해성사 도중 수녀(당시 25세)를 성추행했다는 의혹에 휘말려 사직했다.

당사자인 헤르만 가이슬러(53) 신부는 교황청 신앙교리성에서 아동 성학대를 저지른 성직자들을 처벌하는 부서 책임자였다. 오스트리아 출신인 그는 2009년 고해성사 도중 동료 수녀에게 부적절한 행동을 한 혐의를 받았다.

◆ 비판받는 교황, 가톨릭 개혁 이뤄낼까?

가톨릭 사제들의 성추문 논란으로 가톨릭의 도덕성은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특히 교황이 지나해 시어도어 매커릭 전 추기경의 성 학대 의혹을 알면서도 은폐했다는 폭로가 나와 여론은 더욱 악화됐다. 당시 미국 주재 교황대사인 카를로 마리아 비가노 대주교는 “교황도 매캐릭의 혐의들을 알고 있었다”며 사임을 요구하기도 했다.

또한 바티칸 교황청은 성추문 논란이 있을 때마다 조직적으로 은폐하거나 사건을 축소하려고 했다. 사제에 의한 아동 성추행 문제가 계속해서 터져 나오는 와중에도 가톨릭계의 대응은 개별적 사안에 대한 문제로 치부하고 사제 보호에만 집착해 왔다.

이 같은 비판에 교황은 성추문이 불거진 나라에 여러 차례 사과했으나 성추행 논란은 끊이질 않았다. 이런 가운데 최근(7일) 교황이 가톨릭교회에서 사제들이 수녀들을 대상으로 성폭력을 자행한 사실을 공개석상에서 처음으로 인정했다.

AP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이날 교황은 아랍에미리트에서 가진 첫 미사를 마치고 교황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속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성폭력을 저지른) 일부 신부들과 주교들이 있었다”고 시인했다.

교황이 사제들의 수녀 성폭력 의혹을 공식석상에서 인정한 것은 교회 내부에서 계속되는 성폭력의 심각성을 밝히고 좀처럼 풀리지 않는 문제에 대한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위한 과정으로 보인다. 가톨릭 개혁을 선언한 것으로 보이는 교황에게 세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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