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이면 2월 14일, 이 날을 기억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지금으로부터 109년 전 도마 안중근 의사가 뤼순 감옥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날이며, 다음 달인 1910년 3월 26일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1905년 을사늑약이 있은 후, 그 이듬해부터 시작한 계몽운동 나아가 독립운동의 연장선에서 계획된 사건 즉, 1909년 10월 26일 초대 조선통감 이토 히로부미를 하얼빈 역에서 암살한 대가였다.

31세 입지(立志, 뜻을 세우다)의 나이답게 하늘의 뜻을 세워 실천함으로써 짧고 굵은 생을 자랑스럽게 마감했다. 차디찬 감옥에서 죽음을 앞둔 상태에서도 “일일부독서(一日不讀書), 구중생형극(口中生荊棘). 즉, 하루라도 글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서 가시가 돋는다”는 말을 남길 정도로 그는 글을 읽고 또 써내려갔다. 무엇을 생각하며 읽으며 또 써내려갔을까. 그것은 바로 ‘평화’였다. 우리는 그에게 사상가·계몽가·독립운동가 등 수많은 수식어를 붙인다. 하지만 그 어떤 이름보다 그가 받고 싶은 이름은 바로 종교인이었다.

오늘날 우리가 안중근이라는 이름을 부르고 그리워할 수 있게 한 배경에는 민족의 원흉이라는 개인적·국수적·민족적 감정을 초월해 동양의 평화를 해쳤기 때문에 죽였다는 대장부의 고백에서 알 수 있듯이, 하나님이라고 하는 절대자에 대한 절대적 존경과 믿음이 그 근본을 이뤘고, 이는 그의 어머니로부터 배우고 받은 사상 즉, 평화사상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안 의사가 대한민국을 넘어 일본·중국 나아가 세계가 우러러보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이처럼 그는 차디찬 감옥에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는 순간까지 ‘동양평화론’을 집필했다. 아세아(亞細亞)에서 버금아(亞) 자의 글자 형태가 밝히듯이, 세계의 중심이며 심장이며 시작점인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극동, 바로 한중일 삼국의 평화는 인류 평화의 네 근원이 되어 온 세상으로 흘러흘러 급기야 지구촌 평화시대를 가져올 것을 내다봤던 것이다.

이 동양평화사상은 금년에 백주년을 맞게 되는 3.1운동의 사상으로 이어졌으며, 3.1운동의 정신은 독립선언서에서 알 수 있듯이 비폭력 무저항주의와 자유·해방·평화 등의 수식어를 낳으며 획기적 저항운동으로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이다.

이 대목에서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이 평화의 시대는 훗날 나타날 새로운 세상 즉, 위력의 시대를 보내고 도의(道義)가 지배하는 신세계를 염원한 것이며, 언젠가 이 땅에 반드시 출현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이를 뒷받침해 주는 듯 3.1운동의 영향으로 출범한 상해임시정부의 주석인 김구 선생 역시 주옥같은 생각을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지표가 되게 했다.

상해임시정부시절 그는 ‘나의 소원’이라는 글을 통해 도래할 시대를 예언적 메시아적 관점에서 남겼다.

그것은 완전한 자주독립이며,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될 것이며, 남의 침략을 받아 아파봤기에 남을 침략하지 않는 평화의 나라, 부유하고 강한 나라보다도 ‘높은 문화의 힘’을 가진 나라를 소원했으며, 이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 남을 행복하게 하기 때문이라 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이렇게 함으로 해서 진정한 세계의 평화가 우리나라에서 우리나라로 말미암아 세계에 실현되기를 원한다고 했다.

이처럼 암울한 시대를 살았던 선지자 선각자들은 한결같이 도래할 평화의 새시대 나아가 우리 민족의 건국이념인 홍익인간의 뜻이 언젠가 나타나 이루어질 것을 소원하며 예언해 주었던 것이다.

지난 역사를 통해 이 같은 사실을 깨달았을 때 비로소 그 날들을 기념하는 진정한 의미가 있지 않을까.

안중근 의사, 독립선언서를 기초한 33인, 유불선 삼도를 두루 섭렵한 김구 선생 등 한결같이 종교인으로서 종교적 메시아적 관점에서 우리 민족에게 다가올 새 세상을 노래해 왔던 것임을 알아야 한다. 그들이 그토록 염원한 새로운 세상은 바로 도의에 의한 평화시대였던 것이다. 바로 그 시대가 눈앞에 펼쳐지고 있어도 소경은 보지 못하고 귀머거리는 듣지 못할 것이니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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