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송범석 기자] 태국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감성적인 선거 문구를 통해 집권에 성공한 탁신은 뚜렷한 빛과 그림자를 역사에 남겼다. 사실 정치인이 위대한 업적과 치명적인 실수를 동시에 저지르는 것은 정치판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대한민국 정치사 역시 그러했으니까. 박정희 전 대통령이나 이승만 전 대통령에 관한 얘기를 굳이 꺼내지 않아도, 우리 국민은 정치인의 양면성만큼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탁신만큼 비난과 찬사가 확실하게 갈리는 정치인은 보기 드물다. 2006년 탁신이 쿠데타로 실각한 이후 타이는 두 줄기로 갈릴 만큼 탁신의 영향력은 절대적이었다. 이 책은 탁신이 정치에 입문한 뒤 각종 인맥을 활용해 거대한 부를 이루게 된 동기를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특히 포퓰리스트 탁신이 어떤 형태로 대중의 지지를 얻어냈는지 면밀히 분석한다.

책이 묻는 질문은 한 가지로 응집된다.

‘탁신은 무엇이 잘못되었을까?’

면밀히 살펴보지 않으면 탁신이 급변하는 정치의 소용돌이에 붙들린 희생양 정도로 여길 수도 있다. 특히 탁신처럼 말을 잘 하는 정치가라면 더욱 그렇다.

사람을 휘감는 탁신의 언변력을 느껴보자.

“사과는 아주 맛있는 과일입니다. 사과를 갈아서 주스로 만들어 마시면 더 달콤해지죠. 하지만 주스를 만들기 위해서는 사과를 미운 모양으로 으깨야 합니다. …태국이 바로 사과와 같습니다. 사과 주스를 만드는 과정을 겪는 것입니다. 지금은 비록 이렇지만, 앞으로는 나아지리라 봅니다. (2001년 10월 29일 탁신)

탁신의 말은 마치 성경에 나오는 ‘선악과’ 같다. 언뜻 보기에는 예쁘고 맛있어 보이기까지 하지만 그의 행동을 분석해보면 ‘독’이라는 것을 금방 알게 된다.

저자들은 “그의 정치활동 기간, 정치와 이익 추구 활동은 마치 똬리 튼 한 쌍의 뱀처럼 아주 긴밀하게 얽혀 있었다. 탁신이 이룩한 부의 축적은 정치적 수단을 통해 이뤄졌다”고 평가한다.

결과적으로 탁신은 사업과 정치를 혼동하는 우를 범하게 됐다. 탁신의 부패는 단순한 ‘돈 놀음’과는 차원이 다른 수준이었고, 결국 그는 공공의 감시에서 스스로를 자유로운 영역에 놓기 위해 권위주의를 택하게 된다. 그러나 그 권위주의마저 자신을 공격하게 되자 최후의 보루로 포퓰리즘에 기대게 됐다는 것이 저자들의 진단이다.

우리는 다시 배운다. 맛있는 사과는 주스로 만들지 않아도 맛있다는 점을. 책은 교묘한 변화를 선동하는 포퓰리즘의 배면에 숨겨진 진실을 보는 눈을 갖게 해줄 것이다.

파숙 퐁파이칫・크리스 베이커 지음 / 동아시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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