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라곤 논설실장/시인

 

설을 쇠고 나니 정치권이 후끈 달아오르고 있다. 고향이나 지역구를 다녀온 정치권 인사들이 설 민심을 파악한 내용 중 일부가 부풀러져 자기편에 유리한, 아전인수격 해석으로 일관하고 있는바, 여야 가릴 것 없이 서로가 자신이 몸담은 쪽 입장을 내놓다보니 ‘여전히 정치가 민심을 왜곡한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자유한국당 전당대회가 이달 27일로 예정돼 있어 출마 후보자를 둘러싼 이야기들이 언론의 한 면을 달구고 있으니 설 이후 경제 안정을 바라는 민심과는 반대로 정치권 이야기가 무성하게 나돌고 있다. 

하기야 정치가 안정돼야 경제·문화 등 다른 부문에 대해서도 논의가 될 텐데 그렇지 못하다보니 정치계에서 제 밥그릇 이야기가 주류를 이루고 있어 말 많고 탈도 많다. 자주 오르내리는 게 한국당 전당대회 관련 내용이지만 내년 총선을 앞두고서 국회의원 선거구 획정이 물밑에서 정치인들의 큰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공직선거법에 따르면 선거구획정위원회가 선거구획정안을 마련해 다음달 15일까지 국회에 제출해야 하고, 국회는 국회의원지역구를 오는 4월 15일까지 확정해야 하므로 자연히 정치권 인사들의 관심이 크지 않을 수가 없다.

지난달 31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는 21대 총선과 관련해 전국 인구수 기준을 확정한바 있다. 이 내용에 따르면 인구 하한선 기준(13만 7247명)에 미달된 지역구는 4곳(부산 남을, 경기 광명갑, 강원 속초-고성-양양, 전남 여수갑)으로 나타나 다른 지역과 통폐합이 예상되는 가운데 하항선 기준을 간신히 넘긴 경기 군포갑, 군포을, 전북 익산갑, 경북 영양-영덕-봉화-울진도 선거구 획정과정에서 어떤 변수를 만날지 알 수가 없다. 또 상한선 기준(27만2445명)을 초과한 지역구가 18곳에 이르는바 선거구 획정 문제는 ‘뜨거운 감자’로 부상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당장은 한국당 전당대회 이야기가 판을 치고 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 더불어민주당과 한국당의 정당지지도 격차는 배 이상으로 나타났는데 그동안 지지율 간극 차가 많이 메워져 최근 지지도에서는 10% 포인트 이내로 형성되고 있다. 이 같은 여당과 제1야당의 정당 지지율 격차는 문 대통령 취임 이후 가장 적은 폭이다. 여론조사기관과 정치권에서는 정부·여당의 경제실정 영향에다가, 비대위 체제의 한국당이 새 지도부를 구성하는 전당대회가 보름 남짓 앞으로 다가왔고, 당 대표에 출마한 홍준표, 황교안, 오세훈 등 거물급 인사들이 대거 참여로 한국당 전당대회 흥행이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결과라는 분석이 나돌고 있다.  

특히 황교안 전 국무총리가 당권에 도전한 이후 정가에서는 3강(황교안, 홍준표, 오세훈)을 예측하기도 하고, 또 황 전 총리가 친박세력의 협조와 여론조사기관에서 차기 주자 선호도 1위에 오르자 ‘1강(황교안) 2중(홍준표, 오세훈)’ 셈법을 내놓는 등 당권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출마선언 후 친박세력까지 원군 가세로 순풍을 타던 황 전 총리가 박근혜 전 대통령의 메시지(?) 하나에 풍랑을 만났으니 이후 판세를 누구도 점칠 수가 없는 상황이 됐다. 

2.27전당대회에서 한국당의 당권이 어디로 갈 것인지, 누가 당대표가 되느냐에 따라 앞으로  대여투쟁 방법이 달라질 것이고, 내년 21대 총선 판도 변화와 함께 정당지지도가 격변할 것이며 차기 대선에 이르기까지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새 대표의 영향력으로 한국당이 그동안 절치부심 해온 국민의 신임을 얻어 정권을 탈환하느냐, 아니면 또 좌절하느냐 갈림길에 선 형국인데, 이처럼 중대한 시기에 ‘박근혜 변수’가 등장해 ‘핫 이슈’가 되고 있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옥중정치를 한다느니 비판이 나오기도 하지만 어디까지 현실정치가 그렇다는 이야기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는 아무래도 그의 정치적 고향이라 할 수 있는 TK(대구·경북) 지역에서 강하다. 한국당 전당대회에서 대표 등 출마자들에 대해 선출권이 있는 책임당원 32만여명 중에서 TK지역 책임당원 수가 9만 8000여명으로 이는 선거권자의 3분의 1 수준이다. 더욱이 TK지역에서는 투표율이 다른 지역보다 5~10%가량 높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니 이곳의 정서에 따라 ‘전당대회의 승자’가 가려질 공산이 매우 크다. 그래서 후보자들이 주말마다 대구·경북지역을 찾고 또 ‘박 전 대통령 사면’을 적극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한국당 전대 출마자 가운데 황교안 전 총리, 김진태 의원을 제외한 나머지 6명이 전당대회 연기를 주장하며 보이콧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만 그 자체는 변수가 되지 못한다. 흥행을 위해 북미정상회담 날짜와 겹치는 2.27전당대회를 미루자는 말이 일리가 있지만 당 선관위의 ‘일정변경 없다’는 원칙고수론도 정당하기 때문이다. TK지역의 선택과 ‘박근혜 메시지’가 변수로 작용돼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알 순 없겠지만 한국당이 넘어야 할 정치 험로라 하겠고, 어쨌든 제1야당의 당 대표는 매사에 당당하고 유능한 재목(材木)이라야 하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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