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설날이후 정치권이 요즈음처럼 ‘민심’의 향배에 촉각을 곤두세운 시기는 없는 것 같다. 그런데 실망스러운 것은 ‘여야 정치권이 제대로 민심을 읽고 있는냐’는 것이다. 자당이나 자파의 의견을 민심으로 착각하고 있다. 

지금 민심은 어떻게 흐르고 있는가. 국민들이 무엇을 생각하고, 또 무엇을 원하고 있는가. 한 정치평론가는 권력이 ‘민심 난독증’에 빠져 있다고 개탄했다. 민심을 몰라도 너무 모르고 자가당착에 빠져 있음을 우려했다. 이것은 집권세력인 문재인 정부로서는 지극히 불행한 일이고 야당도 야당답지 못해 국민들의 지지를 받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관자(管子)는 ‘정치가 흥하는 것은 민심을 따르는 데 있으며 정치가 피폐해지는 것은 민심을 거스르는 데 있다(政治所興 在順民心 政治所廢 在逆民心)’고 했다. 춘추시대 재상 관중은 이 같은 경구를 철저하게 지킨 인물이다. 중국역사에서 명재상의 상징으로 숭앙을 받는 것은 이 때문이다.

민심을 얻은 성공적인 제왕은 우선 주(周) 문왕이다. 그는 폭군 걸왕을 제거하고 정반대의 정치를 폈다. 유가의 대표적 인물인 공자도 문왕을 덕치의 심벌로 손꼽았다. 문왕이 바로 예(禮) 존중 기풍을 세운 것이다. 유교사회 정치 실천이념의 근간인 주례(周禮)가 바로 여기서 비롯됐다.

강태공은 바로 문왕시대 발탁돼 훌륭한 정치를 펼 수 있도록 한 참모다. 왜 문왕은 시골의 한가로운 낚시광에 불과한 70대 노인을 발탁한 것인가. 그것은 강태공의 시국을 바라보는 냉철함에 감동했기 때문이다.

“임금이 똑똑하지 못하면 곧 나라가 위태롭고 백성은 혼란하며, 임금이 어질고 훌륭하면 곧 나라는 편안하고 백성은 잘 다스려지는 것입니다. 화와 복은 임금에게 달려 있는 것이지 하늘의 시운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군서치요(群書治要)’라는 책은 당나라 황제 태종의 명으로 편찬된 책이다. 태종은 개국 초 백성의 생활을 안정시켜 민심을 얻고자 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바로 이 책의 배포였다. 이 책에 ‘백성은 물이며 군주는 배’라는 대목이 나온다. 이는 순자(荀子)의 왕제편(王制篇)에 나오는 ‘군주민수(君舟民水)’를 인용한 것이다. 

- 백성의 원한은 그 크고 작음에 있는 것이 아니며, 두려워해야 할 것은 오로지 백성의 힘이다. 백성은 배를 띄울 수 있지만 배를 뒤집어엎을 수도 있는 물과 같다. 그러니 아주 신중하게 경계하고 삼가야 한다. -

이성계를 도와 조선을 개국한 정도전의 이상세계도 ‘민심’에 기본을 둔다. 정도전은 ‘백성의 마음을 얻는 방법은 낙생(樂生)에 있다’고 했다. 모름지기 군주는 백성이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왕권강화를 획책했던 이방원과 천적이었던 정도전은 결국 꿈꾸던 민본 세상을 이룩하지 못하고 죽었다. 조선은 고려 말 적폐청산을 기치로 개국했으면서도 정도전을 타살함으로써 5백년 백성이 주인인 나라를 만들지 못했다. 

‘민심은 공론이며 이는 하늘의 뜻과 같아야 한다’고 주창한 이가 있다. 율곡 이이(李珥)는 ‘공론(公論)’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백성의 마음(民心) 가운데서 보편적이고 선(善)한 천리(天理)를 추출함으로써 성립하는 것이다.’ 민심의 진정한 소재를 외면하고 자기합리화에 빠진 대한민국 정치권이 곰곰이 씹어볼 가르침이 아닌가 싶다. 

민심을 자당이나 같은 부류만을 통해 추출하는 것은 자살행위다. 이는 공론이 아니며 올바른 민심이라 할 수 없다. 국민을 무시한 오만한 편견에 불과하다. 지금 대통령을 도와 진정한 민심을 전달하는 측근이 있는가. 국민의 소리나 여망을 도외시한다면 이는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대한민국의 현실과 장래를 위해 제대로 민심을 읽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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