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족·동료 300여명 마지막 가는 길 배웅
이국종 센터장 “닥터헬기에 윤한덕 새길 것”
의료원 병원 한바퀴 돌고 경기도 장지로 이동
[천지일보=이혜림 기자] “떨어진 칼날은 잡지 않는 법이라는 세상의 진리를 무시하고 오히려 사지로 뛰어들어 피투성이 싸움을 하면서 다시 모든 것을 명료하게 정리하는 선생님께 경외감을 느껴왔습니다. 센터를 방치할 수 없다는 정의감과 사명감을 화력으로 삼아 (선생님은) 자신을 스스로 태워 산화시켰습니다.”
설 연휴임에도 ‘한명의 환자라도 더 돌봐야겠다’며 자리를 지켰던 국립중앙의료원에서 고(故) 윤한덕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센터장의 영결식이 10일 치러졌다. 윤 센터장의 유족과 함께 일했던 동료·직원, 의료계 인사 등 300여명이 참석해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했다.
평소 함께 머리를 맞대며 응급의료체계 구축에 힘썼던 이국종 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장이 장례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아 추도사를 했다. 이 센터장은 추도사에서 “‘아틀라스(Atlas)’는 지구 서구에 맨 끝에서 손과 머리로 하늘을 떠받치고 있다”며 “해부학에서 아틀라스는 경추 제1번 골격으로 두개골과 중추신경을 떠받쳐 사람이 살아갈 수 있게 한다. 세상 사람들은 아틀라스 존재를 모르지만 아틀라스는 무심하게 버틴다. 선생님은 바로 그 아틀라스다”고 비유했다.
아틀라스는 로마 신화 속에서 인간에게 불을 가져다준 프로메테우스의 형제이며 한때 헤라클레스를 대신해 지구를 떠받쳤던 신이다.
그는 앞으로 도입될 닥터헬기(응급의료 전용헬기) 기체 표면에 윤 센터장 이름과 아틀라스를 새기겠다고 약속했다. 이 교수는 “1번 경추인 아틀라스는 홀로 정상적인 기능을 할 수 없어 2번 경추인 엑시스로 완성된 기능을 해나간다”며 “생명이 꺼져가는 환자를 (닥터헬기가) 싣고 갈 때 저희의 떨리는 손을 잡아 주실 것으로 믿는다. 창공에서 뵙겠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정기현 국립중앙의료원장과 조준필 대한응급의학회 회장, 윤순영 재난응급의료상황실장 등이 추도사를 맡았다.
윤 센터장과 함께한 일했던 윤순영 실장은 “센터장님, 사진 찍히는 것 싫어하시더니 실시간 검색어 1위까지 하셨다. 툴툴거리실 말투가 귀에 들리는 듯하다”며 “당신이 돌아가신 명절 연휴가 우리에겐 아직 끝나지 않은 것 같고, 연휴가 끝나면 센터장이 어디선가 나타날 것 같다”고 말하자 직원들의 울음소리가 커졌다.
윤 실장은 “병원에서 실수하면 몇 명이 죽지만 우리가 실수하면 몇백, 몇천명의 국민이 죽을 수 있다고 말씀하시던 센터장님의 말씀과 웃음이 그립다”며 “내일부터의 일상에 센터장의 부재가 확연해질 것이 두렵다. 당신을 직장상사이자 동료로 둬서 행복했고 자랑스럽다. 당신은 우리 마음속 영원한 센터장”이라고 회고했다.
제일 처음 추도사를 한 정기현 국립중앙의료원장은 “60년 된 낡은 건물 4평 남짓한 사무실 안에서의 당신의 싸움을 우리는 미처 잡아주지 못해 부끄럽고 미안하다”며 “이제는 답답하고 힘들었던 마음 내려놓고 하늘에서 우리를 지켜봐 달라. 우리가 당신의 흔적을 떠올리며 남긴 숙제를 묵묵히 이어가 보겠다”고 말했다.
윤 센터장의 아들 윤형찬군도 유가족 대표로 추도사를 했다. 윤군은 담담한 어조로 “성장하며 함께 한 시간은 적었지만 저와 동생은 아버지를 진심으로 사랑한다. 고민에 늘 경청하고 우리 세대의 고민을 나눌 수 있었던 최고의 아버지였다”며 “함께 슬퍼해 주신 국민 여러분께 감사드린다. 응급환자가 제때 제대로 치료받을 수 있는 나라를 만드는 아버지의 꿈이 이뤄질 수 있도록 간절히 바란다”고 전했다.
추도사가 끝나고 참석자들의 헌화가 이어졌다. 이후 유족들은 윤 센터장의 영정을 들고 고인이 생전에 일했던 의료원 병원 행정동을 한 바퀴 돌고 경기도 포천의 장지로 이동했다.
온 가족이 모이는 설 연휴에도 사무실을 나서지 못했던 윤 센터장은 싸늘한 주검이 돼서야 병원을 떠났다. 평생을 응급의료체계 발전을 위해 바친 윤한덕 센터장의 나이는 젊디젊은 51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