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고대 ‘맥국’ 도읍 춘천 산천리에서 토성지 확인
[단독] 고대 ‘맥국’ 도읍 춘천 산천리에서 토성지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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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성터 (제공: 이재준 역사연구가) ⓒ천지일보 2019.2.8
토성터 (제공: 이재준 역사연구가) ⓒ천지일보 2019.2.8

주변 경작지에서 석기, 토기 편 산란 전형적인 초기 토루 확인

맥국 실체 접근에 청신호… 과거 공사 때마다 고대 유물 쏟아져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고대 맥국(貊國)의 도읍지로 전해 내려오는 강원도 도청소재지 춘천. 과연 ‘맥국’은 존재했으며 기록대로 춘천은 맥국의 수도였을까. 또 맥국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춘천시민의 최대 관심사이며 오래 전부터 역사를 사랑하는 이들의 가슴 속에서 떠나지 않고 있는 맥국. 그 궁금증은 더해 가고 있다. 그런데 맥국의 고지로 전해지고 있는 춘천시 신북읍 율문리, 산천리에 접해 있는 낮은 야산에서 초기 철기시대로 추정되는 고식의 긴 토성이 찾아져 맥국실체를 찾는데 활기를 띠게 됐다.

맥국 출토 토기(제공: 이재준 역사연구가) ⓒ천지일보 2019.2.8
맥국 출토 토기(제공: 이재준 역사연구가) ⓒ천지일보 2019.2.8

◆찾아진 부족국가 시기 고성터

이와 관련, 지난달 21일 이재준 역사연구가(전 충북도문화재 위원)는 현지 조사를 통해 고식의 성지를 확인하는 개가를 올렸다.

이 역사연구가에 따르면, 성지 인근 경작지에서 구석기 시대 석기인 개차돌을 떼어 만든 긁개와 격지를 비롯해 고식의 토기, 와편 등을 확인했다. 이 유물들이 춘천의 중도 유적과 우두성 지역에서 찾아지는 유물과 비교되고 있음을 확인한 것이다.

고식의 토성은 약 10~20m 높이로 우두성(우두동)에서 율문리 산천리로 올라가는 능선에 길게 구축돼 있으며 잡석이나 할석을 넣어 다진 판축식이 아닌 토루식(土壘式)으로 나타났다. 이는 청동기 말~초기철기시대인 부족국가시기에 주로 보이는 전형적인 축성방식으로 외벽은 삭토(削土)해 고준(高峻)하게 하고 위로는 도로처럼 평평하게 해 군마들이 다닐 수 있게 한 형식이다. 성안에는 여러 곳에서 주거지로 추정되는 아늑한 곳이 찾아지고 있다.

이 역사연구가는 “이 같은 형식의 토성은 부족국가 시기부터 삼국시기에도 활용됐으며 임진강 유역의 백제 초기 토성지와 안성 도기리 토성, 경남 거창 건흥산성 등 많은 곳에서 확인 할 수 있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특히 이날 조사에서 현지 주민들은 율문리에서는 땅을 파면 모두 유물이 쏟아져 공사 때마다 한동안 중지된다는 사실을 밝혔다.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율문리에서는 수로공사 중 고대 한나라에서 유통되는 오수전(五銖錢)이 출토된 적이 있다.

현재 율문리 마을에는 오래전에 자연석에 맥국터라는 쓰여진 안내비(사진)가 마련돼 있으며 이 비에서 남서쪽으로 얼마 안 되는 곳에서 처음으로 성터가 확인 된 것이다.

맥국터 비(제공: 이재준 역사연구가) ⓒ천지일보 2019.2.8
맥국터 비(제공: 이재준 역사연구가) ⓒ천지일보 2019.2.8

◆옛 문헌에 등장하는 ‘맥국’

맥국(貊國)의 위치를 고증한 고대사서는 삼국사기 지리지다. 당나라 사람 가탐(賈耽)이 쓴 고금군국지(古今郡國志)를 인용해 “고구려의 남동쪽 예의 서쪽이 옛 맥의 땅인데 지금 신라의 북쪽인 삭주(朔州)이며, 선덕여왕(善德女王) 6년(637)에 우수주(牛首州)로 삼아 군주(軍主)를 두었다”고 했다. ‘삭주’는 바로 춘천의 옛 이름이다.

일연(一然)선사도 삼국유사에 “춘주(春州)는 옛 우두주(牛頭州)로 옛날의 맥국인데 혹 지금의 삭주를 맥국이라 하기도 하고, 혹은 평양성을 맥국이라고 한다”고 하여 춘천과 평양 두 지역을 맥국의 고지로 추정했다.

맥국은 삼국사기 신라본기에도 등장한다. 신라본기 유리이사금 17년(AD40) 조에 ‘가을 9월에 화려(華麗) 불내(不耐) 두 현 사람들이 모의, 기병을 거느리고 북쪽 국경을 침범했다. 맥국의 거수(渠帥.우두머리)가 병사를 동원하여 곡하(曲河) 서쪽에서 맞아 이들을 물리쳤다. 왕이 기뻐하여 맥국과 친교를 맺었다’고 돼 있다. 또 신라 유리왕 19년(AD 42)에는 ‘맥국의 거수가 사냥을 하여 새와 짐승을 잡아 바쳤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 후기 시인 강현규는 ‘유금강산록(遊金剛山錄)’이란 시 속에 춘천을 이렇게 노래했다.

숲을 헤치고 고개를 올랐는데 길은 빙빙 돌아나가고 (穿林爬嶺路紆縈)

춘천에 이르니 눈이 갑자기 밝아지네 (行到春川眼忽明)

천 년 전의 맥국, 산에 성가퀴 남아있고 (千年貊國山有堞)

백 리의 도읍지, 물에는 배가 가득하네 (百里神都水滿舲)

장군의 묘지석에는 푸른 이끼 끼어있고 (將軍墓石蒼苔合)

승상의 누대는 푸르고 넓은 들판에 있네 (丞相樓臺綠野平)

왕년의 사적 쓸쓸한데 가을 해는 저물고 (往蹟簫簫秋日晩)

무정한 호각소리 빈 성에서 들려 오네 (無情笴角咽寒城)

조선 지리가 이중환의 택리지에는 춘천을 이렇게 예찬했다.

“우리나라의 수계로 가장 살기 좋은 곳은 대동강 수계의 평양이고 둘째로 춘천의 소양강 수계를 들고 있으니 이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고 맥국 때의 일이다.”

이 역사연구가는 “춘천 역사의 뿌리인 맥국 고지를 확인하기 위해 이번에 찾아진 산천리 토성과 주변의 경작지 그리고 율문리, 산천리 주변에 대한 확대 된 조사가 필요하다”며 “중도유적의 보존이 이뤄지지 않은 만큼 이 일대라도 보존해 맥국의 역사를 지켜야 한다”고 덧붙였다. 춘천에는 여러 곳에서 맥국에 대한 설화가 얽힌 유적이 남아 있다.

맥국농악보존회 김명자 단장은 “앞으로 농악보존 활동과 함께 맥국실체에 대한 규명을 위한 노력으로 학술강연, 토론회 등을 열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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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지숙 2019-02-08 21:03:26
이 조그만 나라에서 분열도 많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