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병 정치평론가  

 

꽤 길었던 설 연휴가 끝났다. 모두들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일상에 복귀했지만 그러나 가슴 한 편에는 응어리 같은 그 무엇이 짓누르는 듯 통증을 느끼는 국민들이 많을 것이다. 신체의 병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심장의 깊은 곳에서 뿜어져 나오는 그 무엇인가에 대한 ‘두려움’과 ‘절망’에 대한 아픔이 아닐까 싶다. 고향을 다녀온 뒤라 그 아픔이 더 생생하게 각인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가히 ‘통증’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설 연휴 동안 지역 민심을 둘러본 정치권의 반응은 이번에도 역시 아전인수(我田引水)식 해석이 대부분이었다. 물론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또 듣고 싶은 목소리만 들었으니 그 한계를 뛰어 넘기는 어렵다. 민심까지 교묘하게 비트는 정치권 특유의 ‘전략적’ 발언까지 감안한다면 추석 민심을 정치권에 묻는 것 자체부터 넌센스임에는 틀림없다. 

그럼에도 굳이 이번 설 민심을 놓고 정치권을 끌어 들이는 것은 정치권 전체를 강타하는 국민의 원성(怨聲)이 워낙 높다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추석 명절 때만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이대로 가면 모두 끝장’이라는 날 선 분노가 곳곳에서 쏟아졌다. 문재인 정부 집권 3년차에 벌써 우리 정치권을 이렇게 본다면 그것부터 이미 절망이요 동시에 결정적 위기 징후임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민생보다 더 무서운 미래의 위기

설 연휴를 보낸 민주당은 김경수 경남지사 재판이 잘못됐다는 게 민심이라고 강변했다. 딱 지금 민주당의 수준이다. 민심에 귀 막은 채 듣고 싶은 것만 골라서 들어도 그런 말은 쉬 하지 못할 것이다. 명색이 집권당 아닌가. 그러나 국민은 김경수에 별 관심조차 없었다. 굳이 한 마디 보태자면 “항소심에서는 무죄가 되겠더라”는 비아냥이 더 많았다.

그럼에도 민주당 강훈식 의원의 발언은 경청할 만했다. 강 의원은 “전반적으로 경제 문제에 대한 지적이 주를 이뤘고 경제는 여당 책임이라는 무거운 말씀이 많았다”고 설 민심을 전했다. 정말 민심은 그랬다. 경제가 어렵지만 오늘보다 내일이 더 걱정된다며 집권당인 민주당은 지금 뭘 하고 있느냐는 질타가 쏟아졌다. 말이 질타이지 실상은 분노와 절망에 가까웠다. 민주당은 바로 그 목소리를 들어야 했다.

자유한국당은 더 가관이다. “못 살겠다. 문재인 대통령 임기가 언제까지냐라는 것이 설 민심인 것 같다”고 전했다. 이 정도라면 듣고 싶은 것만 골라서 들은 것이 아니라 들어서는 안 될 소리를 들은 것이다. 정치인이라면 여론의 흐름을 제대로 읽을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중에서 건강하고 생산적인 것을 찾아 성찰과 변화의 계기로 삼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리더’가 되는 것이다. 지금 문 대통령 임기를 말하는 것이 과연 온전한 상태란 말인가. 문 대통령을 옹호하거나 감싸는 얘기가 아니다. 비판과 쓴소리에도 격이 있고 수준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야 최소한 ‘공감’이라도 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국민들의 마음속에는 현실의 고통과 좌절감이 너무 크게 자리 잡고 있다. 자칫 ‘절망에 이르는 병’이 광범위하게 확산되는 것은 아닌지 그저 초조할 따름이다. ‘산에 가지 말고 동남아 가라’는 어느 청와대 인사의 속 터지는 소리에 분개했던 것도 그런 이유였다. 물론 그 절망을 치유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미래에 대한 ‘희망’임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지금은 현실도 현실이지만 미래가 더 우려된다는 쓴소리가 적지 않다. 다시 말하면 지금보다 미래가 더 두렵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에게 미래의 희망을 보여줄 사람들은 누구인가. 그것이 바로 정치의 영역이며 정치인의 역할이다. 정치가 곧 민심의 바다요, 정치인은 그 험난한 바다를 헤쳐 나가는 거대한 항선의 선장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배가 좌초해서 크게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선장은 배가 좌초된 것조차 모른 채 선원들끼리 소모적인 싸움판이나 벌이고 있다는 것을 목도한 승객이 있다면 그 승객의 심정은 어떨까. 이번 설 연휴 때 흔들리는 민심의 바다에서 느낀 필자의 느낌이 딱 그랬다.

설 연휴가 끝난 뒤 정치권에서 들려오는 소리도 역시 우려했던 그대로다. 민주당은 구속된 김경수 지사를 구하는 데 당력을 집중키로 했다는 소식이다. 며칠 전 ‘항소심 무죄’를 비꼬듯 예상했던 한 지인의 얼굴이 갑자기 떠올랐다. 그렇다면 이제는 청와대와 민주당이 ‘항소심 무죄’ 또는 ‘지사직 유지’를 어떻게 만들어 내는지 그 ‘놀라운 기술’을 꼼꼼하게 지켜 볼 일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상징과도 같은 그 말, ‘새로운 대한민국’이 어떤 모습인지 정말 눈 크게 뜨고 지켜 볼 일이다.

자유한국당은 당 대표를 뽑는 전당대회 날짜가 2차 북미정상회담과 겹치자 ‘흥행’에 비상이 걸렸다며 전전긍긍해 하는 모습이다. 그리고 당 대표에 나선 후보들은 이른바 ‘친박 표심’을 잡기 위해 너도나도 대구·경북 지역에 집중하고 있다. ‘도로 친박당’으로 돌아가는 데 대한 처절한 반성이나 성찰보다는 너도나도 박근혜 전 대통령을 띄우는 데 여념이 없다. 어쩌다가 자유한국당이 여기까지 오게 됐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불행하게도 이것이 지금의 한국정치 현실이다. 민주당과 자유한국당, 누가 옳고 누가 그러다는 것인가. 그들 중에 어느 쪽이 희망이란 말인가. 그럼에도 어차피 두 정당은 다음 총선에서도 제1당과 제2당이 유력할 것이다. 이런 현실에서 대한민국의 미래를 걱정하는 사람들, 나는 그들이 더 걱정될 따름이다. 절망에 이르는 병, 정말 그 끝은 어디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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